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칠회 제51회 4월 정기모임
일시-2011년 4월 29일 금요일 10:30
장소-아차산 광나루 산책로
교통-5호선 광나루역 1번출구
만남-강나루역 1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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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碧巖錄) 달마대사와 양무제 대화 “몰라”와 “몰라”
벽암록(碧巖錄)의 정식 명칭은 불과환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이다.
벽암록(碧巖錄)은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절벽을 마주 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불교에서 벽암록은 중국 선종5가(禪宗五家)의 일파인 운문종(雲門宗)에 속하는 설두(雪竇) 중현(重顯)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1,700칙(則)의 공안(公案) 중에서 선(禪)의 전통적 사상에 의거하여 달마선(達摩禪)의 근본(根本)이 되는 큰 요점(要點)을 불교도들의 수행(修行)에 중요한 지침이 되는 100칙을 골라서 만든 임제종(臨濟宗)에서 최고의 지침서로 꼽는 책이며, 선어록(禪語錄)의 백미(白眉)이다.
벽암록은 선(禪)수행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칙(則)은 법칙(法則)을 말한다.
공안(公案)은 불교 고승들의 언어 동작을 말로 표현한 것이 화두(話頭)이다.
그리고 공안(公案) 화두(話頭)를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看話禪)이란 공안(公案)의 첫마디를 화두 하나로 큰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임제종(臨濟宗)의 선풍(禪風)을 말한다.
*공안(公案)은 선(禪)을 시작하는 사람의 정진(精進)을 돕기 위한 간결하고 역설적인 문구나 물음으로 화두(話頭)라고도 부른다.
이 책은 설두(雪竇) 스님이 도를 깨치는데 있어 참고가 될 만한 좋은 글 100여 편을 뽑아서 시구(詩句)로 엮은 것을, 환오극근(圜俉克勤1063-1135) 스님이 시문(詩文)에 대해 평가하여 알기 쉽게 풀이한 것이다.
벽암록은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지 않은 내용으로 이 공안집이 나온 후에 문자(文字)공부에만 몰두 하고 선 수행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원오의 제자 대혜종고(1089~1163)가 벽암록 판각과 책들을 모두 불태워 버린 후에 원나라 초기에 재 복간되었다고 한다.(청화스님 강론중)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인 돈오점수(頓悟漸修)와 대조를 이룬다.
벽암록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밀도 있게 완성되어, 중당 이후의 문단(文壇)의 중심적인 사조인 돈오무심(頓悟無心) 사상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당대(唐代)에 유행하던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을 근거로 당시(唐詩)를 평한 것은 남종선(南宗禪)인 벽암록이 갖는 불교문학사적 위치가 큰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참고로 벽암록의 최초의 편자(編者) 설두(雪竇)는 원래 운문(雲門)계열의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벽암록 공안에 최대다수 출연자는 역시 운문이다. 그는 16회나 나온다. 그러나 조주(趙州) 역시 출연횟수가 12회나 된다. 그리고 그 공안의 파워에 있어 조주를 따를 자가 없다. 제1칙 달마(達磨)이후 제 2칙에 조주가 등장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벽암록에서 조주(趙州)스님을 빼놓으면 벽암록은 의미 없는 책같이 보인다.
아니 선(禪)에서 조주를 빼놓으면 선은 그 찬란한 평상심을 잃는다고 하였다.
조주는 18세에 득도하여 120세에 입적한 조주는 과연 누구인가
다음기회에 조주스님을 소개코자 한다.
벽암록의 편집 구조는 아래의 제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①수시(垂示)-문제의 핵심을 제시하는 글머리말(序文)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본칙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수시(垂示)는 본칙을 읽기 위한 일종의 서문(序文)과 같은 내용이다.
②본칙(本則)-옛 공안(古則, 또는 公案)으로서 벽암록 핵심부분에 해당한다. 100개의 옛 공안이 벽암록의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는데 앞의 수시(垂示)와 뒤의 착어(著語), 평창(評唱), 송(頌)은 모두 이 본칙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착물들이다.
*고칙(古則)이란 선문(禪門)에서는 옛 조사(祖師)들이 남긴 언행 중에서 후세에 귀감이 될 만한 것을 말한다.
③착어(著語)-일종의 촌평(寸評)으로서 하어(下語)라고도 한다. 속담과 속어의 투성이며 문장의 응축력(凝縮力)이 뛰어나다. 여기에 원오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가미되어 정신을 여간 차리지 않으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④평창(評唱)-평론제창(評論提唱)의 준말로 대체로 본칙의 배경이 되는 고사(故事)와 인물 소개, 본칙 자체에 관한 설명과 주석의 역할을 한다.
⑤송(頌)-옛 공안 100개 하나하나마다 붙인 설두의 공안시(頌古詩)를 말한다. 설두의 이 공안시는 그 격조가 높다. 그리고 선적(禪的)인 직관력(直觀力)과 시적(詩的)인 영감이 풍부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두의 이 송고(頌古)를 공안시의 백미라고 일컬어 왔던 것이다.
