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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과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
죽도(竹島)
여행일 : ‘19. 11. 20(수)
소재지 : 충남 홍성군 서부면 죽도리
트레킹 코스 : 선착장→해변→제1전망대→뒷장벌→아일랜드카페→제3전망대→조가비해변→죽도쉼터→앞장벌→제2전망대→마을회관→선착장(소요시간 : 4.84㎞/ 2시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홍성군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일한 섬으로 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죽도(竹島)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수만(淺水灣)의 고요한 물결 위에 떠있 듯 자리한 본섬을 11개의 꼬맹이 섬들이 호위하는 모양새인데 그 자태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덕분에 낭만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섬이다. 죽도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잘록한 허리로 이어져 있다. 해발고도 10m 안팎의 봉우리마다 조망대가 세워졌고, 조망대와 마을을 연결하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두어 시간이면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참고로 이 섬은 2018년 5월 정기여객선이 개통되며 누구나 쉽게 닿을 수 있는 섬이 되었다. 그 덕분에 올해는 해양수산부의 ‘여름에 썸 타고 싶은 섬’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래선지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배를 증편했을 정도로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 찾아오는 방법
죽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남당항(홍성군 서부면 남당리)’까지 와야만 한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 남당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에서 내려와 29번 국도를, 잠시 후 갈산면소재지(상촌리)에서 40번 국도로 옮겨 타고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남당항이 나온다. 이미 입소문이 난 대하축제는 물론이고, 쭈꾸미축제와 새조개축제를 따로 열 정도로 수산물이 풍부한 고장이다.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는 바다낚시 마니아들까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렴풋하게 윤곽이 잡히는 죽도를 배경삼아 바다에 떠있는 배가 우리를 태우고 갈 홍주해운 소속의 ‘가고파호’이다. 길이 20.07m에 무게가 29톤인 유람선 모양의 선박으로 선원을 포함해 총 98명이 탑승할 수 있단다. 이 배는 남당항과 죽도항 사이의 바닷길 2.7km를 1일 5회(9:00. 11:00, 13:00, 14:00, 16:00) 운항한다. 죽도항에서는 9:30, 11:30, 13:30, 15:30, 17:00에 각각 출발하니 참조할 일이다. 참! 손님이 많을 때는 배의 운항 횟수를 늘리고 있었다. 배편이 없어서 섬에 못 들어갈 일은 없겠다는 얘기이다.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운항시간 덕분일 것이다. 하나 더, 이용 요금은 비도서민의 경우 대인 5000원, 소인 2500원, 중ㆍ고생 4500원, 만65세 이상은 4000원이며 도서민의 경우 50% 할인된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다. 미리 예매를 하고 싶을 때는 홍주해운 남당항 매표소(041-631-0103), 죽도항 매표소(041-632-2269)로 문의하면 된다.
▼ 배는 15분이 채 되지 않아 ‘죽도’에 이른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운 거리라는 얘기이다. 하긴 남당항 선착장에서 낮게 떠 있는 죽도의 윤곽이 보일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정기여객선이 다니기 전에는 작은 나룻배로 섬과 육지를 오갔을 정도란다. 그렇게 도착한 죽도의 방파제를 겸한 선착장은 유난히 멀리 바다를 향해 튀어 나갔다. 간만(干滿)의 차이가 크기로 소문난 천수만의 특성 탓에 배를 대는 게 여의치 않아서였을 것이다.
▼ 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방파제에 그려진 벽화가 시선을 잡아끈다. 색이 바랜데다 지워진 부분도 있지만, 바지락 캐는 풍경, 만선의 기쁨 등 섬 이야기가 담겨있어 정답게 느껴진다.
▼ 트레킹은 방파제가 섬과 만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용트림을 하면서 위로 오르도록 만들어놓은 나무계단의 전면에 ‘죽도둘레길’이라는 이름표를 달아놓았으니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참! 발걸음을 너무 재촉하지는 말고 입구에 세워진 이정표도 한번쯤 살펴보고 길을 나서자. 위에서 내려다본 전경사진과 지명, 방향표시 등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이정표이다. ‘천수만의 보물섬, 죽도마을’이라는 이름표에 걸맞다 하겠다.
