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0] 김관해 (金官楷) - 여생도 최선을 다하리라 5. 축복의 땅 거제도에서의 목회 - 1 1 축복을 받은 후 새로운 살림을 시작해야 했다. 새로운 임지가 제일 남쪽 땅 반공포로들이 살고 있던 거제도였다. 뼈를 묻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며 정들었던 원주를 떠났다.
2 남해의 외로운 섬마을을 찾아, 인구 12만의 거제도를 향해 푸른 꿈을 간직하고 찾아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울며 왔다가 울면서 떠난다는 섬나라이다.
3 삼무의 섬나라(거지•대문•도적 없는 곳), 평화롭고 인심 좋은 곳이었다. 전깃불도 없는 농어촌에서 수십 대를 내려 살고 있는 섬사람들과 처음 접하는 소감은 참으로 답답했다.
4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순박한 식구들과 정이 들었고 뭇 섬사람들과 벗이 되었다. 우뚝 솟은 계룡산, 거제성 7백 리, 가는 곳마다 펼쳐 있는 푸른 바다는 인상적이었다.
5 축복받은 땅에 오래 살며 값진 이상향을 이루어 보리라고 결심했다. 바닷가에 작은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10개 면에 가난한 자들을 가르치는 상록중등학원 설립을 추진했다. 경남도지사 이계순(李季順)께서 친서까지 보내 주었다.
6 약 3년간 많은 정열을 쏟았다. 순박한 거제도 식구들은 떨어진 옷을 꿰매면서 “뜻이 이루어지면 새 옷 입고 살 날이 곧 올 것이 아닙니까. 지역장님! 그때가 이제 얼마나 남았습니까”라고 묻던 식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7 이제는 천수를 다하고 저세상으로 가신 분도 있을 것이다. 해변가에 세워진 교회 앞 뒤뜰에 코스모스는 금년 가을에도 또다시 피어났을 것이다. 그때의 결심은 거제도를 복귀해가면서 거제도 7백 리에 코스모스 꽃동산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8 첫딸 혜련(惠妍)이를 안고 거제동 부면장을 만나 명사(明沙)라는 어촌에 뼈대만 세워진 중학교를 다시 시작해 보려고 삼복더위에 70리 길을 왕복하며 고생한 일은 잊을 수가 없다. 9 인간의 생명들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철이 들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거제도에서도 정신이상이 된 사람(서찬호)을 만나 정성을 다하는 기도로 쾌유를 본 경우도 있었다.
10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나님! 젊은 생명이 불쌍하오니 살려 주시옵소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 아들은 지금 교회의 중심인물로 거제교회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