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개성 불일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9층 금동탑과 황룡사 9층 목탑 모형....
찰주본기(刹住本記)에 따르면 황룡사 9층 목탑은 철반(鐵盤) 7보이고, 그 아래가 30보 3척(鐵盤己上高七己下高卅步三尺)이라고 하였다. 이때 1보는 6척이므로 철반 이상의 높이가 42척, 이하는 183척이라고 하여 총 235척으로 밝히고 있다.
한편 삼국사기에서는 “경문왕 13년(873년) 9월에 (기울어진) 탑의 개조가 완료되니, 9층으로 높이는 22장(220척)이었다”고 쓰고 있다.
삼국사기와 찰주본기의 기록을 비교해 볼때 삼국사기 보다는 찰주본기의 기록이 더욱 상세하므로 찰주본기의 기록을 따라 높이를 추정해 보자.
척(尺)은 과연 얼마의 길이일까?
척(尺)은 자라고도 하는데 자의 한자어가 척(尺)이다. 이 척(尺)은 손을 펴서 물건을 재는 형상의 상형문자로 최초에는 18cm정도로 추정된다. 이것이 차차 길어져서 漢나라 때는 약 23cm, 唐나라 때는 약 24.5cm정도 였다.
고려 및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32.21cm를 1자로 했으나, 세종 12년의 개혁시에 31.22cm로 바꾸어 사용해 오다가 한말(1902년)에 일제의 곡척(曲尺)으로 바뀌면서 30.303 cm로 통용되었다.
한편 얼마전 경기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성 안 저수지 터에서 7세기 신라인들이 쓰던 자의 하나인 당척이 발견되었는데, 길이는 29.8cm였다. 이것은 신라 석굴암 측량시 요네다가 결론내린 신라 당척의 길이 29.7cm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통일신라 이후의 1척일뿐 통일 신라 이전에는 고구려척이 사용되었다.
고구려척은 고대에 사용되었던 척중 가장 긴 장척으로 고구려척 1척은 1.176곡척(35.6328cm)이었다. 이 고구려척은 신라와 백제·일본에 전해져 백제의 미륵사지, 신라의 황룡사지, 일본의 호오류사(飛鳥寺) 등이 고구려척으로 만들어지며, 삼국통일후 당척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렇게 각 시대마다 척(尺)의 길이가 다르므로 황룡사 목탑의 높이를 계산할 때는 그 당시의 길이를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신라시대의 고구려尺인 1척=35.6328cm을 사용해 높이를 계산하면,
철반이상 42척 × 35.6328cm = 14.97m
철반이하 183척 × 35.6328cm = 65.21m
∴ 황룡사 목탑의 총 높이 = 80.18m이다.
본 건물의 높이가 65.21m이므로 각 층은 평균 약 7.25m이다. 각 층이, 7m의 높은 높이의 천장으로만 구성한다면 80m에 이르는 높은 건물을 지탱하는 것은 목재 건물에서는 아마 상당한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각 층에서 지붕의 기와를 얹은 곳은 새로운 층으로 설계하여 목조 구조를 지탱하는 장치를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국 산서성 응현 목탑의 구조인데, 응현목탑은 밖에서 보면 5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각 층마다 암층이 있어 내부에서는 9층의 구조를 가진다. 이를 暗9층이라고 한다. 황룡사 목탑도 이러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보면 황룡사 목탑은 밖에서 보면 9층이지만, 안에서 올라보면 17층의 건물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