▼ 소나무가 가득한 산봉우리 하나를 넘자 깨진 조가비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작은 해안이 나타난다. 푸른 바다 위를 떠다니는 올망졸망한 꼬맹이 섬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해안이다.
▼ 해안이 끝나면 작은 오름이 시작된다. 그리고 중간쯤에서 길이 나뉜다. 곧장 전망대로 올라가도 되고, 오른편으로 돌다가 올라도 된다. 이곳 죽도 둘레길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 하겠다. 꼭대기를 가운데에 두고 빙 둘러 나있는 탐방로를 따르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서 오르면 언제나 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참! 이 봉우리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산자락이 온통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죽도(竹島)라는 이름의 근원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풍경이라 하겠다.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섬을 흔히 죽도라 부르니 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죽도라는 이름을 지닌 섬이 무려 59개나 된다고 한다. 유인도만 해도 9개나 된다니 흔한 이름이라 하겠다. 그만큼 대나무가 흔한 나라라는 얘기도 될 것이고 말이다.
▼ 오른편으로 돌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위로 올라서니 이층으로 된 ‘제1조망대’가 나온다. ‘용이 물길을 끊은 섬’이라는 뜻을 지닌 ‘옹팡섬 조망대’이다. 이층으로 오르면 전망 좋은 곳에 ‘님의 침묵’으로 알려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 1879-1944)선생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이 홍성(결성면 성곡리)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그를 시인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승려로 더 유명하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 보완했으며 옥중에서는 '조선 독립의 서(朝鮮獨立之書)‘를 지어 독립과 자유를 주장하기도 했다. 승려로서는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지어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했다.
▼ 조망대 한편의 포토죤에는 판다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판다는 대나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물이니 죽도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고 보면 되겠다.
▼ 만해스님의 어깨 너머에로는 널따랗게 시야가 열린다. 탁 트인 천수만 풍경과 그 위로 올망졸망 떠 있는 크고 작은 부속 섬들이 보인다. 이곳은 물결이 잔잔하기로 소문난 천수만, 그 위에 돛단배마냥 떠있는 섬들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 반대편으로도 멋진 그림이 그려진다. 게의 양 발처럼 바다로 향해나간 특이한 섬의 모양새가 한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 조망대를 내려오니 시판(詩板)이 세워져 있다. ’새러 티즈데일 (Sara Teasdale)‘의 선물이라는 시가 눈길을 끈다. 한 평생을 살면서 해본 세 번의 사랑이 각기 웃음과 눈물, 그리고 침묵을 선사했단다. 또한 노래를 주었는가 하면 눈을 뜨게도 했는데, 영혼을 준 것은 세 번째 사랑이었단다. 그렇다면 난 아직도 멀었나 보다. 두 번을 더 사랑해야 영혼을 지닐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이런 시판들은 제2조망대와 제3조망대에도 여럿 세워져 있었다.
▼ 둘레길로 되돌아가 트레킹을 이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전망대를 만난다. 밀물 때만 되면 섬으로 되돌아가는 갯바위까지 데크로 다리를 놓았다. 그만큼 조망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턱없이 아름답다. 바다에는 흰색의 돔이 있는 바지선 모양의 인공섬이 떠있다. 낚시체험을 위해 만든 ‘바다낚시공원’이란다. 저곳에서는 숭어와 주꾸미, 갑오징어, 우럭 등이 잘 잡힌단다. 이용료는 1인당 4만원이며 3명 이상이 되어야 배의 운항이 가능하다니 참조해 두자. 더불어 천수만의 수심이 깊지 않고 간만의 차이가 심해 입질이 좋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반대편에도 본섬과 연결되어 있는 섬들이 나타난다. ‘큰달섬’과 ‘작은달섬’이다. 저 섬들은 만조(滿潮) 시에는 별개의 섬이지만 간조(干潮) 때는 모세의 기적처럼 본섬과 이어져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참고로 본섬과 큰달섬 사이에는 썰물 때도 물이 빠지지 않는 지름 20m 정도의 물구덩이가 있다고 한다. 이 물구덩이를 죽도 주민들은 용이 승천하다가 떨어져 생겨난 것이라 하여 ‘용난둠벙’이라 부른단다.
