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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도 제대로 못 지켜
26살 자폐 딸을 둔 엄마 박혜자(가명, 58)씨는 중풍으로 남편이 쓰러진 뒤 10년 넘게 남편 병시중에, 자폐 딸 돌봄에 갖은 고생을 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살았다. 그러다 몇 해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박씨는 장례식장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다. 자폐성 장애인인 딸이 엄마랑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해서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자신을 잘 봐주지 않는다며 자꾸 소리를 지르고 엄마를 때렸다.
시설에 맡기려 하지만…
35살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워온 70대 한 노모는 "이젠 아들을 데리고 시설을 다니며 돌봐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탄했다. 발달장애에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는 아들은 장애 정도가 너무 심해 복지관에서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상담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문전박대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들을 데리고 있어 보겠다고 받아준 곳도 대부분 며칠 만에 "자녀분을 돌봐드릴 수 없다. 다시 데리고 가셔야겠다"며 아들을 돌려보냈다. 펄펄 뛰는 30대 아들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모는 자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겨질 아들 생각에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 갈 뿐이다.
장애인 중의 장애인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물론 일상생활도 힘든 발달장애인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 삶의 한 단면이다. 발달장애인 특성에 맞는 교육과 환경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못한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것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으로 돌아간다. 아이가 발달장애로 태어난 것도 부모 탓으로 돌리는 현실이다. 거리에서 아이가 돌발 행동을 하고 경기를 일으키면 그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장애 정도가 심해 전문가가 돌봄을 포기한 아이들은 다시 부모에게 돌아간다.
발달장애인은 어렸을 때부터 훈련받지 못하면 성인이 돼서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끊임없는 반복 훈련과 보살핌이 있어야 생활이 겨우 가능하다. 1년을 교육받았어도 단 며칠만 돌봄이 소홀하면 다시 1년 전으로 퇴행하는 게 발달장애인이다.
8~19세에 이르는 학령기 발달장애인들은 그나마 특수학교에서 돌봄과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20대가 되면 갈 곳을 찾기 힘들다. 발달장애인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도, 시설에 들어가 생활을 해도 모두 새로운 환경이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몇 달 만에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발달장애인마다 장애 정도가 다르고 행동하는 양상이 다르기에 이를 세심히 살피고 거기에 맞게 반응을 해줘야 하는데, 사회복지사나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맞춤 돌봄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획일적으로 이뤄지는 훈련에서 그나마 이를 잘 따르는 경증 발달장애인들만 버틸 뿐이다.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고 인지 능력이 낮은 발달장애인들은 시설에서도 다른 장애인들에게 놀림을 받고 차별받는다. 발달장애를 둔 부모들이 발달장애인을 두고 '장애인 중의 장애인'이라고 하소연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또한 부모도 나이가 들면 아이를 통제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집으로 경찰을 불러야 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정현주(가타리나, 56)씨는 "발달장애 아이들은 학창 시절을 다 겪고 나면 그다음엔 '오춘기'가 찾아왔다고 할 정도로 성향이 더욱 과격해지거나, 돌발 행동을 하더라도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고 말했다.
복지가 잘 갖춰져 있어 지자체와 정부에서 발달장애 정도에 따라 평생 맞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사례는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이성미(라파엘라, 54)씨는 "부모 중에 누군가 다쳐 입원해 있기라도 하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입원해 있는 부모가 나와야 할 판"이라면서 "어떤 엄마는 암에 걸렸는데도 치료도 못 받고 아이랑 매일 씨름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발달장애인 해외 돌봄 사례
미국
발달장애지원 및 권리장전법이 제정돼 있으며, 지자체가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서비스 체계를 확립하고, 각 부서 간에 예산과 인사, 운영 및 기관과 협력을 위한 정책을 개발해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주 정부에 발달장애 서비스 전담부서가 있으며 지역별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역 센터, 지적장애인연합회, 장애인 및 가족지원조직 연합회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학령기에는 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을 책임진다. 성인기로 전환 후에는 지역 센터에서 개인 장애 상황에 맞게 맞춤 계획을 세워 지역 내 생활 시설이나 직업재활기관으로 연계해줘 평생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족들을 위한 지원도 잘 갖춰져 있다. 장애인 가족을 위한 '휴식 돌봄 서비스'는 가족들의 과도한 의무를 덜어주기 위해 장애 아동을 일정 기간 돌봐주는 서비스다.
일본
2004년 발달장애인지원법을 제정, 지자체에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설립을 명문화 했다. 이 법으로 발달장애 조기 발견, 발달장애 지원에 관한 지자체 책임과 지원 등을 규정했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의 효과적인 교육과 치료를 위해 지역 의료, 보건, 복지, 노동과 관련된 지역 서비스가 종합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있다. 지역 주민의 인식 개선과 발달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발달장애인에 대한 특성과 대응 방법 등에 관한 교육과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호주
1986년 지적장애인서비스법을 제정,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전반적으로 장애인의 사회참여 권리가 잘 보장돼 있어, 발달장애인들도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에 돌보미와 활동 보조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학교 이외에도 주간 보호 시설, 위탁 가정, 공동생활 시설 등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제공이 이뤄지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긴급 상황에 처한 가족을 위해 장애인을 단기간 맡아주고,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전문 인력을 배치하기도 한다.
발달장애란?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출생과 성장기에 뇌 발달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증상으로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지능지수가 70 이하이면 지적장애로 본다. 지적장애인은 지능은 낮지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자폐성 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달리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돌발 행동으로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다. 지적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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