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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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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랑이 오고, 행복이 오고, 질투심과 분노가 오고, 그리고 뒤늦게 부끄러움은 찾아온다. 나카지마와 정희를 향해 까닭 모를 분노를 느꼈던 그때의 일이, 편지를 펼쳐 그 안에 씌어진 글을 읽고 나서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크게 놀라지도 않았던 일이 지금은 너무나 부끄럽다. --- p. 48
아무런 모순도 없이 완벽한 세계였다. 정희와 내가 기댔던 참나무 등걸의 딱딱함이며 석양 무렵 바늘처럼 우리 시선을 찌르던 해란강 잔물결이며 내 발목을 휘감으며 날리던 아카시아 꽃잎의 일들이 고스란히 다시 살아났다. 내가 얼마나 정희를 사랑했는지, 내가 얼마나 정희를 그리워했는지, 내가 얼마나 정희의 몸을 만지고 싶어 했는지, 모두 떠올랐다. --- p. 61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이젠 그걸 알겠어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러기에 말했잖아요. 지금까지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당신과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때, 이 세상은 막 태어났고,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평안 속으로 나는 막 들어가고 있다고.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 p. 324-325
암실과 사무실의 등을 다 끄고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와 문을 잠갔더니 자물쇠 안쪽에서 딸깍하고 소리가 났다. 낮고 묵직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나는 오후부터 밤늦도록 내가 한 일이 인화 작업이 아니라 상처에 들러붙은 피딱지를 떼내는 일이었음을 알게 됐다. 훈풍에 대지는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으니 그 시절의 일들로부터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까? 그때 나는 불현듯 내게 닥친 그 행복이 왜 그다지도 고통스러운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내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지도로 그려본다고 치자. 땅에서 측량해서 그리는 지도가 있고 하늘에서 사진으로 판독하는 지도가 있다. 그 두 개의 지도는 서로 같은 것이면서도 전혀 다르게 경험된다. 그런데도 나는 애써 하나의 지도만을 바라봤을 뿐이다. 고통은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 p. 107
내가 갑자기 옆으로 쓰러지자, 여옥이가 내 몸 위로 기대고 괜찮느냐고 물었다. 여옥이의 입김이 내 귓바퀴를 하얗게 뒤덮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있는 힘껏 눈을 찡그려 감고 고통을 견디고 있는데, 여옥이가 슬며시 내 오른손을 잡아당기더니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입김을 불었다. 마바리가 덜컹거릴 때마다 입김을 부느라 말라버린 여옥이의 입술이 내 손에 와 부딪혔다. 그렇게 손이 잡힌 채,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누운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러지 마. 그 손을 동정하지 마.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손이니까. 그런 말이 입가를 맴돌았지만, 역시 음절로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 p. 111
그거 알아사 씁네. 내사 동무한테 애당초 맘도 없었는데 이 손일랑 그만 정이 붙어버렸소. 동무 처음 왔을 때, 송 영감이 희대의 영웅이 나왔다며 떠들었습지. 마작하다가, 혁명하다가, 특무질하다가 목 매달리는 사내는 많아도 여자 때문에 자기 목을 매는 사내가 간도 땅에 흔치는 않습지. 그런데 용정 나가는 길에 마바리에서 손 아프다고 우는 걸 옆에서 보니 그 맘은 또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런 생각이 듭데. 마음이야 어디 붙었는지 내사 모릅지. 하지만 손이야 눈에 보이니 만져주고 싶었습지. 그러다 그만 정 깊이 들어버렸소. --- p. 273
1933년 여름, 유격구에 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누구인가? 하지만 이 물음의 정답은 없다. 그들은 조선혁명을 이루기 위해 중국혁명에 나선 이중 임무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중국 구국군이 일본군에 패퇴한 뒤에도 끝까지 투쟁한 가장 견결하고 용맹스런 공산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였던 동시에, 한편으로 일단 민생단으로 몰리게 되면 제아무리 고문해도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던 일제의 앞잡이들이었다. 누구도, 심지어는 그들 자신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날, 박도만이 유격구에서 빠져나갈 작정이었다고 해도, 혹은 유격구를 생명으로 보위할 마음이었다고 해도, 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혹은 그 어느 쪽도 믿거나 믿지 않을 도리밖에 없었다. 1933년 간도의 유격구에서 죽어간 조선인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간도의 조선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객관주의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주관으로 결정되는 가혹한 세계뿐이었다. --- p. 213
나무는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그 내부에서는 세계와 끊임없이 투쟁하니까 저렇게 곧추 서 있을 수 있는 것이오. 인간 역시 모순에 가득 찬 세계 속에서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오. 도덕이란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만이 알 수 있는 것이오. 일단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의 도덕을 알게 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잔혹한 일들을 혐오하게 될 수밖에 없소. 변화를 멈춘 죽은 자들만이 변화하는 인간을 잔혹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건 정말 구역질이 나는 일이오. 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힘이 더 센 존재요. 나는 잔인한 세계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잔인한 세계 속에서도 늘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간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됐소. 인간이 성장하는 한, 세계도 조금씩 변하게 마련이오. 그런 인간의 힘을 나는 믿었소.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변화하는 인간의 힘을 믿겠지만,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는 것만은 톨스토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오.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었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내가 민생단 간첩으로 오해받아 죽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가 진리라면 인도주의 역시 개개인에게는 잔혹함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한도, 분노도 없소. 나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분노할 뿐이오. 인간은 진리 속에 있을 때만이 인간일 뿐이오. 그리고 진리 속에 있을 때, 인간은 끝없이 변화할 뿐이오. 인간이 변화하는 한, 세계는 바뀌게 되오.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는 고정의 존재가 된다는 것. 다만 이 역사 단계에서 더 이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 죽음은 그 정도로만 아쉬울 뿐이오. --- p. 232-235
나는 광주 코뮌에 참가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요. 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잊어버린 적은 있어도 내 조국을 잊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소.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계급과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소. 국민당 특무들에게, 일본 제국주의 군대들에게, 헌병들에게, 지주들의 사병들에게 그들은 처참하게 죽어갔소.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소. 고문당할 때 비명을 지르는 사람조차 본 일이 없었소. 하지만 여기 동만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죽어가고 있소. 이런 게 진정한 공산주의의 길이라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오. 나는 동무와 계급이 먼저냐, 민족이 먼저냐를 따질 마음이 없소. 우리에게는 필요한 건 오직 우리만의 나라, 우리만의 국가일 뿐이오. 그게 바로 모든 조선인의 꿈일 뿐이오. --- p. 278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체만이 자신이 누군지 소리 내 떠들 권리를 지녔다. 시체가 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납득했으니. 유격구에서 나는 수많은 시체를 봤다. 그 시체들은 저마다 이렇게 떠들었다. 나는 민생단으로서 동지들의 골수를 적에게 팔아먹었다. 나는 혁명을 보위하기 위해 내 살과 피를 팔아먹었다. 그 아우성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은 죽지 않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경계에 서 있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민생단도 되고 혁명가도 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항상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므로, 시시때때로 운명이 바뀐다는 뜻이므로.--- p. 248 | | |
첫댓글 재밌을 거 같습니다. '저렇게 새로운 아이들을 그토록 낡은 방식으로 대접하다니. 늙다리들. 구닥다리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지요.
저는 반성합니다. 늙음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옳다고 믿고 그 안에 안주하려 들면서 자신만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그 세계를 물려주려고 시도한다는 현상을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