▼ 탐방로는 이제 바닷가를 따른다. 널찍하면서도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길이다. 바닥은 대부분 야자매트를 깔아 걷기가 아주 편하다. 흙길을 낼 수 없는 곳에는 데크로 다리를 놓았다. 아무튼 바닷가를 따르다보면 곳곳에서 시야가 뻥 뚫린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전망데크도 여럿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눈만 들면 잘 그린 풍경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름답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 잠시 후 맨몸을 드러낸 갯벌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마을 초입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저 근처에 ‘독살체험장’이 있다고 했다. 독살은 해변에 돌담을 쌓아 들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잡는 원시어로 방법이다. 돌 그물인 셈이다. 하지만 아직 물이 덜 빠진 탓인지 독살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이미 허물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독살로 물고기를 잡던 시절도 있었으나 효용가치가 떨어진다고 해서 사용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되었다니 말이다.
▼ 마을에 이르자 섬의 폭이 갑자기 좁아졌다. 두 개의 작은 섬이 모래톱으로 연결된 모양새이다. 아니 육계사주(陸繫砂洲)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 좁디좁은 공간이지만 길은 둘이나 나있다. 그것도 시멘트로 포장까지 해놓았으니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제3조망대로 갈 때는 뒷장불해안으로 난 길을, 그리고 제2조망대를 향해 돌아올 때는 앞장불해안으로 난 길을 따르도록 되어있다. 기껏해야 한 발짝 거리 밖에 되지 않지만 말이다. 참고로 전라도에서는 물이 빠지는 썰물 때 드러나는 너른 모래밭, 즉 ‘갯벌’을 ‘장불’이라 부른다. 방언(사투리)이다. 이게 충청도로 넘어오면서 ‘장불’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 바닷가 갯벌에 네모난 ‘둠벙’이 만들어져 있다. 그 안에는 밀물 때 들어왔다 갇혀버린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있다. 조개잡이를 끝낸 주민들이 뻘밭에서 더럽혀진 손발을 씻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물이지 싶다.
▼ 아랫마을의 담벼락도 역시 벽화(壁畫)로 채워져 있었다. 요즘은 벽화가 대세라더니 숨겨졌던 마을도 추세는 따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식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민속화(民俗畫)를 그려 넣음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이 어촌마을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은 농촌마을의 풍경을 담고 있다는 게 조금 어색했을 따름이다.
▼ 섬이 아름답다보니 흔하디흔한 식당까지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길손에게 손을 내미는 주인 아낙네라고 예쁘지 않을 리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약속하고 그냥 지나쳤지만 아뿔싸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동선(動線)에 따라 이동하다가 선착장 부근의 다른 카페에 들어앉아버렸기 때문이다.
▼ 탐방로는 마을의 끄트머리에서 다시 위로 향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물방울 같은 영롱한 입체조형물을 만난다. 벽면에 크고 작은 그릇들을 붙여놓은 모양새인데, 그 크기나 생김새가 각기 다르다. 아니 한걸음 더 나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재를 조화롭게 배열함으로써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버렸다. 일반인과 예술인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곳은 전망대의 역할까지도 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도 옹팡섬조망대가 걸터앉은 해안선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가득 차오르는 명품전망대이다.
▼ 이곳의 탐방로도 역시 산허리로 나있다. 산봉우리에 올라앉은 조망대를 가운데에 두고 에둘러서 길을 내놓은 모양새이다. 시야가 뚫리는 곳에는 전망대도 들어앉혔다. 둘레길을 돌면서 아름다운 섬 풍경을 실컷 구경한 다음 정상의 ‘담깨미조망대’에 올라 대미(大尾)를 장식하라는 모양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성어를 완성시켰다고나 할까?
