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픽업 시장에서 만년 3등인 램이 꼴찌의 반란을 꿈꾼다. 이번 북미오토쇼에서 공개된 램 1500은 더욱 강하고 가벼우면서 효율과 편의성 등 모든 면에서 뚜렷한 진보를 이루었다.
북미에서 승용차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가뜩이나 라인업이 부실한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어려움에 처했다. 신형 미니밴 퍼시피카가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크라이슬러 차는 19만 대에 못 미쳤다. 대신 지프가 83만 대 가까이 팔려 FCA 집안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반면 단일모델로 가장 많이 팔린 것은 램 픽업이었다. 풀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있는 끝물에, 빅3 픽업들 중 3위에 불과함에도 50만 대가 팔려나갔다. 가뜩이나 승용차 판매가 부실한 요즘 신형 램이 FCA 그롭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크게 달라진 디자인
램 트럭이 태어난 것은 1981년. 당시에는 닷지 브랜드에서 팔리는 램 트럭이었다. 물론 닷지의 트럭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되어 무려 19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자신들의 모델에 터프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1933년부터 도약하는 산양 모습의 보닛 엠블럼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램 로고의 기원이다. 1950년대 자취를 감추었던 산양 엠블럼은 리 아이아코카 시절, 닷지 램 등장과 함께 부활했다. 초대 램은 성능이나 품질, 인기에서 포드 F시리즈와 GM C/K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1993년과 2001년 풀 모델 체인지를 거치며 조금씩 그 차이를 줄여나갔다.
2세대부터 사용한 십자형 그릴과 강렬한 마스크는 젊은층에 좋은 인상을 주었고, 바이퍼용 V10 엔진을 얹었던 3세대의 램 SRT-10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트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4세대가 등장한 2009년(2010 모델이어)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픽업과 밴을 닷지에서 분리시켜 별도 브랜드인 램으로 한데 모은 것. 이에 따라 램 픽업은 기존의 닷지 램 대신 램 1500, 램 2500 등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2016년형부터는 이 차의 상징과도 같았던 닷지 크로스헤어 그릴 대신 램(RAM) 로고가 들어간 새로운 그릴을 선보였다.
거대한 그릴과 상대적으로 낮은 헤드램프로 상징되던 2~4세대의 얼굴은 5세대에서 크게 바뀌었다. 그릴이 조금 낮아졌고, 날렵해진 헤드램프에는 풀 LED 어댑티브 램프를 옵션으로 준비했다.
예전에 그릴 위쪽에 달렸던 산양 엠블럼은 이때부터 테일 게이트 중앙에 커다랗게 자리잡았다. 트림은 트레이즈맨, 빅혼, 라라미와 라라미 롱혼 그리고 리미티드와 레벨이 있으며 그릴 형태나 크롬장식 등으로 구분된다. 젊은층을 겨냥한 오프로더 성격의 레벨(Rebel) 트림은 그릴과 범퍼 모두 검은색 수지 소재를 사용하며 범퍼 아래쪽에는 터프한 언더가드가 더해진다.
모터쇼에서 공개된 파란색 램 1500은 함께 개발된 모파의 튜닝/드레스업 파츠를 사용한 쇼카였다. 데칼과 알루미늄 러닝보드, 콤포지트 토노커버와 접이식 스텝, 배기팁은 물론 전용 디자인의 2톤 휠 등 200가지가 넘는 다양한 액세서리가 준비되어 취향에 맞는 차 꾸미기가 가능하다.
