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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함께 갈릴리로 갑시다. 마28:1-10, 계2:1-7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믿음의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떤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내가 죽음 이후에 주님께서 예비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산다면 그 삶에 무슨 변화가 일어 날 수 있겠습니까? 윌리엄 바클레이라고 하는 유명한 성경학자는 신앙생활에 확신이 없으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일어난다고 지적 했습니다. 첫째로 결코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자신이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힘이 솟아나지 않습니다. 마치 광부가 땅을 팔 때 반드시 금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힘이 솟습니다.
그런데 금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그 일을 힘 있게 추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셋째로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기쁨도 사라지고 매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그들이 믿는 신앙이 뿌리 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큰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다시 주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모습을 미리 아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날 밤 성만찬석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마26:31-32) 마태복음 본문 7절에 천사가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했고, 본문 10절에 다시 사신 주님께서 여인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당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성전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이나,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전진 기지가 될 만한 세계적인 도시 로마나 다른 곳이 아닌 갈릴리로 가라 하셨을까요? 부활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갈릴리로 갑시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잃어버린 믿음과 처음 사랑을 찾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곳입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곳이 바로 갈릴리 해변이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동네를 두루 다니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외치시고,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인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도 갈릴리동네의 가나마을 혼인잔치 집에서 일어난 표적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의 요람이기도 한 곳으로, 그 곳에서 믿음이 싹트고, 사람 낚는 어부의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 묻히시니 그 무덤 속에 그들이 가진 믿음도 묻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그들을 다시 찾아 가셔서 그들이 가졌던 처음 믿음을 다시 회복시키시고자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처음 순수했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도중에 믿음이 무너지면 신앙의 실패자가 됩니다.
신앙이 약해지면 주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도 식어집니다. 본문 계2:4-5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좋은 점들이 많았지만 처음 사랑을 잃은 것을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이란 처음 은혜를 받고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의 열정을 말합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었고, 바울의 안수를 받고 성령의 임재로 방언과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던 교회이고,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므로 회개와 변화의 경험을 많이 한 교회였습니다. (행19:1-7, 19:17-20)
우리에게도 처음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여 눈물 흘리기도 하고,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게 느껴지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헌신 하 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따르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깊어져야 하는데, 점점 식어지게 되면 꺼져가는 불씨처럼 되어 열정이 없는 싸늘한 형식적인 신앙이 되고 맙니다.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세상을 사랑해서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당시 정치 경제 문화 문명 무역에 있어서 중심이 될 만한 항구도시였습니다. '고대 세계의 허영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자유롭고 방탕한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그런 도시에서 살면서 세속 문화와 문명을 자연스레 사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해서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본문 6절에서 말한 대로 자칭 선지자라 하나 아닌 자들, 곧 니골라당 같은 이단 교훈을 가진 자들을 가려내다 보니, 그런 이단 색출로 인해 서로 의심하게 되었고, 정죄하고 미워하고 당파 싸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죄와 악을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공동체의 사랑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앙적 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5절에 ‘회개치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했습니다. 촛대는 1:20에 보면 교회를 상징하는데, 주께서 함께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와 간섭과 섭리와 은혜를 거두어 간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 때문에 처음 사랑을 잃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을 생각하고 근본 문제가 인내의 부족인지, 욕심인지, 허영인지, 자존심인지, 분노인지, 교만인지, 고집인지를 깨달아 그것을 붙들고 회개하여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함께 갈릴리로 가서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2.잃어버린 기쁨과 평안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본문 8-9절에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 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했습니다.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 하신 후 무덤에 묻히시자 큰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일 새벽 여인들은 큰 돌로 된 무덤 문을 열 것을 걱정하며 무덤에 도착했는데, 뜻밖의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수직하던 자들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 부활의 소식을 전했는데, 여인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을 가지고 부활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달음질하였습니다. 