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서 엘 클라시코El Clasico 라이벌 경기가 있는데,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간의 경기가 그것이다. 이 두 팀의 경기 이면에는 축구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카스티야Castilla인과 카탈루냐Cataluña인은 오랫동안 경쟁 관계였다. 자존심과 대결 심리는 스페인 역사를 관통할 정도로 유서 깊다.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대결 의식은 폐쇄적인 농경 문화와 지중해 연안의 개방적인 상업 문화로 구분되는 스페인 문화의 두 가지 상반된 전통에 기인한다. 카탈루냐는 고대로부터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곳으로 20세기 초까지도 지중해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섬유 산업이 주축이 되는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이에 반해 내륙 중앙의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카스티야 지방은 전통적으로 지주 귀족의 지배하에 농업이 산업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구조다.
이런 기초 산업 기반의 차이로 두 지방은 무역 정책에 있어서 심한 갈등을 벌이게 된다. 카탈루냐는 공산품 수출을 통한 자유무역주의를, 카스티야는 값싼 외국 농산물의 국내 유입을 막고 국산 농산물의 가격 안정을 통한 보호무역주의를 선호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카스티야가 중앙정부를 등에 업고 주도권을 잡게 된다. 스페인 정부는 외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주의 노선을 채택한다. 이로 인해 교역 대상국인 외국 정부 역시 스페인의 정책에 맞서 스페인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 쪽은 공산품 수출에 의존하던 카탈루냐 지역이었던 것. 이에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 정부를 대상으로 자치권을 요구하고 나서게 된다.
스페인 내전Guerra Civil Espanola은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두 지역의 갈등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계기가 된 사건이다. 스페인 내전은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Homage To Catalonia>,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앙드레 말로의 <희망L'Espoir>, 로버트 카파의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Spanish Loyalist At The Instant Of Death>,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주제로 다뤄졌다. 보통의 경우 역사는 승자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스페인 내전은 시종 패배한 쪽의 관점에서 기록되고 표현됐음을 알 수 있다.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에서 무역과 공업 중심지인 카탈루냐가 공화파의 편에 서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카탈루냐는 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보이던 프랑코 군에게 밀려 최후의 저항을 하였음에도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반정부군의 승리로 끝났고 카탈루냐는 프랑코가 사망할 때까지 철저하게 박해를 받게 된다. 심지어 카탈루냐인은 공직 임명이 금지되고 카탈루냐어의 공식 사용도 불허돼 스페인 정부에 대한 카탈루냐의 적대감은 극에 달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갈등은 경제적 기반의 차이에서 기인하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 원인은 따로 있다. 카탈루냐 지역의 형성과 발전은 오랜 역사적 기간 동안 지중해 세계와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여러 종류의 문화 영향들을 흡수해 이뤄진 것이었다. 13세기 무렵 카탈루냐는 발렌시아, 마요르카,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코르시카, 시칠리아, 나폴리, 그리스 일부를 포함하는 지중해 제국 시대를 열었다. 이런 뿌리 깊은 지중해 세계에 대한 관심은 프랑코 독재 시절에 카탈루냐 음악의 새로운 싹을 틔우며 저항 문화로 발전한다.
카탈루냐 출신의 음악가로 유이스 야흐Lluis Llach라는 사람이 있다. 프랑코 독재 시기 민족어인 카탈루냐어로 노래하며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나가고자 했던 대표적인 저항 가수다. 정치성 강한 음악을 발표하며 탄압 대상이 됐던 그는 프랑스로 추방된 그는 박해받던 다른 뮤지션들처럼 독재가 끝날 때까지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유이스 야흐의 저항은 노바 깐소Nova Cançó(새 시대 노래) 운동으로 불린다. 그는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마요르카Mallorca 출신의 마리아 델 마르 보넷Maria Del Mar Bonet과 함께 음악을 통해 프랑코 총통의 독재에 맞섰다. 노바 깐소는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ón’의 영향을 받은 운동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정치·사회적 발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카탈루냐어로 노래하는 것 자체가 독재 정부에 대한 불복종의 표현이었다. 어쩌면 노바 깐소는 자신들의 언어를 노랫말로 사용하는 열망 자체가 본질이자 저항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노래로 꼽히는 작품이 바로 금지곡이었던 ‘말뚝L'Estaca’(1968)이다. 떨어지기 직전의 녹슨 막대기로 당시의 암울한 분위기를 묘사한 음악으로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주제곡처럼 불린다. 스페인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 오랫동안 억압받으며 살아온 할아버지 시셋(현실에 대한 나르시스와 매너리즘 상징)과 손자(자유를 추구하려는 시대정신 상징)와의 대화를 통해 자유를 꿈꾸는 노래다.
1977년에는 직접 작사, 작곡, 편곡을 담당한 정규 7집을 발표했다.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 ‘죽은 자를 위한 종소리Campanades A Morts’는 러닝 타임이 17분 40초에 이르는 대곡이다. 1991년 오페라 코미크L'Opera Comique de Paris 극장에서 가진 공연 실황 버전도 있다. 시종 엄숙한 목소리 위로 오케스트레이션과 합창단, 호세 카레라스의 음성이 등장한다. 카탈루냐의 전통 민속 음악 위에 누에바 깐시온의 진화된 형태의 저항 음악으로 프랑코 정권에 의해 학살당하고 죽어간 민중을 위한 진혼곡이다.
시셋 할아버지와 나는 이른 아침 현관문 앞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지나가는 마차를 보았어
할아버지는 이야기했지, 우리 모두가 묶여 있는 저 말뚝이 보이니?
우리가 말뚝들을 뽑지 않으면 우리는 걸어 다니지 못할 거야
우리 모두가 저 말뚝을 당긴다면 저것은 무너질 거야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거야
저것은 확실히 무너질 거야
지금쯤 벌레들이 먹어 버렸을지도 몰라
내가 이쪽에서 말뚝을 힘차게 잡아당기고
네가 저쪽에서 말뚝을 힘차게 잡아당긴다면
나는 저 말뚝이 무너질 거라고 믿어
그리고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어, 내 손은 벗겨져 버렸지
내 힘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말뚝은 더 굵어지고 더 커져 가
할아버지, 나는 저게 썩어 있다는 걸 알아요, 근데 너무 무거워요
그러고는 때때로 내가 저걸 무너뜨려야 한다는 걸 잊게 해요
할아버지, 내게 다시 노래하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저것은 무너질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시셋 할아버지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나쁜 바람이 그를 앗아가 버렸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던 그
그리고 여기 현관문 앞에 있던 나는
새로운 아이들이 지나갈 때면
나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어, 할아버지의 마지막 노래를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가르쳐준 노래를
우리 모두가 당긴다면 저 말뚝은 무너질 거야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거야
저건 확실히 무너질 거야
지금쯤 벌레들이 먹어 버렸을지도 몰라
내가 이쪽에서 말뚝을 힘차게 잡아당기고
네가 저쪽에서 말뚝을 힘차게 잡아당긴다면
나는 저 말뚝이 무너질 거라고 믿어
그리고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