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살인이다.’
100일 전 77일의 옥쇄파업을 벌이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외치던 구호입니다.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에 오른 977명이 농성을 벌이던 공장 안에 시뻘건 글씨로 써있기도 했습니다. 다소 과장되게 다가오는 구호이기도 했지만 목숨을 걸고 파업을 벌이는 이들에겐 꽤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났던 노동자들은 절 만나면 하소연하기 바빴습니다. ‘나이 사십 넘어서 새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회사가 무조건 나가라고만 하니 답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퇴직금으로 조그만 사업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던져보았지만, 불경기인데다 변변한 사업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에겐 되레 퇴직금을 날려버릴 수 있는 일에 뛰어들라는 조언을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파업은 끝났습니다. 8월 6일. 노사는 48:52(고용유지,정리해고)의 비율로 협상을 맺고 파업사태를 끝냈습니다.
그 후 100일. 해고된 노동자들은 어떻게들 살고 있을까요.
파업에 가담했던 노동자 대부분은 경찰 수사를 받았고요.
이중 70여명은 구속되어 최근까지 교도소 생활을 했습니다. (대부분은 현재 집행유예로 풀려난 상태고 한상균 전 지부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 21명은 여전히 교도소 수감상태입니다.) 미리 희망퇴직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느라 분주했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노동부는 10월 26일 쌍용차 해고자 2178명 중 434명에 해당하는 19.8%가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언뜻 보면 비교적 빨리 노동자들이 안정된 삶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밀하게 살펴 보면 아직 갈 길은 멉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취업 통계에는 인력시장,대리운전,주유소 비정규직에서 일자리를 찾은 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라고 보기 힘들지요.
상당수의 노동자들에게 ‘쌍용차 출신’이라는 것이 되레 재취업의 장애물이 되고 있었습니다. 쌍용차 다녔다는 것만 확인하면 기업들이 채용을 꺼린다는 증언이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해고 노동자 김아무개씨(38). 그는 농성보다는 명예퇴직을 선택한 뒤 지난 6월 말 동료 2명과 함께 대구의 한 자동차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면접을 봤습니다. 자동차 기술을 갖고 있던 김씨였기에 실무 담당자도 꽤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씨는 끝내 취업하지 못했습니다. 면접을 끝내고 출근 날짜까지 조율한 상태에서 갑자기 ‘무기한 채용 연기 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건강검진만 받으면 되는 상태에서 채용결정이 번복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이유는 김씨가 쌍용차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지인을 통해 ‘윗선에서 쌍용차 파업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그래도 김씨는 희망을 잃지 않고 다른 기업에 또 면접을 봅니다. 이력서를 보낸 뒤 해당 업체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또 연락이 없습니다.
김씨는 전화를 걸어 면접 날짜가 언제인지 물어봤습니다. 들려오는 대답은 이랬다고 합니다.
“아..그 쌍용차 다녔던 분이시죠? 안오셔도 됩니다.”
면접기회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쌍용차’란 이름을 굳이 입에 올리면서 면접 올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파업에 가담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쌍용차 출신’이라면 채용을 꺼려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또 다른 해고자 이아무개씨. 그는 전기전자 쪽에 기술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을 겪었습니다. ㅎ 자동차 회사 협력업체에 지인을 통해 면접을 보았는데 결국 취업하지 못했습니다. 인사팀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는 최종 결정권자가 ‘이 사람 쌍용차 출신 아니냐’며 한 마디 했다는 것입니다.
박권규 쌍용차 창원지회 정리해고위원회 의장은 제게 이런 말을 전해오셨습니다.
“면접 볼 때마다 ‘쌍용차’ 출신이라면 채용을 거부당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들려옵니다. 기업들이 쌍용차 출신은 채용을 거부하기로 내부 지침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쌍용차 농성이 전국적 이슈가 되자 기업들이 쌍용차 노동자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대기업 출신이라면 협력업체에서는 반길만도 한데, 쌍용차 노동자들은 오히려 ‘쌍용차’이름을 주홍글씨처럼 달게 된 셈입니다.
정부에서도 이 문제는 좀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는 쌍용차사태 직후 해고된 노동자의 재취업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평택시를 ‘고용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죠. 그런데 파업이 끝나자 고용개발촉진지구에서의 재취업은 거의 일어나지도 않고 노동부는 평택시가 요구한 특별지원마저도 거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기업들은 쌍용차 출신이라면 취업을 꺼려 합니다. 살 길이 막혔습니다. 이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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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의원과 면담하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결국, 답답한 몇몇 노동자들은 지난 주 권영길 국회의원을 찾아 하소연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해고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권 의원은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최선을 다해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약속하며 이들을 돌려 보내셨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함께 해 노동자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구조조정당한 노동자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다른 노동자들도 쌍용차 노동자들처럼 구조조정 시도가 있을 때 강하게 저항할 것입니다. 누가 순순히 명예퇴직을 신청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사회는 또 엄청난 사회적 갈등비용을 치러야 할 겁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은 해고 노동자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돕고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