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물에 그밥
건달과 한량은 둘 다 가족을 위해서 땀 흘려 일하는 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여자 후리는 일에나 온 정신이 팔려 있다.
다른 점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한량은 돈을 물 쓰듯 해도 돈 나오는 구멍이 화수분이다.
흔히 과거에 계속 떨어진 천석꾼 집안의 개차반 아들인 것.
돈을 쓰는 것이야 쉽지만 벌어서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량과 건달은 여기서 갈린다.
달호는 건달이다.
단옷날 씨름판에서 강적을 협박해 천하장사를 차지하든가 저잣거리에서 보호세라는 명목으로
생돈을 뜯어내든가 사기도박을 하든가 하여튼 못된 짓으로 돈을 만들어야 한다.
집안도 넉넉하고 얼굴도 반반한 분자가 번듯한 신랑감을 다 차버리고 단옷날 황소를 탄 달호에게 반해 그
날 밤 물레방앗간에서 치마를 벗었다.
오 첨지의 외동딸인 분자는 달호에게 빠지기 전부터 여기저기 염문을 뿌리고 다녀 흠결이 많았다.
그러니 시집갈 때 혼수가 어마무시했다.
문전옥답이 스무마지기에 돈이 삼백냥이었다.
그마저도 그의 팔자였으니 분자 아버지인 오 첨지는 혼례를 올리기 전에 절대로 바람피우지 않겠다고
달호에게 각서를 쓰게 했다.
장가를 간 백수건달 달호는 새사람이 됐다.
저잣거리에 젓갈 도매상을 차렸다.
건달 패거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술집 기생집에도 가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집에서 분자를 기생 삼아 술 한잔 마셨다.
그런데 장날 장인 오 첨지가 장터에 와서 달호를 만나는 날은 달랐다.
춘매옥에 달호가 들어서자 기생들이 버선발로 우르르 몰려나와 천하장사가 왔다고 아우성이다.
으쓱대며 장인어른 오 첨지를 모시고 방 안에 들어가 상석에 앉힌 후 가장 예쁘고 애교가 졸졸 흐르는
어린 기생을 붙여줬다.
좀 쑥스러워하던 오 첨지도 술이 오르고 풍악이 울리며 기생들의 꾀꼬리 같은 창이 이어지자
그만 기생 치마 밑으로 손이 들락거렸다.
달호는 천연덕스럽게 옆에 앉으려는 나이 먹은 행수기생도 내쳤다.
이 분별없는 오 첨지는 춘매옥 뒷방에 깔아놓은 금침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젊은 시절 한가락했던 솜씨가 빛을 발했다.
‘아, 이런 밤이 얼마 만인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기생과 아예 살림을 차렸다.
그 꼴을 눈감아줄 장모가 아니다.
달호는 처가를 풍비박산 내버리고 자신이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새우젓 생산업자가 와도 춘매옥에 데려가고
황석어젓·조개젓·멸치젓 업자가 와도 춘매옥,
술값도 해웃값도 모두 오 첨지에게 떠넘겼다.
이뿐인가. 달호네 도매상에서 젓갈을 떼가는 소매상들도 춘매옥을 제집 드나들듯 하고
달호가 오 첨지 외상으로 달아놓았다.
달호도 육덕이 풍성한 행수기생과 살림을 차렸다가 새파란 동기(童妓)의 머리도 얹어주고
춘매옥이 싫증이 나면 다리 건너 청상과부 집에 틀어박혔다.
그 꼴을 눈감아줄 분자가 아니다.
분자와 분자 어미의 바람피우는 남편 대처법은 완전히 달랐다.
분자 어미가 두팔을 걷어붙이고 오 첨지 첩 집에 찾아가 살림을 박살내고 첩년의 머리칼을 쥐어뜯는 데 비해
분자는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오 첨지 마흔한살 생일을 맞아 망오(望五)잔치를 한다고 떠들썩할 때,
하나뿐인 사위 달호는 소매상 단합대회를 한답시고 불참했다.
육포와 곰소육젓에 비단 마고자, 오죽 곰방대 등 선물만 잔뜩 사서 한고리짝 만들어
총각 집사 만득이에게 짊어지게 하고 마누라를 사십리 밖 처가로 보냈다.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쉬엄쉬엄 걸어도 저녁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데 중간에 분자가 발목을 삐었다며
주막에 들어갔다.
만득이가 대야에 찬물을 받아와 분자 발목을 주무르는데 고쟁이가 자꾸 올라가 희멀건 허벅지까지 드러났다.
이틀 밤을 주막에서 자고 잔칫날 당일에야 들어갔다.
아무리 피가 끓을 때 천하장사를 했기로서니 주색잡기에 곯아 천하의 달호가 비실대기 시작했다.
가끔 집이라고 들어가면 죄책감에 마누라에게 이를 악물고 봉사하느라 진이 빠졌다.
달호가 집사 만득이를 시켜 해구신을 사오라 하면 진짜 해구신은 먹어버리고
보신탕집에 부탁해놓은 개의 콩팥을 갖다주었다.
산삼을 구해 마누라에게 달이라 하면 산삼 달인 물은 만득이에게 주고 수삼 달인 물만 달호에게 내왔다.
분자는 얼굴에 화색이 돌고 달호는 부쩍 늙어버렸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