커졌지만 공기저항은 줄고 가벼워져
차체는 구형에 비해 너비 1cm, 길이 10cm 가량이 늘어났다. 4도어 5인승인 크루캡 기본형에서 휠베이스가 3,670mm, 롱베드는 3,899mm가 되었고, 뒷좌석이 좁은 쿼드캡의 경우 이보다 10cm씩 짧다. 픽업의 성격에 맞추어 적재공간에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투입되었다. 조립식 칸막이와 레일 후크 등을 활용해 공간을 다양하게 분할할 수 있도록 했으며, 리어 펜더 윗부분 공간에 마련된 램박스는 115V 전원 출력단자와 조명이 달려 일반차의 트렁크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인테리어는 구형의 느낌을 이어받으면서도 한층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완성되었다. 운전석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은 램 엠블럼이 박힌 팔각형의 스티어링 센터 패드 디자인과 T자형을 이루는 센터페시아 레이아웃 덕분. 모니터는 기본 8.5인치부터 최신 U커넥터 4C 내비용 세로형 12인치까지 장착된다.
변속레버는 기존의 컬럼식 레버 대신 시동 버튼 아래에 회전 노브 방식으로, 구동계 선택 버튼들과 함께 모아놓았다. 공조장치는 구형보다 조용하면서도 풍량이 늘어난 것이 특징. 네 가지 선택권이 마련된 오디오는 하만카돈의 19 스피커 시스템. 픽업 라이벌들 중 가장 강력한 900W 사운드를 선사한다. 실내에만 12군데, 총 151L의 수납공간을 마련하는 외에 일반 USB와 최신 USB-C 단자, 무선충전기, 115V 전원 등도 마련했다. 다양한 가전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전원 단자는 램박스용을 더할 경우 400W까지 사용할 수 있다.
날로 까다로워지는 연비와 배출가스 규제는 덩치 큰 픽업 트럭에게 있어 큰 고민거리다. 포드가 베스트셀러 픽업 F150에 알루미늄 보디를 과감히 도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램 트럭이라고 별다를 리 없다. 다상복합조직강, FB강 등 다양한 강판과 알루미늄을 사용해 프레임에서만 45kg를 감량했다. 동시에 보닛과 테일게이트, 엔진 마운트 등 다양한 부분에 알루미늄을 사용해 102kg을 줄였다. 강성 향상은 주행안정성과 핸들링 개선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승용차로서 중요한 요소인 NVH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보다 매끄러운 승차감을 원했던 개발진은 능동형 진동 댐퍼(active vibration damper)와 능동형 소음제거장치(ANC)를 더해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했다. 그 결과 우렁찬 V8 5.7L 헤미 엔진을 얹고도 소음이 67.1dB에 불과하다.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앞 서스펜션은 경량 어퍼암에 알루미늄 로우암을 사용했다. 20% 단단해진 프론트 스테빌라이저를 달았고, 리어 솔리드 액슬은 코일 스프링과 5링크 구성을 통해 1톤이 넘는 적재능력과 핸들링 성능을 추구했다. 여기에 진폭감응형 댐퍼가 상황에 따라 감쇄력을 조절한다. 서스펜션 움직임에 따라 험한 길에서는 감쇄력을 줄여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고속 코너링이나 급제동에서는 감쇄력을 높여 롤링과 피칭을 억제한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로 연비 챙겨
엔진은 V6 펜타스타와 V8 헤미 두 가지. V6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e토크가 기본이고 V8은 옵션이다. 48V로 작동하는 모터 제너레이터는 기존의 스타터 모터와 올터네이터를 대신하며 상황에 따라 엔진의 힘을 보조하기도 한다. V6에서는 12.4kg·m, V8에서는 18.0kg·m의 추가 토크를 제공한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실내 후방격벽 안쪽에 배치된 430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로 작동되며 일반 전장품용은 DC-DC 컨버터를 통해 감압한 후 12V 납산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사용한다.
