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해지는 일본 들여다보기.
강대해지는 일본 들여다보기.
미 일 동맹으로
강대국이 되어지는 일본이
그 시작은 언제고 어떻게 키워졌는지
국민성은
어찌하여 이웃을 불편 하게만 하는지 등등
궁금하여 알아 본다.
일본의 역사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지방의 군주들이
사병을 모아 끊임없이 전쟁을 하였는
전쟁의 역사부터 시작이다.
그것은
국내뿐 아니라 바다건너
중국 우리나라에게까지 위협 하였다.
그러면서
독특한 중세 무사도와 같은
일본의 무사계급 사무라이로 발전하고
이 사무라이가
달성 할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주군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행위다.
사무라이는
행동강령이 진일보 하여
무사로서 할 일을 다하지 못할 경우는 자살도 불사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배를 갈아서
‘하라끼리’(切腹) 라는
그들에게만 있는 의식이다고 할 자존심이다.
12세기
일본을 통치하던 가장 권세가문 쇼군은
태양의 여신 직계 후손으로
경배 받는 천황에게 자신이 거느린
사무라이들의 군사적 보호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지배 계급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이때부터
극소수의 사무라이들의 행동은
일본 문화 깁숙히 녹아서
젊은 남자들이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표상이 되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일본을 지배한 도꾸가와(德川)막부는
섬나라를
외국으로부터 철저히 봉쇄하여서
외국의 기술과 산업문명에 뒤져서
안정에 위협을 느끼던 중
1852년 미국대통령 빌트 모어는
일본이 개항을 거부하고
유럽 팽창주의를 비난하자
매튜 페리 제독을 보내서
일본을 강제로 개항토록 하였다.
1853년 페리 제독은
증기선 두 척을 도꾜만에 정박해놓고 내려서
쇼군의 중심지로 들어가서
높은 관리와 회담을 요구하였다.
놀란 도꾸가와 막부는
전쟁도 불사 할려고
귀중품을 감추고 공포에 떨면서 임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에 위협을 느낀 막부는
요구대로 우리 조선보다
약 30여년 전에 개항을 하였다.
그후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와도
통상협정에 서명하고 개방을 하였다.
그러나
이때도 매사에는 반대가 뒤따르듯이
막부의 결정을
굴욕으로 여기는 엘리트들이 있었고
그들은 똘똘뭉쳐서
언젠가는 이 굴욕을 갚아주겠다고 벼르며
재빨리
모든 문물은 받아들이고
숙달시키는 등 국력을 길렀다.
드디어
쇼군이 나라를 통치할 힘이 없다고 여겨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막부는 무너진다.
메이지 천황이라는
이름으로 봉기한 1868년 반란에 성공하여
근대 일본이 성립 되었다.
태양을
숭배하는 신도(神道)를 국교로 삼고
천황을 받드는
사무라이 윤리인 무사도의 나라로되어
후에
‘존왕양이 부국강병’(尊王攘夷富國剛兵)을
스로건으로 하여 과학 경제 군사 분야에
놀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정부는
뛰어난 인제를 외국으로 유학 보내
선진 과학기술을 익혀 무기공장을 세우고
외국의앞선 제도를 들여오고
지방 봉건적이 군 통수권도 중앙으로 집결 시키고
장차
서양과 대결할
지난번의 치욕을 잊지 않고 길러서
그 실험장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등에
조금씩 점진적으로 침략 하면서 국력을 길렀다.
1876년 군함을 조선에 보내
강제로 통상조약에 서명토록 하고
1894년에 청일전쟁을 하여 이기고
1905년 러일전쟁을 이겨
그토록 벼르던
서구와의 개항 초 굴욕을 씻었다고 하며
사할린 절반을 획득하고
일본인들은 승리감 행복감에 빠진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섬유나 무역뿐 아니라
철강 산업 조선 등
중화학 공업이 활발하게 발달하고
일본의 주가는 하늘로 치 솟았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의 거품이고
대전 후 세계는 공황에 빠진다
따라서
일본도 언제까지나 계속 될 줄 알았던
군수품경기도 끝나고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졸지에 직장을 잃고
미국의 대 공황으로
대미 수출은 갑자기 줄어들고
갑자기 부상한 일본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게도
전쟁 중에 비 협조 등이 작용되어
일본제품 구매를 꺼리게 되고
중국 또한
일본제품 불매 운동 등으로
일본은 극심한 경제 어려움에 빠져든다.
그런데
1923년 대지진이 발생 하기까지 하여
아울러
일본은 더욱더 어렵게 되어 이를 갈게 된다.
드디어
인구도 메이지시대 3천만이던 것이
6천5백만으로 늘어서 이제는
국민들 먹여 살리는 것 또한
좁은 영토에서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이때
일본군부의 오가와 슈메이는
일본의 아사를 구출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패권을 놓고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을 펴냈다.
그의 책 일부분에
‘새로운 세상이 등장 하기 전에는
반드시
동서양 사이에 목숨을 건 전쟁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미국이 도전해 옴으로서 현실화된다.
동양에서 가장 강한 나라 일본과
서양의 강국미국의 전쟁은 필연이고
다만
시기는 신(神)만이 알고 계실 것이다’ 고
쓴 것이 있었다.
이 책은
당시 시름에 빠진 일본인들을
너무나
자극하는 애국심으로 불타게 하였다.
이렇게
일본의 군벌들
그리고
극우세력들은 전쟁 준비를 차곡 차곡하여
1930년대 이후
아시아는 물론 미국에까지도
전쟁을 하는 전쟁 광이 되었고
그 후에도
그들은 세계에서 두각이 아니면
슬픈 국민이라는 관념을 가진 민족이여서
국가를 키우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실수
미국은 2차 대전 전범국 일본을
그들이 저질은 죄값을 치르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해서는
그 당시 트루먼 대통령의
우유부단함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소련의 세력확장을 우려해서
그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어서
자기편으로
맹종토록 할려고 그랬다는 설도 있다.
독일은
유럽 여러 나라들이 철저히 응징했지만
일본은
지역적인 여건으로
미국이 빨리 살려서
동아시아의 자기들 협력국가로 만들려고
그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현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미국 혼자 감내 하기 버거우니
일본을 키워서 함께 대응 할려는 것이다.
지금
아베신죠와 오바마의
지나치다 싶은 정도의 결속을 보면서
지난 역사의 일본이라는 민족
그리고
동아시아의 이런 현실을 알아서
우리나라의 갈길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