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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50316주일오전예배/정광수 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데살로니가 교회 |
성경 | 사도행전 17:1-9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사도행전 17:1-9)
1.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녹취자료 |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대입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가 지으신 만물을 주권적으로 지금도 섭리하고 계십니다. 지구의 하루 24시간, 또 1년 365일을 1초도 틀리지 않고 하나님은 움직여 나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만드신 모든 만물 속에 법칙을 만드셨습니다. 자연과학, 물리, 화학이나 생물학이나 무엇을 연구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창조 질서 속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연구할수록 너무나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섭리에 감격하죠. 왜 하나님은 창조시부터 지금까지 모든 만물을 보존 통치하실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구원역사 중심으로 모든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전능자, 지존자, 절대자, 통치자이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의와 거룩의 하나님이심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그분은 영원히 경배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와 같은 인간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왜 사랑하시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알수 없어요. 황송하게도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거죠. 로마서5:6-10절을 보면 ‘우리가 연약할 때에...’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는 상태입니다. 오히려 죄인이었어요. 멸망에 빠져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때에....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탕자와 같은 모습 아니었나요? 어쩌면 음란한 여인 ‘고멜’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나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직접 인간의 세상에 개입하셔서 구원하시려고 내가 당할 모든 고난과 진노를 대신 담당하시고 버림을 당하시고 나를 건져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이 구원속에 성도의 신분과 권세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주시면서 이 구원을 이루도록 성삼위 하나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내주, 인도, 역사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나요?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어요. 시편 8:4-5절을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분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그 사랑 속에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깨달으며 그분을 100% 신뢰와 복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참된 믿음의 자세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그 아들을 데리고 번제드리려고 출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리아 산에 도착했어요. 칼과 횃불을 들고 등에는 나무 짐을 들고 올라갑니다. 번제를 드려야 하니까요. 아들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나무도 있고 횃불도 있고 칼도 있는데 왜 양이 없어요?” 아브라함이 대답하죠.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을 결박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전에도 나를 경외하는지 알았노라고 하세요. 이 사건의 밑바탕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100% 믿고 신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약속의 언약의 말씀을... 100% 순종하는 자세를 보여드리는 것이 참된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 인생에 문제, 갈등, 위기를 가져다 주실까요? 내가 믿고 의지하는 분이 누구신지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왜 애굽땅에 10가지 재앙을 퍼부었나요? 바로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길을 걸어가게 하셨나요? 신명기 8:2-3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안에 하나님이 모든 답이 다 들어있다! 이걸 깨달게 만들기 위해서 어려움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지금 좋아하는 것, 해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네가 성공하고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해답이 아니다. 오직 여호와 오직 그리스도 만이 해답임을 알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도록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문제를 주셨다고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을 정말 깨달게 되면 여러분 입술 속에 갈라디아서 2:20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되는... 정말 내가 복음을 체험하고 누리게 되면 내 삶의 목적 자체가 다 바꿔지는 겁니다.
1. ...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 하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이 에베소지역을 벗어나서 데살로니가 지역으로 왔는데 데살로니가는 로마 황제의 아내 이름입니다. 그리고 아데네 보다는 조금 작은 도시로 로마의 자유도시로 세워진 곳이 데살로니가입니다. 이 곳에서 바울은 자기 규례대로 3주간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그리스도가 예수라고 전합니다. 바울은 3주간 동안 어떻게 복음을 전할지를 자기자신의 규례를 가지고 전했다고 말합니다. 저도 파키스탄을 가게 되면 집회를 하루 하는 곳이 있고 이틀하는 곳이 있어요. 그러면 메시지를 어떻게 해야될 것인지 내 규례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재차 방문하는 곳에서는 어떻게 메시지 할 것인가가 규례가 정해지죠.
또 복음을 전할 대상과 시간에 따라서 달라져요. 기존 신자에게 전하는 것과 불신자에게 전하는 것 자체가 달라요. 어떤 때는 교도소 가서 복음을 전하면 10분만에 전해야해요. 그래서 각자마자 뭘 가지는 것인가. 자기의 규례를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누구를 만나든 복음을 전하리라. 필요에 따라서 여러분들이 전도지도 준비하고 책도 준비하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전도할 수 있는 이 규례를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유대인과 기존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예수라고 전합니다. 너희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다 이렇게 전하는 거예요. 모든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줄 알고 기다리고 있어요. 예수님을 향하여서 다윗의 자손이던지 그 그리스도 라던지 그 선지자 라던지 이렇게 메시야를 지적하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문제는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야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죠. 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영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세기 3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메시야가 아닙니다. 지금 현실적인 로마 속국문제를 해결함 받는 것 지금 현실문제 해결 받는 것 이걸 지금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성도들이 여기에 많이 속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왜 믿나요. 교회를 왜 다니나요. 목적이 어디에 있는거죠? 내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가 아니고 자꾸 어디로 흘러가죠? 지금 내 인생의 내 문제. 내 가난 문제 내 자녀 문제 내 건강 문제 이걸 해결하는 이걸 목표로 삼게 되는...
