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이의 비유에서 유대인은 우리와 다른 농법을 사용한다는것이다. 유대땅은. 특히 남쪽에는 언덕이 많고 물이 귀한지역인지라. 우리나라에서는 고랑을 먼저만들고나서 씨뿌릴곳을 정해 파종을 하는 반면에 이곳은 먼저 씨를 뿌린후에 지형에 따라. 고랑을 만든다고합니다.
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씨뿌리는것에 비유했을까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중에는 농사꾼이 있었나요. 아니면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는 예수님이 만나는 사람들이 농사꾼이었는가요?
지금 이스라엘에는 갈릴리아호수와 사해가 있습니다 그사이를 요르단강이 흐릅니다. 북쪽 시리아쪽의 요르단강은 강폭이 넓고 수량도 많습니다 이강은 남으로 흘러서 사해로 흘러가지만 지금은 그 수량이 적어서 사해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지금 남미에는 원주민들이 유럽의 침입자들에 의해 모든땅을 빼앗기고. 그들은 살기위해 늪지대나. 높은산으로 가서 살고있습니다. 그들은 정복자에 의해 그들소유의 땅은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들이 부유한 백인들을 위해 일을 하더라도 품삯도 받지못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이들을 도울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박해시대때 그리스도인은 살기위해 산악지역에 가서 마을을 이루고살았으며 그곳에서 숯을 굽거나 아니면 가마를 만들어서 장독과 같은 그릇을 만들어서 가까운 장터에 내다팔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천년전 유대지방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이나 이백년조선시대의 그리스도인이나 오늘날 남미의 원주민들은 그들간에는 소통하고 살았지만 피곤한 삶을 살았으리라 여깁니다.
씨뿌리는이의 비유를 보면 가시덤불이나 돌밭이니 하는 내용이 나오는것으로 봐서 산언덕 비탈진곳에, 우리나라처럼 소에 장기를 매어 이랑을 만들수는 없었을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는 고통받는이들을 구원하러 오신것입니다. 그것은 다른말로 한다면 복음의 씨를 뿌리러 오신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아주변을 제자들과 다니면서 치유와 먹을것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을 위해 여러 말씀을 하시고 홀로가시어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아호수에 배로 건너가자 무리들이 육로로 그쪽으로 몰려들었다.오천명을 먹이신 기적만 보더라도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인원이 오천명이 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그런면이 있지만 유대인가정은 많은 자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모여든 수는 오천명의 몇배나 되는 수였을 것입니다.
지난날 이병호주교님이 어떤글에서인지 강연중인지는 잘 생각이 나지않지만 주교님. 당신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산을 받쳐들지만 평신도들은 그대로 비를 맞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피곤함을 표현한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인지 가난한이나 소외받는이들이 모여 사는것입니다. 가나안땅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먹을양식과 물보다 짐승들을 위해 여기저기 옮겨다닌다고 합니다. 그들은 귀한것을 얻기에.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가보면 천막을 치고 옮겨다니는 민족을 보게되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이들이 살아가지만 오래전에는 그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안산에 와서 차량등록사업소에서 일했다. 개인적으로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있지만 돈을 벌기위해 사업용으로 주로 화물차를 모는 이들이 있습니다 열악한상황에서 어려움이 많고 사고등으로 과태료나 벌금도 많이 냅니다
그들은. 아무리 통보를 해도 해결하지않습니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그들 가정을 찾아갑니다. 그런분들은 자기주소지에 살지 않기에 통장의 도움을 받아 찾아나섭니다 낮에는 집에 없기에 밤에 가게됩니다.
명단이 적힌 종이를 들고 운전하는 일행과 함께가는데 대부분은 본인은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찾아가보면 할머니와 함께사는 어린아이만을 만나게되는데 그당사자는 돈을 벌기위해 지방으로 떠나갔다고 합니다
저는 이륜차 즉 오토바이 배달차를 주로합니다 단시간에 빨리 배달하기에 사고가 많고. 사고가 나면 오랫동안입원하고 악순환이 됩니다 그런 사정때문에 한젊은이를 알게되고 병문안도 갔습니다. 그때는 겁도 없었기에 그와 관련된 전산자료를 지우고 서고에 보관된 관련자료를 파기하여서 그에게 부담을 없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공소기한이 지나서 말할수가 있지만 그당시만 하더라도 왜 가난하고 어려운이들에게 더 나쁜경우가 생기는지를. 몰라기에 저도 불편했습니다.
등록소앞에 작은개신교회가 있습니다. 가족전체가 하는 교회입니다. 버스를 운행하는데 어느날 목사님이 오셔서 선교시 이동용으로 사용하는 이륜차를 등록하셨다. 그이후 몇차례방문하시고 저도 그교회를 찾아가고 매주토요일에 오일장을 찾아가면서. 하는 길거리선교를 함께다니면서 교회에 나갈것을 권장합니다.
더러는 당신이나 열심히 다니라는 핀잔을 받게되면 그냥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때 느낌을 들어보면. 그 자신도 교회에 들어오기전에. 많이 했던 반응임을 깨닫고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니면서 그리스도를 알리지만 자신들의 교회로 인도하지 않기에 그들은 결과도 알지못하고 관심도 없는것같습니다. 그러나 그교회는 어려움이 찾아오고 다른곳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안산에는 수백개의 개신교회가 있습니다 몇몇 작은교회목사는 선교하신 시장에서 만납니다 적지않는 교회에서. 운영비를 마련하지 못해 목사님부인 사모가 별도의 일을 하여 보탠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성실하게 하고 구석구석 다니면서 알리지만 대형교회가 다니면서 다 쓸어갑니다.
대형교회는 주일 여러차례 예배시간을 갖습니다. 그때마다 버스가 집앞에 와서 태워주고 합니다. 교회에는 국수등 먹을것을 줍니다. 휴게시설도 잘 되어있어 사람들이 거기로 많이 옮긴다고 합니다. 작은교회는 도저히 그들 교회와 상대가 안되는 것같습니다만 그런교회는 어떤난관이 오더라도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때문에 하느님일은ㆍ 주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수있는것은 사제를. 만나기어려운시기에 복음을 만난 사람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가능하고
주님이 가라고하시는 그길에는 단서조항이 전혀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과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어떤길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생각하면 광야에나 사막한가운데, 산골짜기에 있을것이다. 어려움속에서도 성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