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거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하늘은 온통 회색빛, 며칠 비워두었다 돌아오니 썰렁도가 이제는 겨울수준입니다. 제주도에 와야 볼 수 있는 열대 식물들이 더 추워보이는 듯 합니다. 바람도 심해서 그야말로 비바람이 꽤 거친 날입니다.
우리가 며칠 비운 사이 이미 한라산에는 눈이 내려 10센티 넘게 쌓였다고 하니 모든 게 순식간입니다. 제주도를 비우기 전, 11월 8일까지 바다놀이를 했으니 단 열흘도 못 되서 다시 세상은 새로운 국면을 보여줍니다.
제주도의 겨울생활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 멋진 야외활동을 이어나갈 지 새로운 생활에 준비를 하게 됩니다. 종일 차거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차에 잔뜩 실어온 4명의 겨울옷의 부피가 꽤 많지만 기회삼아 정리를 해봅니다. 펜션용 주거공간이라 옷넣을 곳이 별로 마땅치 않다보니 구석마다 옷더미입니다.
이제는 가을용도 박스 속으로 들어가야하니 계절의 변화는 늘 의복생활에 가장 먼저 반영됩니다. 겨울옷들은 부피도 커서 옷걸이대가 꽉 차버리지만 겨울동안의 차질없는 만보걷기를 위해 바로바로 쉽게 꺼내입기 좋도록 정리해 봅니다. 겨울 만보... 파카, 모자, 목도리, 장갑 등이 필수일텐데 완이의 협조를 기대해 보는 수 밖에요.
때맞춰 비바람이 몰아친 날, 준이는 여전히 뒷머리 편두통증세를 몸으로 보여주고 완이의 입병은 음식을 제대로 못 먹게 합니다. 태균이는 입원과 수술, 저도 차몰고 다녀온 피로감으로 다소 기진맥진. 집에 다녀온 후유증들이 꽤 진하게 펼쳐집니다.
꾸준히 올린 제주도일기 덕에 가까운 주변사람들이 제주도에 오고싶은 생각들이 차고 넘치는 때, 11월에는 가까운 친구와 선배가 각기 다른 날짜에, 12월에는 또다른 팀이 오기로 되어있습니다. 생각같아서는 제주도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집을 가지고 언제든 놀러오는 사람들 며칠보내고 가도록 하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감각문제와 뇌를 참 많이 공부하게 되면서 제가 지나치게 눈이 밝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강하게 깨닫습니다. 좁은 곳이 싫고 막힌 곳이 너무 싫습니다. 영흥도집도 주변 풍경은 기가 막히지만 집구조가 너무 답답해서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습니다. 작은 집이 아님에도 펜션으로 쓰기 위해 무려 5개 공간을 독채로 쪼개 놓았으니 정작 주인이 머물러야 하는 공간은 너무 많이 좁혀져 버렸습니다.
나이가 드니 눈밝음 병이 더 커져서 -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의 감소로 심장기능이 약하됨 - 좁은 곳에의 적응이 더 어려워집니다. 아파트는 쳐다만 보아도 숨이 막히고, 차가 꽉 막힌 도로에서는 눈길을 자꾸 먼데로 돌리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눈밝음병의 또다른 단점은 어렸을 때부터 시달려온 큰 꿈에의 야망 혹은 욕심. 사람의 야망과 포부가 얼마나 눈의 기능에 달려있는지 요즘 정말 많이 깨닫습니다. 눈의 기능 특히 3D 기능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의욕도, 욕심도, 하고자하는 의지도 갖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3D기능이 지나치게 발달한 케이스라서 과도한 야망이 제 삶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습니다.
눈의 3D기능과 삶의 활기와 적극도, 포부는 밀접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꿈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주어진대로 살아가고 있는데 눈의 기능을 바꿔주지 않는 한 쉽지 않습니다. 시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안구와 동공이라는 근육의 민첩성과 그리고 뇌와의 정보교류의 측면을 말합니다. 그야말로 눈칫발이 야망과 포부의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의 삶과 무리하게 큰 공간에서 삶이 지금 제게도 큰 치유입니다. 제주도에서 드는 비용을 가지고 영흥도집을 고쳤다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제주도라는 자연환경이 주는 넉넉함, 고태의연함, 바다와 오름의 조화 등등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게는 삶의 결정적인 치유국면입니다.
아직은 완이에게 시간을 많이 빼앗겨야 하지만 완이가 무사히 학교 입학하고나면 저는 생겨먹은대로 큰 포부와 야망의 실현을 위해 또다른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12월에 오시기로 한 은사님의 방문은 특별히 반갑습니다.
학원 한번 다니지않았고 과외따위는 받아본적도 없고, 과거에 오로지 중고등학교만 다녀서 터득한 영어실력. 그 영어가 제 인생의 40년 가까운 직업의 바탕이었고, 지금의 발달장애 지식을 독학하는데 결정적인 도움 그 자체가 되는 소중한 무기! 제가 책을 완성한다면 영어본도 스스로 할 수 있으니 그것도 제 포부 중에 하나입니다. 저의 터득한 지식들은 국내보다 미국에서 더 먹힐 수도 있습니다.
은사님은 참으로 희한한 인연으로 제 고교시절 3년 간의 영어선생님이었고 2번의 담임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각 학년에 반이 10개나 되는 바글거리는 소도시의 여고에서 참 운명적인 인연입니다. 삶의 긴 과정에서 곳곳에 배치된 운명적인 만남들은, 누구나 그렇듯, 다 뜻이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태균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랑 그 전부를 다 주어도 모자랄 녀석. 그 녀석과 이번 겨울 만보행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우리의 겨울을 활기있게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해 줄 수 있는 게 많을텐데, 제 마음의 태균이 모습은 여기쯤에 있을까요?
첫댓글 태균씨 아기때 사진 넘 이쁘고 또 짠하고, 만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완이는 백일후 쯤 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겠습니다.
속히 대표님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