그런가하면 이들이 가졌던 구원관도 틀렸어요. 할례 받으면 구원 받은 것으로. 그래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 행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전혀 복음이 없는 이 상태. 이게 바로 뭔가하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던 바로 그 현재 유대인들의 영적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종교화된 복음이 없는 그저 교회 다니는 것이 구원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와 같은 모습을 우리가 여기서 찾게 됩니다.사도바울의 첫 번째 전도 대상자들을 전부 기존 신자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시작된 전도운동이 2차 전도여행까지 아덴 전도를 빼고는 거의 다 회당 중심으로 가서 메시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대상자체가 기존 신자들이에요. 제가 파키스탄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기존 신자와 목회자를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왜 그런 것인가 하면 이들의 영적수준자체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 회당에 있었던 그 유대인들의 영적 수준하고 비슷해요. 파키스탄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이 본인이 선택해서 예수 믿은 것이 아니에요. 무슬림 집안에 태어나면 무슬림이고, 크리스천 집에 태어나면 크리스천입니다. 유대인 집에 태어나면 몽땅 다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거죠. 중세 기독교 교회가 무조건 교회 가는 것이 그냥 정례화 되어지는 것처럼, 그냥 교회를 가는 것이 구원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파키스탄 현장에서 안타까운 것이 그들의 영적 상태를 점검 해봤을 때 거의 절반 이상은 예수 생명 없이 교회만 다녀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가? 목사님들이 복음이 없어요. 목사님들이 뭐 하는 건가? 복음 이외에 다른 것을 강조하는 것이거든요. 왜 그 현상이 온 것인가?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래서 왜 우리가 파키스탄 RUTC를 지어야 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여기서 찾게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정확한 복음을 증거 합니다. 바로 그리스도는 누군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죠. 오늘 2절, 3절을 보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니.. 인간의 근본 문제가 어디서 온 건가? 사단에 속고 죄를 범해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의 모든 문제가 찾아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너희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로구나.. 왜 창세기 3장 15절 말씀 여인의 후손 말씀이 왜 나왔으며, 왜 방주 언약이 나왔으며, 왜 피언약의 비밀이 나왔으며, 여인의 후손 이야기가 왜 나온 것인가? 왜 성막에서 피제사만 드리는 것인가? 이 부분을 설명하는 겁니다. 왜 피만이 해답인 것인가? 양의 피를 발랐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 받은 것처럼 오직 피언약만이 해답이다. 바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만나는 길이고 우리 모든 죄의 문제와 사단을 꺾으신 유일한 길 자체가 예수 그 이름밖에 없는 것이라고.. 바로 그 성경 말씀을 풀어서 바로 그 그리스도가 예수다! 이걸 설명하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분이 십자가 부활로 다시 살아야 될 것을 부활의 당연성을 설명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심었던 장면을 오늘 본문 속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이 십자가 못 박아 죽인 그 예수가 그리스도다.. 정확한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에 이들은 예수가 누군지를 바르게 알게 되었고 이제는 정치 메시아가 아니라 내 인생의 모든 것 해결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를 정말 뭐 했다고요? 이거 정말 믿은 거예요.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뭐가 필요한 것인가요? 그렇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그분이 내 인생의 문제를 정말 해결하신 바로 그분이시라는 사실 자체를 이걸 정확한 복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뭐가 세워졌다고요?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2. ...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는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니.. 사도 바울의 회당 전도에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참석을 합니다. 짐작하건데 이들은 유대교로 개종을 했거나 아마 유대교에 관심 있는 자들이 아마 여기에 많이 참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거기서 귀중한 제자 야손을 세워주는 장면도 우리가 보죠. 이렇게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에 성경에서는 짤막하게 사도행전에서는 사도행전 17장 1-9절 사이에 들어서 이것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에 바울이 두 권의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후서를 보내게 되어지죠. 거기에 보면은 이들 교회를 두고서 마게도니아, 아가야에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다고 기록을 합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잡아야 될 중요한 언약이 바로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은 참좋은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말 그대로 아가야의 전 지역에 소문난 교회가 되어진 것처럼 어떻게 이와 같은 교회를 우리가 만들 것인가..? 이것을 오늘 우리의 기도 제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올바른 복음이 바르게 증거 되어졌을 때에 그 교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나요? 데살로니전서 1장 2절, 3절 보면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에 뭐가 있었다고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균형잡힌 교회였다고 기록을 합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복음을 체험하고 누리게 되면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열매가 어디에 맺혀야 될까요? 