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방자치행정(지방정부)의 중요성
행정학 박사, 차관급 정부 자문위원, 시장 군수 역임.통일 전문 교수 박정웅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대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런던 남부 지방의 빈민촌에서
가난뱅이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곡마 단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며
자기 지방 밑바닥에서부터 정치적인 소양을 쌓아갔다.
20세 때 말단 지방은행원으로 들어가
지방정부의 예금, 대여금 실무를 익히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생의 방향을 출발부터 잘 잡았다.
계속 금융지식, 재무지식을 깊이 파고 들었고
지방행정 실무를 관심 있게 공부하였다.
노동현장에서 노조 체험도 쌓았다.
그런 지식의 바탕 위에 존 메이저는 구 의원이 되었다.
지방자치행정은 종합행정이다.
중앙 부처 1개 장차관 정도 업무에 머물지 않고
중앙부처 모든 장관들의 관장사항을
지방단위에서 움켜쥐고 통치하며 지방 정부를 구성하여
중앙부처 모든 정책,이슈,주요 실천사항들이
모여든 정치, 행정의 저수지이다.
기구도 중앙부처 모든 업무를 관장,실천하게
짜여 있다.
한마디로 지방대통령격인 지자체 장이
모든 중앙부처 장관 들 관장 사항을 규모만 줄였지
자기 지방 실정에 맞게 움커쥐고 통치하는
통치권의 분할 수행기관이다.
기획 재정,예산국(실과),여권과,법무관실, 상공국,농정국,
국토해양국,지방국(행정안정국),병무계,보건사회가정복지국,
교육지원과,소방,민방위 본부,국제협력국(과),도시계획과(국),
지방세과,노사정과,감사관실,문화체육 홍보국(실),관광국,
지역대책협의회(지역 기관장 합동회의), 지역방위협의회 등
중앙부처 대통령이 관장하는 각 부,처,청 업무를 지방단위에서
규모만 줄였지 거의 대부분 지역실정에 맞게
실천,구현하는 행정,정치의 중추신경이 지방자치 행정이다.
즉 지방자치단체장은 지방대통령의 기능을 수행한다.
조선시대에 임금 산하에 중앙행정장관(판서)으로 이조,호조, 예조, 형조,병조,
공조의 6조판서(장관)가 있었듯이 지방행정을 종합,통치하기 위해서 군수(원님)와
부사(요즘 시장) 산하에 지방행정기관으로 이방, 호방, 예방,병방, 형방, 공방의 6방이 있어서
지방수령(군수와 지금의 시장 격인 부사)이 지방의 입법, 사법, 행정 3권의
최고 통치권자였다.
해방 직후 한국의 지방자치에 많은 조언을 해 준 미국의 슙(shoup) 단장은
한국 기초 지방자치 단체 업무가 민생행정에서 중앙 각 부처 장차관 업무
못지 않게 중요하여 기초 자치단체에 우선적으로 중앙부처의
주요 권한을 모두 위임배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쓴 바도 있다.
이 보고서는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어서 지금도 세계 각국이
"중앙권한 지방이양법"까지 만들어 각국 실정에 맞추어
중앙권한의 지방이양이 계속되고 있다.
실로 21세기는 세계 각국이 바야흐로 지방 분권 가속화 시대이다.
도청은 중앙행정 시책 전달(배달) 기능이 많고 대통령 등 중앙행정 정책이 알찬 열매를
맺으려면 궁극적으로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가 잘 해주어야
국정 전반 시스템이 원만하게 잘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나라에서 지방행정에 10년만 제대로 종사하면
전체 각 중앙부처의 모든 업무 돌아가는 내용을 거의 꿰뚫게 되고
정치적인 감각도 충분히 갖추게 되어 있다.
그래서 도지사, 시장, 군수 등 지방 자치단체 장은 지방 자치법령에서
규정하듯이 자기 관내에서 최고 행정통치권자로서 법적인 직급을 초월하여
관내 행정에서 지방대통령격으로 지역대책협의회(관내 기관장 합동회의) 의장,
방위협의회의장이 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강학상 지방행정의 제 1인자, 지방 정치의 제 1인자라
부르기도 한다. 지방대통령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정부는 중앙정부 1개만 정부로 보지 않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이 관장하는
중앙정부 1개와 지방정부 226개 도합 227개 정부로
나누고 있는 것도 국정 운영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중요성과 비중을 높이 본 까닭이다.
이처럼 높아진 지방자치단체장의 위상은 현행 공무원법이 규정한
직급, 일반상식 정도를 훨씬 초과하여 같은 일반직 공무원 직급과 비교할 때
3~4 단계 더 초과된 권한과 책임을 명실 공히 수행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현재 광역시장, 도지사는 부총리급, 여당대표가 출마, 당선되고 있고
국회부의장, 국회의원, 장관, 4성 장군, 차관 출신들은 다시 기초자치단체인
시장, 군수, 구청장에 출마하여 당선되고 있다.