▼ 그렇게 해서 오른 산봉우리는 제3조망대인 ‘담깨비 조망대’가 주인이다. ‘담깨비(혹은 당개비)'란 용왕에게 제를 올리는 당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대나무로 기둥을 받친 조망대에 오르면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 1889-1930) 장군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본군을 대파했던 1920년 청산리대첩(백운평전투, 천수평전투, 어랑촌전투)의 주역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의 주인공 김두한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진 이분도 역시 홍성이 낳은 인물이란다. 하지만 그는 1930년 일본군이 아닌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국했다. 나라보다 이념을 더 중요시하는 공산주의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확실한 이유일 것이다.
▼ 담깨비전망대가 내놓는 또 다른 볼거리는 ’죽도의 흔적‘이다. 중간층에 만들어놓은 공간의 두 면에 흑판을 대고 낙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가지고 온 쓰레기는 남김없이 되가져가고 대신 추억만 남기고 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 전망대에 오르면 하늘이 반, 바다가 반이다. 높이에 비해 전망이 시원하다는 얘기이다. 천수만에 동동 떠있는 죽도는 자신보다 작은 11개의 섬을 거느린다. 올망졸망 새끼 섬들이 부러운 듯 그리운 듯 죽도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일부 섬은 물이 들고 남에 따라 가느다란 모래 띠로 이어졌다 끊어지기도 한단다. 이왕에 시작했으니 한걸음 더 나가보자. 본섬의 서쪽에는 큰달섬과 작은달섬, 충태섬이 내려다보이고, 북쪽 방향으로 띠섬(모도), 멍대기(명덕도), 오가리(큰오가도와 작은오가도), 전재기(전도) 등이 늘어서 있다. 또, 남쪽 끝섬으로는 지마녀, 움마녀, 제일 북쪽 섬으로 꼬장마녀 등이 있다. 마녀의 뜻은 만조시간이 긴 섬이라는 의미이며, 꼬장은 ‘끝장’ 즉, 제일 북쪽의 끝을 의미한단다.
▼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는 홍성 쪽의 해안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로는 대나무 숲이 무성하다. 저 대나무들은 한때 주민들에게 유용한 수입원이기도 했단다. 30~40년 전만 해도 대나무로 만든 복조리를 시장에 내다팔아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광천장이나 남당리 도매상에게 넘기곤 했는데 모산포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결성장’까지 배를 타고 가서 내다 팔기도 했단다. 참고로 죽도의 ‘시누대(竹)’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난’ 당시 삼별초군이 화살(竹箭)을 만들기 위해 베어다 썼다는 얘기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강화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진도에 왕국을 세웠던 삼별초는 한때 남동쪽으로 남해도, 서해에서는 안면도까지 장악했었다. 그러니 죽도 역시 삼별초 왕국의 영토였을 것이다.
▼ 조망대를 내려오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적혀있지 않겠는가. 30년에 가까운 공직생활 동안 내 좌표가 되어준 윤동주의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되는 이 시는 ‘공직을 마치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변해 내 책상머리를 지켜줬다. 덕분에 난 대통령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들을 받은 반면 경징계 한 번 받지 않은 채로 영예롭게 공직을 마칠 수 있었다.
▼ 이젠 제2조망대로 갈 차례이다.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가는 죽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그 사이로 난 데크로드로 들어서자 천수만의 바닷바람도 한풀 걸러진다. 대신 싱그럽기 짝이 없는 댓잎 서걱거리는 소리만이 귓가를 맴돌다 간다. 그렇게 잠시 내려오니 헬기이착륙장 뒤편에 세워놓은 이정표(마을/ 해변가/ 야영장)가 눈길을 끈다.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무기둥에 자그만 방향표지판을 매달고 있는 게 여간 자연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오랫동안 꽁꽁 숨겨져 온 마을 풍경답다 하겠다.