3.6L의 펜타스타 엔진은 가변밸브 타이밍과 2단 밸브 리프트 기구를 갖추고 최고출력 305마력에 최대토크는 37.2kg·m. 반면 5.7L 헤미 엔진은 395마력의 최고출력에 56.7kg·m의 강력한 토크를 제공한다. 고전적인 OHV 레이아웃이지만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와 함께 상황에 따라 4개 실린더 연료공급을 끊는 실린더 휴지 기능으로 연료를 절약한다. 아울러 두 엔진 모두 3단 이상에서 감속상황일 때 연료 공급을 끊는 iDSF(Interactive Deceleration Fuel Shut Off)가 추가적으로 연비를 개선한다. 다만 공식 연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변속기는 모두 8단 자동으로 7단 이상이 오버드라이브 세팅이다. 리어 솔리드 액슬은 오픈 디퍼렌셜에 LSD가 옵션으로 마련되며 4WD 일부 모델에서는 전자식 디퍼렌셜록이 달린다. 내구성과 허용토크를 개선한 트랜스퍼 케이스는 파트타임과 온디맨드 두 가지가 있으며, 온디맨드의 4오토에 놓아두면 기본 풀타임 4WD에서 상황에 따라 구동방식으로 스스로 선택한다.
무거운 트레일러를 끌기 위한 맥스 토우 패키지도 있다. 튼튼한 다나 수퍼60 액슬에 최종감속비를 3.92로 높여 1만2,750파운드(5,783kg)을 끌 수 있다. 최신의 구동계 온도관리 시스템은 엔진과 변속기뿐 아니라 액슬 내부 윤활유 온도까지 관리한다. 윤활유가 차가우면 점성 때문에 저항이 늘기 때문이다.
다양한 공력기술도 효율 향상에 기여한다. 시속 35마일(56km)에서는 기본 장착된 액티브 프론트 에어댐이 튀어나오며 에어 서스펜션이 달린 경우에는 지상고를 낮춰 공기저항을 줄인다. 아울러 거대한 그릴에는 액티브 셔터를 달아 엔진룸과 차체 아래에서 발생하는 와류를 억제하는 한편 트럭 배드를 덮는 하드커버에도 뒤쪽을 스포일러 형상으로 다듬었다. 이런 다양한 노력의 결과 공기저항계수가 0.357로 낮아졌다.
용도에 따라 다양한 선택권
램에는 모든 트림에서 선택 가능한 오프로드 패키지가 있다. 전용 지오메트리의 리어 서스펜션을 달면서 지상고를 2.5cm를 높이고 전자식 디퍼렌셜록(eLocker), 힐 디센트 컨트롤, 32인치 오프로드 타이어를 장비한다. 조금 더 하드코어한 오프로드 주행을 원한다면 레벨 트림이 있다. 수지제 그릴과 범퍼, 언더가드가 달려 기본형과 차별화되며 쿼드캡 보디에 33인치 굿이어 랭글러 듀라텍 타이어를 짝지어 오프로더 분위기를 풍긴다. 1인치 리프트 서스펜션에는 리저버가 달린 빌스타인 댐퍼가 달리며 에어 서스펜션을 선택하면 2인치가 높아져 10인치(25.4cm) 이상의 지상고를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트랜스퍼 케이스나 스티어링, 오일팬, 연료탱크 아래에 스키드 플레이트를 달아 본격적인 험로 주행에 대비한다.
최신의 주행 보조장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완전 정지가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블라인드 스폿 모니터링(BSM), 전방위험경고(Forward Collision Warning-Plus), 후측방경보(Rear Cross Path detection) 외에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을 활용해 차선유지장치와 자동주차 보조장치도 갖췄다.
미국의 픽업 시장은 규모도 규모지만 소비자들의 취향이 보수적인 까닭에 여전히 빅3의 입김이 강하다. 이는 곧 이 시장마저 밀릴 경우 빅3에게 더 이상 설 땅이 없어지는, 최후의 보루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신형 램 1500은 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진화되었다. 더욱 경량 구조로 무게를 덜고 강력한 엔진에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해 효율을 챙겼다. 아울러 승용차 수준의 정숙성과 주행성능은 물론 첨단 주행 보조장비들을 빠짐없이 갖추었다. 빅3 안마당에서 펼쳐질 픽업트럭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