내 인생, 내 삶 가운데, 바로 우리 교회 안에 이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근거는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부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성취하고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왜 예배를 드리나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서, 뭐 하기 위하여서? 성취될 기도제목을 찾기 위하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에요. 이것을 잡을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날까요? 지금도 홍해가 갈라져요. 지금도 요단이 갈라져요. 지금도 여리고가 무너져요. 지금도 태양이 멈추어져요. 예수님 만났던 모든 병자들, 혈우병 여인은 어떤 마음을 가졌나요? 예수님 옷자락에 내 손가락만 닿아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접근 했을 때에 뭐가 나타나죠? 말씀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바로 이 믿음 회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자 예수님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지금도 구원역사는 일어납니다. 예수가 누구라고요?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입니다. 예수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 이름으로 기도 할 때 지금 응답받는 그 분 그리스도, 그 분이 뭐하셨나요? 내 인생에 찾아온 모든 영적문제, 정신문제, 육신문제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문제를 그분이 해결하셨어요. 그 이름 앞에 흑암이 결박당하는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뭐가 일어난다고요? 이 구원역사 일어나기 위해서 뭐하라고요? 이것 믿고 기도하라고 요구합니다.
누구 믿으라고요? 성령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깊은 것까지 그분이 다 아세요.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함이라‘고, 우리가 정말 언약 잡았을 때에, 미션 찾았을 때에 누가 역사하신다고요? 지금 성령역사하게 되는. 성삼위 하나님이, 성령하나님이 지금도 내주 인도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랑에서 나오는 진정한 헌신과 수고입니다. 억지나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헌신과 수고가 나와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헛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 이하를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교회에 헌신하나요? 의무감 때문에? 혹시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복 주실 것 같아서? 아닙니다. 우리 모든 행함의 동기는 뭐가 되져야 하는 거죠?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내가 헌신하는 것이 사랑이 동기가 맞는 것인가? 이게 어디에 있었다고요? 데살로니가교회에.
세 번째 소망의 인내가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에는 형통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욕먹고, 손해당해도, 핍박을 당해도, 까닭모를 재앙과 실패가 찾아온다 할지라도 바로 그분을 신뢰하고 믿는 그 소망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해답과 해결자는 그리스도가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이 소망. 예수님 제자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과 함께 건너가는데 풍랑이 일어났어요. 예수님이 피곤하셔서 주무시는데 이들이 아우성을 치죠. 이게 죽게 되었다‘ 그 배에 누가 타고 계셨죠? 예수님이 타고 계셨어요. 지금 여러분 속에 누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이죠? 그분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은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바로 그분, 나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바로 그분, 우리에게 참된 인내를 가지라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 가운데 문제를 왜 주시는 것인가요?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내 미션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문제를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누가 나와 함께하시는 건가요? 처음이요 마지막이 되신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바로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하셔서 내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걸 우리가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을 바로 깨닫고 체험하게 되어지면 뭐가 주어진다고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 인내가 일어나게 되어지는 이 믿음을 갖게 될 그 우리들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3. ...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에게 말로만 이런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 된 것이라.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과 그 복음을 받은 교회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거기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들이 복음을 받았기에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로 이와 같이 교회가 세워진 것인가? 오늘 우리가 마음에 담아야 될 귀중한 메시지입니다. 저는 강단에 설 때마다 하나님 앞에 하는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주여, 바로 데살로니가의 교회에 나왔던 그 메시지와 같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이 말씀이 선포되도록 하나님이여 나를 붙잡아 주옵소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유모의 심정으로 아비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을 합니다. 제가 김 목사님이 강단에 설 때마다 앉아서 제가 무엇을 기도할까요? 하나님 우리 김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이 말씀이 증거 되게 만들어 주옵소서. 어느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자신은 강단에 설 때마다 이 서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란 마음을 갖고서 말씀을 증거한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제 마음에 와닿았어요.
