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은퇴 노인의 삶
박월준
앞집에는 우리또래의 노 부부가 살고 있다.
자제들은 거의 외국에 살고, 아들 하나만 서울에 사는데1-2주에 한번씩은 부모를 찾아와 함께 지내다 돌아 간다고 한다.
어느날 좀 한가한 시간에 앞집 할머니가 차나 한잔 하자며 전화가 왔다.
그렇잖아도 아웃과 소원한 아파트 생활인지라 고마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방문했다.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적적 할 수 있는 노 부부의 생활에 좀 변화를주려는 노력이 이곳 저곳에서 보였다.
골프 퍼팅 맽트를 거실 한쪽에 놓아두고 수시로 연습을 하고
서재겸 쓰는 가운데 방에는 컴퓨터도 놓여있고,
무언가 만들다가 밀쳐놓은 잡다한 것들이 눈에 들어 왔다.
어쩜 내 취미와 이리도 비슷할까?
적당히 덜 치워진듯한 탁자위에 유자차 두잔을 놓고 묵은 이야기를 꺼내본다.
할아버지는 70대 중반이신데 젊었을때는 부부가 거의 대화 나눌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사업에 열중 하셨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정리 하시고 지금은 소일거리 정도로만 유지하고 계시는데
한 주에 두세번 골프를 가시니 전연 심심치는 않을 것 같았다.
사업에서 거의 손을 뗀 할아버지는악기를 배우러 다니시고, 헬스장엘가서 개인 랫슨도 받는 등 스케줄이 꽉 차 있는 상태였다.젊었을 때만 생각하고 너무 무리 하쎴던지 몸살에 감기가 겹쳐 호되게 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밤에 외출 할 일이 생겨서 할아버지 저녁을 어떻게 할까 하고 어디쯤 오시는지 물으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생판 모르는 어린 학생이 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 ㅇㅇㅇ할아버지 전화 아니예요?”
“맞는데요”
“그런데 왜 학생이 받아요? 이 전화기를 어디서 주웠어요?”
“아닌데요. 할아버지가 두고 가셨는데요.”
“할아버지? 어떻게 되는 할아버지예요?”
“거기가 어디예요”
“ㅇㅇ동 인데요”
“거기에 할아버지가 왜 가셨었는데요?”과외 하러요”
“뭐? 무슨 과외?누가 과외를 해요?”
“할아버지가요”
“누가 배워요? 할아버지가요?”
“아니요, 제가요”
아무래도 이상하다.
“학생이 할아버지에게 과외를해요 ?”
“네”
“어떻게 아는 할아버지예요 ?”
“몰라요.”
“누가 소개 했어요?”
“이모가 요”
어딘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묻고 싶은건 많았지만 소용 없을 것 같아
“알았어요”하고 전화를 끊고 말았다.
마침 현관에 들어서는 할아버지에게
“
여보! 정화기 있어요?
”했더니
이쪽 저쪽 주머니를 뒤지면서
“없네, 어디 두었나? 그런데 왜?”
“아니 몇시쯤 들어오셔서 저녁 드실래나 해서 전화를 했더니 왠 엉뚱한 학생이 받길래요”
“어떻게 된거예요 ?과외는 또 뭐구?”
쭈밧 쭈빗 거리며 속 시원한 대답을 않는 할아버지에게 다그쳐 물었다.
몇 년 전 사무실에 데리고 있던 여직원에게 너무 잘 챙겨주다
호되게 당한적도 있고 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상황이 ? ? ?
얼마를 다그친 후에야 할아버지는 이실 직고를 하였다.
사실은 상이 용사 가족인데, 같은 사무실에 있는 직원이 부탁해서
그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 준다고 했다.
어머나 ! 놀랍고도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도와 준다고 하다가 이상하게 엮이는 건 아닌가 싶지만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비록 중학생 이지만 그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게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 아닌가 ?
은퇴후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서 우울증까지도 생길 수 있다는데
운동에, 악기에, 거기다 어린학생에게 과외까지 해주면서 지내고 계사는 할아버지가
고맙기까지 했다고.
얼마나 지속 될른지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건강만 하시라고 바랠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