깨달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⑥송착어(頌著語)-설두의 공안시 한 대목 한 대목 밑에 붙인 원오스님의 촌평이다.
⑦송평창(頌評唱)-설두의 송고(頌古)에 대한 원오의 평창(評唱)이다.
자, 그러면
벽암록(碧巖錄) 벽두(劈頭)에 나오는 중국 최초의 선종(禪宗)으로 추앙받는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에 건너와 불법천자(佛法天子)라고 차칭하던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양(梁)나라 무제(武帝464~549)와 불법(佛法)의 대의(大義)에 대한 대화를 다음과 같이 나눈 것이 벽암록 제1칙이다.
양무제(梁武帝)는 금강경(金剛經)을 32분으로 분류한 것으로 유명한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부왕(父王)이다.
벽암록 제1칙 달마대사(達磨大師)와 양무제(梁武帝)
擧, 梁武帝, 問達磨大師, 如何是聖諦第一義, 磨云, 廓然無聖, 帝曰, 對朕者誰, 磨云, 不識, 帝不契, 磨云, 遂渡江至魏, 帝, 後擧問誌公, 誌公云, 陛下還識此人否, 帝云, 不識, 誌公云, 此是觀音大士, 傳佛心印, 帝悔, 遂遺使去請, 誌公云, 莫道, 陛下發使去取, 闔國人去, 佗亦不回
양무제가 달마대사에게 질문 했다.
-무엇이 불법(佛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대사는 말했다.
-만법(萬法)은 텅 빈 것. 성스럽다 고할 것이 없습니다.-
양무제는 다시 질문했다.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달마대사는 말했다.
-몰라-
양무제는 달마대사의 말을 깨닫지 못했다.
달마대사는 양무제와 헤어져 마침내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갔다.
양무제는 뒤에 달마대사와의 대화를 지공화상에게 말하자,
지공화상이 말했다.
-폐하! 달마대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양무제는 말했다.
-몰라-
지공화상이 말했다.
-그는 관음대사(觀音大師)이며,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계승한 사람입니다.-
양무제는 깊이 후회하고 마침내 사신을 보내어 다시 초빙하고자 하자,
지공화상이 말했다.
-폐하께서 사신을 보내어 모셔오려고 하지 마십시오.
온 나라 사람이 모시러 가도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양무제가 질문한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聖諦第一義)”는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오조(五祖) 홍인(弘忍)이 제자들에게 과제로 제시한 “불법의 대의”를 말한다.
불법의 대의란 번뇌 망념을 텅 비우는 공(空)의 실천으로 반야의 지혜를 체득하는 반야사상과 반야의 지혜를 언제 어디서고 마음대로 전개하는 자각의 주체인 불성사상을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벽암록(碧巖錄) 제1칙에서는 이러한 선불교의 정신을 부처님의 정법을 이은 선종의 초조인 달마에게 불법천자로 유명한 양무제가 질문하는 대화를 통해서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달마는 일체의 만법은 본래 텅 빈 것(一切皆空)인데 성(聖)스럽다고 할 고정된 법은 없다고 대답한다.
금강경(金剛經)에는 ‘고정된 법은 없다(無有定法)’는 말이 있다. 반야의 지혜는 마음을 어디서도 머무름이 없도록 하는 무주(無住)와 어떠한 경계나 모양도 취하지 않는 무상(無相)의 실천을 하라는 것이다. 즉 불법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하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일체의 존재와 함께 반야의 지혜와 자비를 나누는 삶을 지혜롭게 사는 가르침이다.
이런 금강경 불법인 달마대사에게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불법(佛法)의 근본”을 물으니
아는 체하는 양무제(梁武帝)가 아니꼬웠던지
-만법(萬法)은 텅 빈 것. 성스럽다 고할 것이 없다.-
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일국의 제왕(帝王)이며 불법천자(佛法天子)라고 차칭하던 양무제(梁武帝)는 기분이 상했던지 달마대사에게
-지금 불법천자이며 제왕인 나에게 성의 없이 대답하는 그대는 누구냐?-
고 묻는다.
달마대사는 속으로 불법(佛法)인 만법(萬法)이 공(空)으로 텅 비었는데 “불법(佛法)의 근본”이 어디 있느냐. 제왕(帝王)의 머리도 “텅 비었군” 하는 생각이 들어
-몰라-
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잘난 체 하는 양무제와는 불법을 논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위(魏)나라로 간다.
양무제는 지공화상에게 달마와의 대화를 말하자,
지공화상이
-폐하! 달마대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양무제는
-몰라-
하고 대답한다.
달마대사의 “몰라”는 “나는 황제인 당신과 주객(主客)의 대립이나 상대적인 차별심이 없다.”는 불법의 대의를 잘 아는 “몰라”이고
양무제의 “몰라”는 중생심(衆生心)으로 진실을 알지 못하는 지혜 없는 무지(無知)와 교만과 자만으로 잘 모르는 “몰라”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