저는 파키스탄 선교 현장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바로 이 마음을 갖고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단 한 번도 원색적인 복음을 듣지 못했던 바로 그들.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 그 수많은 영혼들을 다 만날 수 없는데 나와의 만남 자체가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이 되어졌을 때에 제 가슴속에 절박한 마음으로 이들이 지금 이 복음 받지 못하게 된다면, 이걸 깨닫지 못하게 된다면, 영원히 다시는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는데... 그 마음으로 정말 내 속에 있는 걸 다 진액을 다 토하여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오게 됩니다. 제가 이때 어떤 마음을 품는 것인가 하면 아 이게 바울이 품었던 마음이구나. 바울이 이 마음으로 가는 곳곳마다 이 그 유대인들에게 회당 마다 가서 이렇게 복음을 전했구나 하는 마음을 제가 갖게 되었고 그 마음을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영적 상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은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를 하느니라. 선포된 강단의 메시지를 이들은 뭐로 받았다고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그래서 그 말씀을 믿는 자 가운데 역사했다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가 되니 그런 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선포된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멘으로 받으라고 우리에게 요구를 합니다. 아멘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말씀 들을 때, 아멘 아멘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세요. 그 아멘은 바로 무엇일까요? 나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그렇게 되기를 내가 원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내가 믿습니다. 그 언약을 내가 잡습니다..
성도들의 실수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강단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 않고 목사의 말로 듣는 겁니다. 사람의 말로 듣는 것이에요. 우리는 강단의 메시를 성취될 언약의 말씀으로 우리가 100% 성취될 약속된 말씀으로 뭐하라? 이걸 내가 잡아야 돼져요. 그래서 이걸 뭐 하라고 강조하죠? 편집 설계 디자인하라고 강조하는 건 내 것으로 삼아야 되기 때문에..
역대하 20장 1절 이하에 보면 여호사밧에 대한 기록들이 나옵니다. 여호사밧 왕 때 평화 시에 세 개 나라 연합군이 침공해들어오는데, 당시 이제 군 제도 자체가 백성들이 평상시엔 다 농사짓고 목축하고 그냥 살아요. 그럼 전쟁이 일어나면 이제 소집을 하면 다 모이는 이게 당시 전쟁의 모습인데, 갑자기 쳐들어오니까 군대를 모을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여호사밧이 당황해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 민족 건져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이 왔는데, 레위지파에 야하시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응답이 왔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도는 누가 했죠? 여호사밧이 중심으로 기도했는데, 응답은 누구한테 준 것인가? 야하시엘이라는 선지자한테 준 것이에요. 그래서 야하시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전쟁은 너희들이 싸울 것이 없다. 하나님인 내가 싸운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전쟁에 나가면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성가대를 앞장 세워가지고 전쟁에 나가도록 만드는.. 기가 막힌 전쟁을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때에 여호사밧이 백성들에게 외치는 말이 나옵니다. 역대하 20장 20절입니다. 너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데 무엇을 믿으라? 그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된 그 약속된 말씀을 믿으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를 원하시죠? 그러면 뭘 믿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던져 주는 강단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아멘하고 받으라고 요구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단의 메시지를 받을 때에 뭐로 받으라고요? 실천할 미션과 성취될 언약으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받고서 뭐하라는 이야기입니까? 왜 편집하죠? 그 말씀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찾는 거에요. 그리고 그것을 여러분들이 설계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것이 내게 믿음으로 와 닿도록 하나님이 역사해 달라고.. 그리고 디자인은 그대로 행동에 옮기면 되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이 맛을 예배를 통해서 보아야 돼요.
이 맛을 본 다윗의 고백이 시편 19편 9-10절에서 나옵니다. 여호와의 법은 진실하고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여러분들 이 고백이 정말 내가 말씀의 약속을 잡았을 때에 성취되는 그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에.. 이야~ 하나님 말씀이면 다 끝나는구나.. 이 체험을 하라고 우리들에게 요구를 합니다. 그래서 잠언 2장 4절 말씀에서는 은을 구하는 것과 갗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하나님이 그 자에게 완전한 지혜를 준다는 약속이에요. 묵상이 뭡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찾는 것이에요.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처럼.. 그 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서 예배 드리고 찾는 그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을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두고서 아가야의 소문난 모델적인 교회라고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어떻게 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요? 시편 1편 2절에서 말씀을 합니다. 누가 복이 있는 자인가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잡으라는 이야기죠? 하나님의 언약을 잡으라고 우리들에게 요구를 합니다. 그것도 배경이 바로 무엇인가요? 정확한 복음의 약속을 붙드는 예배를 드리게 되어졌을 때에 저희들이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정말 가슴에 담고 여러분들이 도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바울이 자기의 규례에 따라서 석주간동안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정확한 복음을 증거하였고 이 복음 받았던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가장 소문난 교회의 모습으로 세워졌습니다. 어떻게 이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었나요?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복음이 증거되었고 또 그들은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정말 들으면서 이 말씀을 굳게 잡았을 때에, 그들에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정말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으로 그 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이제 참좋은교회가 이와 같은 교회로 세워지기를 원하며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정말 언약 잡고서 이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결단의 시간 되도록 주의 성령께서 저희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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