즉 도지사는 현행 타 부처 같은 직급보다 2~3 단계 더 높은 권한과
책임 있는 직위로 보고 있고 시장군수, 구청장은 타 부처 같은 직급보다
3~4단계 더 높은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는 직위로 보고 있어서
결국 장차관 못지 않는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선시대 원님, 부사보다 형식적인 입법 , 행정, 사법권 행사는 적으나
조선시대 원님, 부사는 예산규모와 행정기능면에서 현재 시장군수와 비교하여
매우 빈약한 통치권자에 불과했다.예산 규모면에선 지금의
읍면장에게도 훨씬 못미쳤다고 지방행정 전문가들은 말한다.
즉 현대행정의 특성인 행정국가의 위상에서 볼 때 조선시대 군수, 부사와는 비교되지 않게
현행 시장,군수는 막강한 인사,예산권,각종 인허가권, 광범위한 지역개발 추진권,
중앙 모든 행정부처의 주요시책을 지방단위에서 움켜쥐고 통치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국회의원, 장관이 부럽지 않는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정무직 공무원 등이 널리 인정하고 있는 공지의 사실이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도 필자가 1991년 여름에
미국 미주리주 싸익스톤 시를 약 1개월 교환 친선 방문한 자리에서
시장 브리핑을 받고 느낀 점은 한국도 지방자치단체장 산하에 지방 자치 경찰제 ,
지방 자치 검찰제를 두면 지금처럼 경찰권력, 검찰 권력이 비대해 지지 않고
진정한 국리민복을 위해 훨씬 효과적으로 검찰권, 경찰권이 행사되리라는
확신을 얻었고 한국도 언젠가는 미국 처럼 자치 경찰제. 자치 검찰제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필자의 이 염원이 속히 실현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중앙부처 장관 출신들이 다시 기초자치단체장 출마
러시를 이루고 있고 우리나라도 역시 급속히 이런 현상으로 가고 있고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물론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실시에 따라 50만명 이상 시장, 구청장은 1급 차관보급으로
중간, 소규모 인구 시장, 구청장은 모두 이사관으로 소규모 인구 군수도 모두 부이사관으로
일계급씩 직급 인상이 이미 이루어 졌다. 그러나 이런 직급 조정 정도 만으로는 아직도
그 권한에 걸맞는 직급 인상이 전혀 제대로 이루어 졌다고 말할 수 없다.
지방행정을 연구하고 경험한 학자, 현장 지휘관은 누구나 쉽게 이를 공감한다.
조선시대와 관직 비교는 기초자치단체장에 관한 한 현재 전혀 무의미해졌다.
더욱이 현행 광역자치 단체(도지사, 광역시)를 없애고
기초 자치단체가 50~60 개 광역기초 자치 단체로 통합되면
대권에 곧바로 도전할 수 있는 거물급 인사들이 한국 기초자치 단체장으로
출마할 날도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기초자치단체장이 명실공히 중앙부처 장차관 직급 이상이 예상된다.
일본의 경우는 이미 도쿄 도지사가 다시 오사까부 시장으로 출마 당선되었고
오사까부 시장이 총리에 도전할 채비를 하고 있다.
2015년 제 19대 대선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인 한국의 성남시 이재명 시장, 고양시
최성 시장이 곧 바로 대권 경선에 나서고 있는 점도
지방자치행정에서 얻은 정치 경험를 통해서 자신감을 가진 덕분이라고
수긍이 간다.
중국의 경우도 집단지도체제 9~7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모두가
그 직전 직급이 지방자치단체 단체장(지방당 서기)을 반드시 거친 뒤
중앙당 총서기 등 요직을 맡도록 인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법무부 장관을 역임 했던
다티는 퇴임 후 다시 기초자치 단체인 파리 제 7 구청장으로
출마 당선되어 2013년 5월 현재 근무중이다.
이처럼 지방자치 행정의 위상, 통치권력은 범지구촌의 지방 분권화 추세에
힘입어 가속도가 붙으면서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다.
명불허전이란 유행어도 있듯이 한국 정치인 중 실력 있고
합리적인 정치인들은 광역시장,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 지방의원
출신들이 많다.
독일 통일의 초창기 기초를 잘 닦은 서독 아데나워 총리도
쾰른의 명 시장 출신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런 경력을 쌓은 존 메이저는 26세에 구의원이 되고,
36세에 국회의원이 되고, 대처 수상 때에는
재무부 장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 50세인
1990년에 영국의 총리가 되어서 나라의 경제를 크게 일으키고
국내외적으로 큰 업적을 쌓았다.
그리고 그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스스로 물러났다.
'사람들이 있으라 할 때 나는 떠난다.
이제 나는 내 가정을 돌볼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공직자의 표상인가 !
곡마단 가정 출신 아들이
지방자치 행정에서 익힌 실력으로 세계 최고의 인물이 되었다.
캐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
따라가지 못할 해박한 실무 능력을 자랑하는 큰 인물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