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이상향 존재의 역설
다음 카페 / 백승태
일본에서 독도의 영유권과 관련하여 국제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뜻을 펼치고 있어 여론이 시끌시끌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독도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하며, 범세계적인 독도지킴이 운동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영토분쟁으로 옥신각신하는 곳이 한 곳 더 있다고 우리들은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은 바로 제주도 남쪽 해상에 있는 ‘이어도(파랑도)’이다.
‘이어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영토분쟁보다도 이청준의 「이어도」와의 인연덕분이었다. 「이어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TV문학관을 통해 드라마로 먼저 알게 되었고, 소설로 읽었던 것은 그 이후였다. 「이어도」는 1974년 9월 「문학과 지성 17」을 통해 발표되었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이 소설로 제6회 한국일보 문학창작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이 소설은 수상이후, 1976년에 극단 신협을 통해 연극으로도 무대에 올랐다. 또한, 1977년에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이청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소설이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이 소설은 1977년 김 기영 감독에 의해 영화로 각색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소설과는 사뭇 달랐지만, 내비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변하지 않았고, 주인공이 군인보다는 민간인으로 등장해서 오히려 대중들에게 친숙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소설 「이어도」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4명이 있으며, 이들은 소설 속에서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 소설은 파랑도 수색 작전으로 시작한다. 파랑도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군대와 함께 당시 취재기자들도 동행을 하게 됐는데, 천남석 기자도 그 중 하나다. 천 기자는 제주도 출신으로 환상의 섬인 이어도의 전설 속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섬을 부정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실종으로 이 소설에서는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한 흐름이 생겨난다.
선우 현 중위가 이 흐름을 타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중심인물인데, 선상에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던 천 기자의 비보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고 천 기자의 편집국장인 양주호를 만난다. 비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야 했던 선우 중위는 사실에 대해 지독한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다. 사실을 알기 위해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 사건을 접근한다. 그리고 사실에 대한 결벽증으로 천 기자의 죽음에 대해 추리를 하며 소설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편집국장인 양 주호는 덩치가 크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선우 중위와는 반대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제주도의 이어도 전설을 잘 알고 있으며, 천 기자가 이어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하여 자살했음을 짐작하고 있다. 선우 중위가 사실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데 반하여 양 주호는 예감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대조적인 성격은 선우 중위와 양 주호의 심리적 대립관계를 만들고, 소설의 흐름을 잡아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양 주호는 천 기자의 자살을 추측하는 선우 중위를 데리고 <이어도>라는 술집으로 안내를 한다. 그리고 <이어도>에서 한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천 기자의 죽음을 그 여자에게 알려준 후, 선우 중위를 천 기자의 집에 안내해준다. 양 주호는 선우 중위의 대립자이면서도 이처럼 이야기 속의 키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이어도>의 여자이자, 천 기자의 여자는 가족을 일찍 이어도로 보내고, 이어도 노래를 부르면서 <이어도>라는 술집에서 일을 한다. 천 기자는 이 여자에게 이어도를 떠날 것을 강요하고, 몇 가지 해괴한 버릇을 숙명처럼 길들여놓는다. 선우 중위는 이 여자와의 하룻밤을 통해 천 남석이 갖고 있는 이어도에 대한 애증을 알게 된다. 그리고 천 남석에 대한 퍼즐이 모두 맞춰지도록 도와주는 역할과 함께, 선우 중위를 다시 양 주호에게로 이끌게 한다.
이 여자는 선우 중위와 잠자리를 계기로 섬을 떠나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섬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양 주호는 얘기한다. 그리고 양주호의 짐작대로 그녀는 섬을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섬사람들에게 있어 <이어도>에서 이어도를 꿈꾸게 하는 이어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선우 중위가 진실을 알기 위한 마지막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박 기자에 대한 진실을 선우 중위가 알기 위해서는 이어도 자체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면서, 연극과 영화로도 각색이 됐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요소가 이 소설을 대중의 인기소설로 만든 것일까? 그것을 몇 가지로 분석해보았다.
첫 번째는, 시대적 상황과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환상의 소재에 있다. 이 소설은 그 당시 실제 있었던 파랑도 수색 작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몇 번이나 작전에서 실패함에 따라 파랑도와 이어도는 동일한 환상의 섬으로 취급되었다. 이어도는 제주도의 전설로 환상의 섬이다. 그리고 이어도의 전설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상향(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현재의 이슈가 되는 사건과 맞물린 가상의 이야기는 대중성을 증폭시키는 요소였다. 이런 대중성은 영화에서도 잘 나타났다.
