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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연, ‘성령의 빛’, 인천 송도 한국순교성인성당, 2016(인천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 프로젝트). |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뢰인의 요청 사항과 작가 고유의 표현 양식이 적절하게 융화돼 최대한 만족스러운 작품이 완성되도록 조율하는 일이다.
한번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인천가톨릭대학교의 스테인드글라스 전공 대학원생에게 한국 개신교회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가장 선호되는 주제를 조사해 발표하게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국내 개신교회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의 약 90%가 ‘선한 목자’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이처럼 선호도가 높은 주제가 반복적으로 채택되는 사례는 가톨릭 교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제한적인 주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동시에 현재 선호되는 주제를 더욱 새롭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연구하는 작업 역시 매우 중요한 일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교회 건축 공간과 조화를 이루고 작가의 표현양식을 잘 살린 ‘선한 목자’, ‘오병이어’, ‘성령의 비둘기’ 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작품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더는 진부한 주제가 아니라 신자들과 소통하는 통로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친근하고 쉽게 인지될 수 있는 이미지에서 출발해 영적으로 고양되도록 이끌어주는 빛과 색을 연출하는 것이 진정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역할이다.
최근 새롭게 설치된 인천 송도 한국순교성인성당 성가대석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연구된 작품이다.
안정감 있는 전례 공간 연출
한국순교성인성당 성가대석 스테인드글라스는 인천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연구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 위치한 한국순교성인성당은 기존에 설치돼 있던 작품에서 글라스페인팅 처리된 부분의 색이 빛에 바래 흐려지면서
지나치게 밝은 빛이 유입됨에 따라 생겨난 미사 중 사제의 눈부심 현상을 완화하고, 전례 공간으로서 전체적인 조도와 색감을 보다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조정하기 위함이었다.
본 연구 프로젝트에서 작품 디자인을 진행한 김지연(마리스텔라)씨는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전공한 신진작가다.
김지연 작가는 대학원 재학 중 전공 연계 프로그램으로 독일 피터스 스튜디오, 데릭스 스튜디오, 귀스타브반트릭 공방 등 독일의 대표적 메이저 글라스 스튜디오에서 인턴십 과정을 수료했고,
「병원 대기실을 중심으로 한 건축 스테인드글라스의 활용 가능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밀도 있는 색 구성으로 리듬감 더해
‘성령의 빛’을 주제로 한 한국순교성인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페인팅을 절제하고, 입으로 부는 방식인 마우스 블로운 안티크글라스의 투명도가 높으면서도 깊은 색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작품의 전체 구성은 본당 신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많은 신자가 쉽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이에 작가는 신자들에게 친숙한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성당의 성령의 비둘기를 주요 모티프로 하면서 추상적이고 현대적 감각을 살려 한국 순교성인들의 신앙 승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작품 중심부에는 작가의 방식으로 재해석된 비둘기가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빛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후광에 불규칙하게 표현된 12개의 굵은 선들은 열두 사도를 의미하며 순교, 사랑, 생명을 상징하는 빨강, 보라, 분홍, 녹색 등 다채로운 색의 종려나무 잎들은 성인들의 굳은 신앙의 승리를 나타낸다.
작가는 기존에 설치돼 있던 작품들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색채를 분석해 작품을 구성하면서 전면에 흰색의 빛줄기들을 표현해 밀도 있는 색 구성으로 자칫 답답해 보일 수 있는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했다.
한국순교성인성당의 ‘성령의 빛’은 대학 연구 프로젝트로 실행된 작품인 만큼 기획과 디자인, 제작, 설치를 진행하는 데 있어 국내 스테인드글라스의 모범이 되도록 작품 제작에 필요한 모든 단계와 절차를 철저하게 준수해 완성됐다.
아직 작가층이 두텁지 않은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 예술계에서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이 성장할 기회를 제공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그 의미가 깊다.
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테인드글라스 석사 전공 과정을 두고 있는 대학으로서 전문 작가 양성을 위해 기울인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얼마 전 프랑스 사르트르의 국제스테인드글라스 센터에서 있었던 그룹전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거장들과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나란히 전시된 광경을 보면서 유럽 스테인드글라스의 탄탄한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거창함보다는 묵묵함으로 새로운 의미를 담아 완성한 한국순교성인성당의 작품을 계기로 앞으로 진행될 스테인드글라스 프로젝트들이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상생 프로젝트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