달려가는 여인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만나 주시면서 먼저 하신 말씀이 ‘평안하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는 여인들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지 못했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기쁨 대신 슬픔에 빠졌고, 평안 대신 두려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갈릴리로 가서 부활 신앙을 회복시켜 잊어버린 기쁨과 평안을 회복시키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은혜 받고 확고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면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참 평안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게 되지만 이 신앙을 가지지 못하면 작은 일에도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염려하며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할 일이 갈릴리로 가서 부활 신앙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 후에 큰 슬픔을 가지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를 부활의 주님이 동행해 주시면서 성경 말씀을 풀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그들의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고 그 밤에 제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한 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뜨겁고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누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신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사라진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평안을 가질 수 없기에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천로 역정의 저자 존 번연(J. Bunyan)은 우연한 계기로 회심을 하게 되었는데, 길거리를 지나다 할머니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할머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할머니들은 서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존 번연이 그들의 얼굴을 보니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신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기도했습니다. 할머니들이 나눈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부활의 주님이 함께 계시면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기쁨이 되지요.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 기쁨이 찾아온답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기쁨이 임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외롭고 힘들 때 위로해 주시고 새 힘을 주시니 기쁨이 되지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때 기쁨이 찾아옵니다.” 우리 모두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항상 충만히 깃들게 하기 위해서 우리 함께 갈릴리로 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3.잃어버린 처음 소명과 사명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고기 잡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면서 ‘나를 따르라 이제부터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어부는 배와 그물을 버리고, 세리는 많은 수입이 있는 세관의 직무를 버리고,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주님을 따를 만큼 소명의식이 투철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훈련을 받고 주님의 분부를 따라 둘씩 짝지어 복음을 전하면서 병자들도 고쳐 주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 신앙을 가지지 못한 그들이 십자가 사건 후에 믿음과 소망, 소명과 사명을 버리고 다시 부름받기 전으로 돌아 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먼저 갈릴리로 오셔서 제자들을 만나 주십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다시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간 제자들을 만나 주시고, 밤새 헛수고만 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분부를 따라 만선을 체험 하고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나누신 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시면서 ’내 양을 치라‘는 사명을 다시 주셨습니다.
주님은 다른 것 묻지 않으시고 주님에 대한 사랑을 확인 하셨습니다. 계시록 본문에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 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소명도, 사명도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율법적이 되고, 메마르고, 형식적이 되어 생명이 없는 무늬만 신앙인의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도 갈릴리로 가 초심으로 돌아 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사랑의 빛 진 자임을 알게 되고, 각자 맡은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처한 여건이 어떠하든, 있는 그대로의 여건 속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호주의 한 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인은 소녀 시절에 중병이 걸려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좌절에 빠져 있을 때 균이 두 손으로 감염이 되어 부득이 두 팔도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뚱이만 남아 있는 고깃덩어리.” 이런 경우는 ‘살 소망’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비참한 역경과 흑암 속에 있던 그녀에게 빛으로 다가오신 분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그 후 그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팔을 잘라 내고 남은 자리에 연필을 붙들어 매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하여 자신의 간증과 고백이 담긴 편지를 쓰게 됩니다. 일 년이면 수백 통의 편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부인의 이야기를 ‘역경을 이기는 법, 삶에 승리하는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손가락만 잘려도, 친구에게 섭섭한 소리만 들어도, 작은 병에 걸려도, 자신이 한 일을 알아주지 않아도, 고난과 시련을 만나도 인내하지 못하고 곧바로 실망과 좌절에 빠져 버리고 사명을 버리고 신앙까지 포기하려고 합니다. 남이 당한 일은 가볍게 보지만 자기가 당한 일은 무겁게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함께 갈릴리로 가서 확고한 부활신앙을 가지고 처음 소명과 사명을 회복하는 성도가 됩시다. 정리합니다. 부활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갈릴리로 갑시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잃어버린 믿음과 처음 사랑을 찾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잃어버린 기쁨과 평안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잃어버린 처음 소명과 사명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멘.
<2023. 04. 05.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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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