두 번째는, 소설 속의 에로티시즘에 있다. 선우 중위가 <이어도>의 여자와 이어지기 위해서 작가는 하룻밤을 같이 자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옷을 벗었다’, ‘난폭하게 여자를 학대했다’ 등의 문장표현으로 하여금 독자들을 자극하여 대중성을 획득했다고 여겨진다. 부분의 작품들이 대중적인 이슈를 강조하며 섹슈얼리즘 혹은 에로티시즘을 작품에 섞고 있다. 당의정설과 같이, 작가의 사상은 무거우니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일부러 에로티시즘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추리적 요소이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과 비슷한 맥락으로 천 기자의 실종과 함께 그의 실종 사건의 진실을 추리하는 소설이다. 다만, 추리소설처럼 논리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이어도의 전설을 바탕으로 몽환적으로 접근한다. 선우 중위의 행동에 따라 독자들도 같이 추리하고, 의문을 갖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귀를 기울인다. 추리적 요소로 독자들과 같이 호흡하는 소설이 대중성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네 번째는 반전이다. 양 주호는 선우 중위를 <이어도>라는 술집에 데리고 가고, <이어도>의 여자를 만난 후, 천 기자의 여자를 소개시켜주려고 한다. 그리고 선우 중위가 천 기자의 집에서 기다려서 만난 천 기자의 여자는 다름 아닌 바로 <이어도>의 여자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어도로 떠났다고 믿었던 천 기자가 다시 제주도의 해변에서 발견되는 반전이 주는 여운은 실로 진실을 찾아 헤매던 독자에게 합당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이 소설은 중편으로 장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서 대중들을 휘감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다.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이 몰입하여 책을 다 읽었을 때는 가슴 속에서 심장이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흐름을 좇는데 그치지 않고, 머릿속으로 지속적으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은 어디 있는가?’였다. 이어도는 제주도의 섬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의 섬이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삶의 이상향이었다. 이상향은 어디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현실을 사는 모두의 마음 속 숙제 같은 것이다. 천 기자는 이어도가 죽음을 미화시키는 것 같다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부모님은 이어도를 부르짖고 그를 떠나갔다. 결국 이어도는 그에게 저주의 대상이었으나, 그는 이어도를 찾고 죽음을 택했다. 과연 우리들에게 꿈꾸는 이상향은 어디에 있을까? 유토피아라 불리던 곳이 죽음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곳인가? 그게 우리의 삶이 주는 이상일까? 삶이 주는 안식은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이 소설은 역설적이면서 모순적인 소설이었다. 늘 뒤집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소설이 구성되어 있었다. 이어도는 죽음의 섬이면서 삶의 이상향이었고,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섬이었다. 천 기자는 자신이 그렇게 부정하던 섬이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자살한다. 그리고 그의 자살은 역설적으로 천 기자로 하여금 섬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게 했다.
또한, 선우 중위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양주호가 행동하고, 선우 중위는 이를 좇을 뿐이었다. 결국 이 소설은 양주호의 생각과 행동을 좇는 것이 된다. 그리고 선우 중위와 양주호의 마지막 담화에서는 양주호가 선우의 생각을 모두 뒤집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양주호는 사람들은 때로 사실에서보다는 허구 쪽에서 진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는 말을 한다. 이 소설은 뒤집어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이 소설에서 나에게 주는 물음은 유토피아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상향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의 제목이 주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는 질문 안에 답이 있었고, 소설 안에 질문과 답을 모두 숨겨두었다. 그 답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있었다.
마지막에 천 기자가 다시 해변으로 돌아온 장면에서 천 기자가 이어도를 못 찾고 돌아온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보다는 천 기자에게 이어도는 자신의 섬, 제주도였다는 생각이 더 옳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어도와 제주도는 떨어질 수 없는 공간이었고, 제주도가 있어서 이어도가 있는 것, 이어도가 있어서 제주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어도와 제주도는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이다. 이상향은 따로 있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상향은 늘 함께 있어왔고, 죽을 때까지 이상향은 이상향으로 함께 그곳에 존재할 뿐이었다. 이상향이기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마음속에 함께 존재하는 것, 그것이 이어도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진실이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역설적이면서 모순적인 이야기를 이 소설에서는 문장에서도, 인물에서도 모두 드러내놓고 있었다. 이청준의 『이어도』는 우리의 이상향은 죽음 뒤에 가려진 것이 아님을, 사실로 접근하기보다는 진실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