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5:1
모든 일에는 임계점이 있습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더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임계점을 넘어섰고, 그때가 되면
모세와 사무엘과같은 유능한 지도자가 호소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해도 안 될 때가 오기 전에 돌아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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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선지자가 두 번이나 여호와의 이름과 그 언약을 따라 기도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거절하십니다. 심지어 모세와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 섰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진노하셔서 진멸
하려고 하실 때에 모세는 몇 번이나 중보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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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내 세우며 기도하고 자신의 목숨조차 내어 놓고 기도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사무엘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도 모세와 사무엘처럼 기도하였는데도 두 번이나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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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하였나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6).” 그 뜻을 돌이키시기에 지쳤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반역하고 배신하며 돌아섰는지 성경 전체가 증거 하고 있습니다.
범죄 하여 징계가 임할 때에는 살려달라고 간구하고서는 살려주면 다시 범죄 하는 이러한
모습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며 오늘 저의 모습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무엇을 잘못 하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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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이것만 용서 하여주시면 앞으로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아직 죄가 무언지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급하면 늘 이런 모습이 나옵니다.
다시는 안 그렇게 하겠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용서 받았지만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가는 것입니다. 고무줄을 잡아 당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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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버리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제가 그런 놈입니다. 그러므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과 칼과 기근과 포로라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멸한다고 하십니다.
내가 사랑하여 그들의 말을 멈추지 않은 어그러진 길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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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므낫세의 악(4)으로 인한 것입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여 생명연장을 15년이 받고 나서 낳은 자식입니다.
므낫세의 악이 얼마나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채웠는지 그의 손자 요시야가 엄청난 개혁을
하여도 그 죄를 만회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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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아무리 간구하여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고 나서 다시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완전히 거절하시고 다시 살려주심을 통하여 인간에게서는 일체의 가능성이 없음을 보여
주시면서 자기 백성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방적은 은혜로만 구원시키심을 보여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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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부르짖는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거절하셨습니다(마15:33~38).
예수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면 어떤 인간도 구원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간구를 거절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자기 이름과 언약을 인하여 바벨론에서 돌이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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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십니다. 그렇게 돌이켜 주시는 것을 에스겔서에서는 마른 뼈다귀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마른 뼈다귀들에게 말씀과 생기를 대언하자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에 의하여
버려짐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분을 죄로 삼아버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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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아무리 처절하게 부르짖어도 죄인은 그렇게 버려짐을 당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처절한 부르짖음에 아버지께서 거절하시는 것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길입니다. 그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 것입니다. 이 휘장이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합니다(히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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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나님의 거절 속에 있는 구원의 역설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나의 기도에 다
응답하셨다면 나는 심판의 자리로 갈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간구하는
것을 거절하시고 아버지께서 그 아들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넘겨주시는 것이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입니다. 나는 언제나 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떠질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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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다고 하십니다(6).“ 여호와께서 손을 펴시는 것은 적을 물리치실 때에 손을
펴서 물리치시는데 이제는 그 손을 자기 백성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을 펴십니다. 예루
살렘이 하나님의 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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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지치실 리가 있겠습니까만 이런 표현을 하신 것은 이제 심판이 확정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한계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유와 책임을 묻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가장 오랫동안 가장 완악한 통치를 했던 므낫세왕 시대의 악행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시대를 심판하신답니다. 그날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땅의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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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었다고 합니다(7). “ 키는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기구입니다. 키질을 하였다는 것은 심판을 집행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심판하시면서도 내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근데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백성들이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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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합니다. 심판의 그날이 되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져야 할 자손들(창22:17)이 죽어
과부가 모래보다 많아질 것이고(8a), 적들이 한밤중에 은밀하게 오지 않고 대낮에 공개적으로
파괴할 것입니다(8b). 일곱 자식을 가진 어미의 영광이 한날에 자식을 다 잃음으로 수치와
절망으로 역전될 것입니다. 그러고도 남은 자는 칼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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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심판으로만 끝났다면 더 이상의 성경 기록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어떠한지를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다시 돌이켜 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주의 이름과 그 영광의 보좌와 그 언약을 언급하며 용서하여 달라고
하여도 거절하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셨을 때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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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떠하였을까?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너를 위해 울 자,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5)“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서 불쌍히 여길 자가 없고 울어 줄자가 없고
평안을 물을 자가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위로하는 자가 곁에 있기
만 해도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멸망하는 데도 아무도 위로할 자가 없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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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소에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로 인하여 우는
자들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cf겔9:4~7)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가 없었기에 멸망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불쌍히 여기며 울어주며 평안을 물어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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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식을 치시는 아비의 울음이 들리는가?
무슨 근거로 우리의 믿음이 껍데기 신앙이 아님을 자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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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된 심판(1-2)
a.중보를 거부하는 여호와와:1
b.칼, 기근, 포로:2
포로로 끌려갈 이스라엘(3-4)
a.네 가지 심판:3
b.므낫세의 죄:4
예루살렘 멸망(5-9)
a.예루살렘을 향한 탄원:5
b.인내가 끝나다:6
c.신속하게 임할 재앙: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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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1a)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1b)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1c)
만일 그들이 네게 묻거든(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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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자는 죽음으로(2b)
칼을 받을 자는 칼로(2c)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2d)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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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것이라고 전해라(2f)
죽이는 칼과(3a)
찢는 개와(3b)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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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3d)
므낫세가 행한 것으로(4a)
내가 그들을 세계(4b)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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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5a)
너를 위해 울 자(5b)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5c)
네가 나를 버렸고(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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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물러갔으므로(6b)
네게로 내 손으로 너를 멸하였나니(6c)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6d)
지쳤다고 전해라(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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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7a)
그 자식을 끊어서(7b)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7c)
이는 그들이(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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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7e)
내가 대낮에 파멸시킬 자를(8a)
그들에게로 데려다가(8b)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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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람과 두려움을(8d)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게 하였으며(8e)
여인에게는 쇠약하여(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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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하게 하며(9b)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9c)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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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사무엘이 중보해도 소용없다_
It's no use for Moses and Samuel to be important
내 뜻을 돌이키기에도 지쳤다_
I'm tired of going back on my word
놀람과 두려움이 갑자기 닥치리라_
Surprise and fear will come sudde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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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당한 선지자의 기도를 통해 인내가 바닥이 난 하나님을 보았나이다.
중보기도조차도 소용없는 철저한 심판과 응징으로 세상 어디에도 피할 곳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를 향해 지치지 말아 주옵소서.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2023.8.5.sat.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