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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2장 죽음=영생으로 들어가는 문 / 김평래 목사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10절)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다윗도 이제 모든 사람이 가야만 하는 죽음의 길로 떠났다. 그러나 단순히 죽었다기보다는 이제 인생이라는 고난의 학교를 졸업하고, 그렇게 사모하고 사랑했던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는 상급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급은 비록 그의 공로는 아니지만, 그가 치열한 싸움을 싸운 결과 주어진 것이다.
한편 이 영생이라는 상급은 지금 죄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약속된 것이기에, 장차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주님이 두 팔을 벌리고 맞아주실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다윗처럼 치열한 죄와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 성도들에게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동시에 이 땅에서의 삶은, 그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기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하기에 허락하신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으며, 그렇게 천국을 맛본 사람만이 그 천국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다윗은 숨을 거두기 전에 솔로몬에게 하나님 말씀을 잘 지켜 행할 것을 명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3절)
왜냐하면 솔로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훈련하기 위해 허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 왕으로 등극한 솔로몬은 다윗의 유언에 따라 요압과 시므이를 제거한다. 왜냐하면 요압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자(아브넬, 아마사)를 살해했으며, 시므이는 자기 지파에 갇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을 저주했는데, 이런 그들의 행동은 곧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요,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때로 다윗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럴 때 스스로 나서지 말고, 주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한다(롬 12:19). 사람은 잊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절대 잊지 않으시며, 반드시 가장 합당한 때에 갚아주시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주님이 명령하시고 친히 본을 보이신 것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압살롬의 데자뷰였던 아도니야는, 그의 교만함과 조급함 그리고 끝까지 버리지 못한 왕위에 대한 욕심때문에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하나님께서 두신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보내신 분의 뜻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faithful)"(고전 4:2)
출처: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g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