▼ 몇 걸음 더 내려가니 하얀 모래사장이 기다랗게 펼쳐진다. 누군가는 이곳을 몽돌해안이라 했었지만 막상 내려서보니 자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래사장도 아니다. 잘게 부서진 조가비들이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맞다. 이곳 죽도는 새조개가 많이 난다고 했다. 소라나 굴도 넘쳐난다고 했다. 그 조개들이 먹거리라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난 뒤에도 사람들에게 멋진 볼거리를 남겼나 보다. 이왕에 내려선 해안이니 끝까지 거닐어보기로 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조가비들이 비명을 지른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여간 싱그러운 게 아니다.
▼ 조가비해안의 끄트머리에는 제주도의 해안을 연상시키는 갯바위가 널따랗게 펼쳐져 있다. 검은색에다 구멍까지 숭숭 뚫린 것이 영락없는 화산암이다.
▼ 바닷가를 걷다보니 발전용 태양광 패널(panel)들이 널따랗게 펼쳐져 있다. 3년 전쯤인가 이곳 죽도가 ‘에너지 자립 섬‘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이를 두고 한 말이었나 보다. 당시 기사는 이곳 신재생발전소와 공동어구장, 마을회관 등 죽도에는 저런 패널들이 650여 장이나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생산되는 전력은 201kW, 여기에 913kWh급 ESS설비를 갖춤으로써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단다. 참고로 ESS(Energy Storage System)란 전기가 남을 때 저장하고 부족할 때 공급하는 에너지 저장장치이다. 참! ESS의 축전량 부족을 대비해 100kW급 디젤발전기 3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두자. 하나 더! 통영시의 연대도가 그랬듯이 이곳 죽도 역시 에너지 자립을 이룬 에코아일랜드로 유명해졌다. 태양광만으로 자립을 이루다보니 죽도 주민들이 직접 출연한 에너지 기업 광고가 방송되기도 했다.
▼ 해안가에는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폐교 후 공터로 남아 있다가 ‘에너지 자립 섬’으로 조성되면서 관광자원으로 탈바꿈되었으니 ‘친환경 캠핑장’인 셈이다.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 시야까지 널찍하다. 해맞이나 해넘이 장소로 이만한 곳도 없겠다. 다만 텐트 가까이에 있는 무덤을 무덤덤하게 넘길만한 배포가 우선이지 싶다. 집사람은 요즘 무덤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했지만 말이다.
▼ 야영장 옆에는 ‘죽도 쉼터’가 지어져 있다. 작년에 개장할 때만 해도 ‘죽도 홍보관’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는데 언제 바꿔달았는지 모르겠다. 당시의 기사들은 ‘죽도의 만물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1층에 들어선 매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산품 판매장을 겸했다니 말이다. 그 외에도 1층에는 휴게소, 2층에는 사무실과 회의실 등이 들어서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마을을 빠져나와 ‘제2조망대’로 향한다. 아까 지나왔던 육계사주를 따르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즉 앞장불 방향의 길이다. 이 길의 양 옆, 그러니까 북쪽의 윗마을과 남쪽의 아랫마을 사이의 개미허리 양쪽은 활모양으로 생긴 아담한 모래해안이다. 두 개의 해안인 셈이다. 섬에는 이런 모래해안이 두 개나 더 있다. 북쪽 선착장에서 제1조망대로 가는 해안이 그중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아까 둘러봤던 야영장의 옆에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다.
▼ 윗마을에 이르러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자 ‘제2조망대’로 오르는 들머리가 나타난다. 윗마을의 끝단, 그러니까 햇살민박 옆에 목제의 데크계단길이 놓여있다. 계단 앞에는 ‘죽도 종합 이용안내도’를 세워 여행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죽도의 특산물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봄에는 바지락이 많이 나오고, 여름에는 꽃게, 가을에는 대하, 그리고 겨울에는 새조개가 많이 잡힌단다. 지금은 겨울의 초입, 노릇노릇 잘 구워진 대하를 안주삼아 풍류를 즐긴 뒤, 새조개칼국수로 속을 풀면 궁합이 딱 맞겠다.
