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이 곳은 눈비 내리는 곳이다 이 진창으로 해탈도 오고 길 잃은 개들도 오라 철없는 사람도 용서하시라 바람의 지도를 따라 오늘 이 암유의 도시에 꽃이 피고 새도 운다 미학주의자들은 다 죽었다 내 몸의 회로도 다 끊어졌다 피안(彼岸)에서 흘러오는 배 한 척 점등이 안 되는 초 한 자루가 오늘의 양식이다 이 시대에 시인들이 적어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가르쳐야 하지 않는가 나는 계몽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몸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 어두운 밤, 묵시의 밤 여자와 남자들 사이를 걸어 내가 도달한 강가에서는 아직도 노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슴에 닿는 황홀한 물기, 황홀한 복종 신(神)은 죽어서 우리를 구속하고 적(敵)은 살아서 나를 죽이네 이 별에서, 이 거리에서 나는 죽어갈 것이다 로드 킬, 킬킬킬대며 나는 살아갈 것이다
해가 떨어진 겨울 대숲가에는 모든 사물의 뒷편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그 동안 내 눈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는 뜻 무너져 내린 소쇄원에 한 조각 빛마저 사그러질 때 둥근 내 뼈를 바위에 갈아본다 택리지의 쓸쓸한 기억 위에 한 줌 전등이 켜질 때 뼈대로 지켜낸 저 시간들이란 얼마나 물렁한 것일까 죽지 않고 살아있음 남녘의 섬 흑산도에서 쓰던 丁若銓의 편지들은 또 얼마나 하얗게 야위었던가 댓잎들은 위리안치의 생을 씹고 씹으며 저 깊은 어둠의 중심에서 몇 마리 새를 키울 뿐 야윈 물고기들이 편지의 행간을 기어 목마른 뭍으로 오르고 있다 눈 속에서 편지 위로 번지는 불꽃들 한 획을 그을 때마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재가 되어 주저앉는 흰 종이 이 만행의 길 위에서 겨울 해변에 이르러 한 장 편지를 쓴다 한 순간 모든 빛과 어둠을 뚫고 그대와 연락되기를
눈발이 펄펄 내리는 하늘에서 물고기들이 수직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애지〉2005년 겨울호) --------------
우주로 가는 당나귀 (외 2편) ㅡ우대식
가고 싶은 곳 : 우주 까닭 : 우주에 가서 지구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2학년짜리 막내 아이의 숙제다 우주는 어디에 있는가 그곳에서 저무는 지구의 황홀한 일몰을 보고 싶다 한 남자를 탐하는 한 여자의 저녁을, 긴 상을 맞붙인 대가족의 공양을 보고 싶다 꺼져가는 장의사의 노란 불빛과 막 쪄낸 시루떡의 하얀 김, 미시령을 몰려다니는 눈발을 보고 싶다 어느 겨울, 시골 마을 불 켜진 낮은 집에 엎드려 숙제를 하는 내 아이의 뒷모습도 보일 것이다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는 당나귀는 며칠을 걸으면 우주에 당도하는가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
단검
8월 염천, 서울역 광장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자던 한 할머니가 문득 일어나 앉았다. 담배를 길게 빨더니 여기서 가장 가까운 시장이 어디냐 묻는다. 남대문 방향을 가리키며 남대문시장이라 말했더니 가장 큰 시장은 어디냐 물었다. 아침 햇살이 얼굴에 쏟아져 몹시 더웠다. 남대문시장이 가장 크다고 일러주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수원이라고 대답했다. 순간 수원시가 아니라 수원부와 같은 조선 후기의 지명으로 받아들였다. 무엇을 사려고 그러냐 물었더니 무엇을 팔려고 한다고 하였다. 