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오피니언 입력 2019-05-23 03:00
[김도연 칼럼]자연 속 독락당, 그리고 도시 아파트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포스텍 총장
조선시대 서원(書院) 9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는 소식이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서원이 석굴암, 불국사 그리고 수원화성 등에 이어 세계가 간직해야 할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서원을 찾아 우리 전통 건축물의 아름다움, 특히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서원은 대부분 해당 지역 출신의 저명한 유학자를 기림과 동시에 후학을 교육하는 두 가지 기능을 지닌 곳이었다. 한때 전국에 1000여 개에 이르는 서원이 있었지만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47개만 남았다. 이번 지정에 포함된 경주의 옥산서원(玉山書院)은 16세기 중종 때 이조판서, 경상도 관찰사 등 최고위 관직을 지낸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1491∼1553)을 모신 곳이다. 그는 퇴계 이황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성리학을 이끈 대표적인 학자로 퇴계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옥산서원 인근의 경주 양동마을은 이미 2010년에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회재는 양동마을의 서백당(書百堂)에서 태어났는데 이 가옥은 모두 세 명의 걸출한 인재가 태어나는 길지(吉地)로 전해지고 있다. 회재는 여기서 태어난 두 번째 현인으로 간주되기에 마을의 문중에서는 아직도 한 사람을 더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양동마을에서는 며느리가 아닐 경우, 시집간 딸이 몸을 풀러 친정에 와도 실제 해산날에는 서백당이 아닌 다른 집으로 보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하튼 회재처럼 태어난 곳, 그리고 사후에 모셔진 곳 모두가 세계문화유산인 경우는 전례가 없을 듯 싶다. 그러면 회재가 살았던 곳은 어디일까? 옥산서원 앞을 흐르는 그림 같은 계곡 물줄기를 상류 쪽으로 500여m 오르면 그가 직접 지은 저택이 있다. 그는 이곳의 이름을 독락당(獨樂堂)이라 지었다. 홀로 즐거움을 느끼는 집이란 뜻으로, 빼어난 한옥의 묘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계곡에 바짝 붙어 있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주변 풍광을 감상하면 그것이 바로 독락의 경지일 것이다.
누구나 독락당 같은 곳에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건축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경비가 들었을까? 그리고 독락당에서 살기 위해서는 평소에 얼마나 많은 일손이 필요했을까? 혹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락당에 사는 한 사람을 위해 그들의 삶을 희생해야 했을까?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되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은 퇴계를 모신 곳인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퇴계의 재산은 땅이 100만 m²(약 30만 평) 이상이었으며 노비가 250∼300명에 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회재 역시 이와 비슷한 재력과 권세를 지니고 있었으리라 믿어진다.
사실 이렇게 극소수를 위해 대부분의 사람이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 것은 세계 모든 나라의 공통된 역사다. 그런데 과학과 기술 발전은 어렵고 힘들었던 인간의 삶을 바꾸었으며 특히 19세기 초의 산업혁명은 변화의 획기적 계기가 됐다. 기계에 의해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산업이 있는 도시로 모여들어 인간적인 삶을 찾았다. 그리고 도시는 이들이 형성한 대규모 시장으로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더욱 발전했다. 산업혁명 후 200여 년이 지난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붐비는 도시에서 주택은 당연히 가장 큰 문제가 되었는데, 좁은 땅에 여러 주택을 짓는 방법은 이를 하늘 높이 쌓아 올리는 아파트 건설뿐이었다. 공동주택은 산업혁명 훨씬 전에도 있었지만 본격적인 고층 아파트는 철강이 생산되어 건축에도 쓰이면서 가능해졌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10층 이상의 건축은 틀림없이 외면당했을 것이다. 금속 및 기계 엔지니어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많은 사람들은 대도시의 고층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아파트 한 채, 한 채는 그곳에 살고 있는 각 가정의 독락당이 됐다. 물론 회재의 독락당과는 다르게 계곡 물소리 대신 소음이 있고 또 밖을 내다보아도 같은 고층 아파트뿐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발전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 모두가 독락을 해야 하니 작은 불편은 서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 오늘의 묵상 (220723)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가 빠르고 강력하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럴듯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방해자들만 늘어가는 것 같은 상황에,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고 예수님을 향한 마음도 흔들렸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그 영향력과 힘, 생명력을 느끼기 어려울 때도 있고 가라지와 같은 악의 존재 때문에 그 열매들이 흐릿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성장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됩니다(마태 13,32 참조). 씨앗은 ‘저절로’ 자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활동에 의존하거나 인간의 눈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박해와 같이 퇴보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성장합니다. 또한 누룩은 온 반죽에 파고들어 그 반죽을 부풀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마태 13,33 참조).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신앙이라는 누룩이 우리 삶의 모든 곳에 파고들고, 신앙인 한 사람이 가정과 사회에 파고들어 점차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빠르고 강력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는 하느님 나라에 주목하는 사이 작지만 소중한 성장의 표지들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 돌봄이 필요한 이를 떠올리고, 세상의 정의를 위하여 좀 더 행동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피조물 보호를 위하여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것 등. 그 또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대전교구도룡동성당주임)
* 연습밖에 없다. (아침공감편지 230508)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습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타고난 재능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합니다.
나는 슬럼프에 빠지면 더 많은 연습을 통해 정상을 되찾곤 합니다.
-타이거 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