▼ 이번에도 역시 산허리를 에두르는 길을 따르다 위로 올랐다. 각기 다른 조망을 보여주는 전망대를 두어 곳에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니 죽도의 얼굴마담이랄 수 있는 대나무 숲길을 더 걸어보고 싶었던 이유일 수도 있겠다. 죽도는 ‘대나무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우대라 불리는 가느다란 대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대나무 숲 사이의 탐방로를 따르다보면 바람결 따라 댓잎이 스치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고 했다. 이따금 여행객들의 두런두런 말소리가 섞여 들리기도 하지만, 한적하기는 매한가지라면서 말이다. 맞다. 마침맞게 날씨까지 맑다보니 청량한 공기 한 모금 들이키며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 그렇게 올라선 제2조망대는 ‘동바지 조망대’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기상관측시설의 곁에 세워진 ‘동바지 조망대’의 캐릭터는 고려의 명장 최영(崔瑩 : 1316-1388) 장군이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했다는 그도 이곳 횡성 출신이란다. 하지만 최영 장군의 탄생지는 철원과 서산, 개성 등에서도 각기 자기 동네라고 주장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조망대에는 ‘죽도 갤러리’가 들어서 있었다. 이곳도 역시 두 면을 할애했는데 다양한 죽도 사진과 홍성군의 유명인과 유적지 관련 안내자료, 홍성군의 다양한 민속 공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 ‘동바지조망대’에서의 조망도 일품이다. 주택가와 가장 가까운 탓에 오붓한 마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눈을 조금만 더 높이 들면 사방이 온통 ‘천수만(淺水灣)’이다. 태안반도 남단에서 남쪽으로 쭉 뻗어 내륙 깊숙이 들어온 만이다. 태안과 홍성, 보령, 서산 지역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를 남북으로 길게 자리한 안면도가 막아주고 있어 더없이 잔잔한 내해다. 수심이 얕다고 해서 천수만(淺水灣)이란 이름이 붙여졌단다. 참고로 천수만에는 이곳 죽도 말고도 섬이 여럿 더 있다. 북쪽 바다에는 간월도와 황도가 있고 아래쪽 바다에는 보령의 육도와 월도 등이, 만 바깥으로는 원산도와 효자도가 천수만을 호위하듯 서 있다. 천수만이 태풍에도 더없이 잔잔한 호수 같은 것은 그 때문이다.
▼ 동바지 조망대까지 둘러봤으면 이젠 선착장으로 되돌아갈 차례이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마을회관이다. 옥상에 재미있는 조형물이 올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낚시하는 가족이다. 조형물의 아이디어가 기발한 탓인지 이곳을 다녀간 여행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 사진을 올려댄다. 참고로 죽도는 24가구에 40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다. 면적도 0.17㎢에 불과하다. 그런데 배가 23척이나 된단다. 섬 주민 모두가 배를 소유하고 있는 어부들인 셈이다. 그러니 바다가 곧 그들의 생명선일 것이다. 마을회관의 조형물도 이런 점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 아뿔싸! 동선(動線)을 따르다보니 윗마을의 선착장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아일랜드 식당 사장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별수 없이 근처 ‘섬마을 카페’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건 숫제 음식백화점이다. 커피와 차는 기본이고, 스무디와 빙수도 준비돼 있단다. 메뉴판에는 굴밥과 간장백반도 보인다. 안주도 다양하다. 먹태나 감자튀김 등 마른안주는 물론이고 바닷장어구이나 닭날개 같은 진한 안주도 보인다. 심지어는 피자까지 내놓고 있었다. 하지만 난 캔맥주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배의 출발시간이 30분이나 앞당겨졌다는 산행대장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죽도에서 죽도의 음식을 맛볼 수 없었으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짭조름한 갯내음을 품은 바지락칼국수와 얼큰한 우럭 매운탕, 고소하고 걸쭉한 서리태 콩국수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는데 말이다.
▼ 귀경길에는 간월암에 들렀다. 이곳에서 주어진 시간은 무려 2시간, 서너 번이나 와본 곳이니 사진 찍을 일도 없다. 할 일 없이 배회하다 근처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대하와 새우튀김을 안주 삼아 마신 소주가 무려 2병, 해물칼국수로 속을 달래봤지만 그렇다고 술이 깰 리가 없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잠만 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