신문지로 둘둘 말아 보자기에 싼 뭉치가 하나 옆에 놓여 있었다. 뭔데요. 몰라도 된다고 대답할 때는 마치 함흥 사투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차라리 동대문 벼룩시장 같은 난전에 물건을 펼치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럴 물건이 아니라고 화를 냈다. 뭐냐고 다시 물으니 할머니는 일어서며 말했다. 칼이다 이눔아. 서울역에서 지하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대문을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잠자던 한 자루 단검이 꼿꼿하게 한성역 광장을 건너는 중이었다
------------------------------------------------
무애(無碍)에 관한 명상
개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자꾸 손을 핥는다 한참을 그러다가 무애(無碍)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벌판에 내리는 눈 속에 한순간 개의 혓바닥도 내 손도 그나저나 그도 나도 오늘 겨울 강을 건너는 한 마리 짐승이라 생각되었다 거칠 것이 없었다 그가 무어라 짖는데 나는 알아들을 수 없고 눈 속에 파묻힌 그의 네 발을 핥아보고 싶은 것이다
------------------ 태백에서 칼국수를 먹다 (외 1편)
우대식
영주에서 동해로 가다가 태백 작은 마을에서 국수를 먹었다 우뚝우뚝 산 아래 그늘진 마을 눈이 쓸쓸히 내리는 날 한겨울에 냉이를 넣은 칼국수 작은 가게 안에는 사람 하나 없고 연탄난로가 냉랭히 앉아 있었다 어린 날 사북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은 내 모든 삶을 유폐시키고 싶다는 욕망이었음을 고백한다 신발을 방 안에 들여놓고 자야 하는 사북 여인숙 긴 형광등을 두 방이 함께 써야 하는 그곳에서 한 마디 말도 없이 검고 검은 세상의 그림자를 조금씩 깨물어 먹었다 그곳에서 추방되어 먼 나라를 떠돌다 이제 다시 사북 언저리에서 후춧가루를 듬뿍 친 칼국수를 먹으며 과연 내 삶은 옳은가 물어보는 것이다 눈송이는 점점 커져 오도 가도 못하는 산협 마을에서 내 멱살을 잡는 한 푼어치 평화와 또다시 싸움을 하였다
直方齋 마루 끝에 앉으니 굽은 허리가 펴졌다 이 집 그늘 저 아래가 피끝마을이다 피가 끝나는 마을, 피란 대저 운명이며 피란 대저 마음 이전의 마음이며 피란 대저 몸 이후의 몸이라는 사실 직방 퍼붓는 눈을 맞으며 가시 돋은 내 몸 들여다본다 검은 배 한 척 눈이 흐르는 莊園 위에 떠 있다 피를 선적한 배 한 척, 위리안치의 탱자나무 울타리를 직방으로 건너는 중이다 강철 같은 마음의 絃이 울릴 때 오도 가도 못하는 운명이란 어디에도 없으며 끝내 칼끝에서 솟아난 새 한 마리 희부연 하늘을 날아올랐다
------------------ 방문 (외 1편) ㅡ우대식
마지막 낡은 옷을 볼모잡혀 가지고 신세진 親舊의 빚을 갚아주마 ―김관식, 「지구 최후의 날에」
눈이 내리는 날 친구가 온다 눈은 친구의 그림자에 내린다 큰 창문을 열면 막걸리 잔으로 녹아드는 눈 눈은 친구의 심장 부근 차가운 線路에 내린다 얼음 낀 동치미 국물을 뜨는 친구의 손이 떨린다 수평을 놓친 맑은 국물이 수저에서 흘러내려 상 위로 떨어지는 정월 보름 즈음 내리는 눈 속에 언뜻 달무리가 보이는 듯도 했다
-----------------------------------------------
뻥의 나라에서
초등학교 3학년 막내와 돈키호테를 읽는 밤 11월 바람은 창을 두드리고 키득키득 책을 읽던 놈이 불현듯 묻는다 '아빠 이거 다 뻥이지요' 그와 깊은 가을로 여행하는 중이다 뻥의 마을에서 서성이다가 어린 그와 목로주점에 들어 설탕을 듬뿍 탄 와인을 한 잔 시켜주고 싶은 것이다 독한 술 한 잔을 단숨에 마시면 창을 꼬나들고 달리는 늙은 기사도 만날 것이다 도무지 세상에는 없는 공주들과 긴 늦잠을 자고 풍차 아래서 휘파람을 불고 싶은 것이다 뻥이 없으면 이 세상은 도무지 허무하여 살 수 없음을 아이가 불현듯 깨닫기를 중세의 성당에 앉아 기도하고픈 것이다
------------------
먼 날 (외1편) ㅡ우대식
화롯불에 호박 된장국이 뉘엿뉘엿 졸아가던 겨울밤 육백을 치다가 짧게 썬 파와 깨소금을 얹은 간장에 창포묵을 찍어 먹던 어른들 옆에서 찢어낸 일력(日曆) 뒷장에 한글을 열심히 썼던 먼 날 토방 쪽 창호문을 툭툭 치던 눈이 내리면 이젠 없는 먼 어머니는 고무신에 내린 눈을 털어 마루에 얹어 놓고 어둠과 흰 눈 아래를 돌돌 흐르던 얼지 않은 물소리 몇, 이제 돌아오지 않는 먼 밤 돌아갈 귀(歸) 한 글자를 생각하면 내 돌아갈 길이 겨울밤 창호문 열린 토방 한 구석임을 선뜻 알 것도 같다
------------------------------------
낡고 깨끗한 방
강원도 산간 낡고 깨끗한 방안에 들어 윗목에 놓인 멍석이며 맷방석이며 홍두깨를 바라보다, 내 할머니며 어머니의 쓸쓸한 죽음도 생각해보는 것이다 고양이 발목을 적시던 빗물도 가끔 창호문을 두드리다 문득 눈물처럼 번지기도 하는 것이다 황매화, 백매화 우두커니 비를 맞는 만춘(晩春)의 먼 뜨락, 불두화 아래 지나가는 뱀처럼 나 죄가 많다 연당, 연하, 예미, 자미원, 별어곡, 나전, 여랑, 구절 석탄으로 멱을 감은 태백선 간이역 슬픈 향가는 내 몸에 박혀 목어(木魚) 배지느러미 아래 앉아 흐린 발등을 닦아 보기도 하는 것이다 따뜻한 이 방안에 누워 먼 바다 집어등을 켜든 한 척의 배가 되어 망망대해의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어미 잃은 검은 고래가 되어 등을 지지며 낡고 깨끗한 방안에 누워 있곤 하는 것이다
----------------- 의심ㅡ우대식
사람은 참말로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신께서 내게 옷 한 벌 지어주셨다. 의심이라는 환한 옷,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 견고한 이 한 벌의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신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해 의심이 내 등을 다독인다. 내가 너를 지키마. 편히 쉬어라. 어떤 평안이 광배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고 전지전능하사 나를 보호하시며 한없이 사랑하시는도다. 꿈속에서 나의 찬양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배화교도처럼 의심의 불을 조용히 밝히고 내 아버지마저 그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한 어느 새벽, 당신도 내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천둥과 벼락으로 인해 의심의 옷이 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시안》2011년 겨울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위태로운 사랑 ㅡ우대식
어둡던 하루가 지나간다 공장 굴뚝에서 하루 종일 흰 연기가 쏟아져 나오고 회색 구름은 내 가슴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당신도 그 구름 어딘가에 숨어 있다 비타민을 조금 잘라 당신에게 내민다 구름 속으로 쑥 들어간 내 손을 무언가 핥는다 당신이라 믿는다 손이 젖어 간다 눈을 뜬다 온통 당신이다 온통 붉다는 말이다 내 손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없기를 기도했다 내 젖은 손도 당신의 혀도 붉은 모든 당신도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기를 슬프도록 기도했다 검은 구름은 지금 배꼽 아래 와 있다 위태로운 당신의 사랑이 내게 거의 닿고 있다는 말이다 피안으로 흘러가는 배처럼 당신과 나,
세상 만물에는 종교성이 깃들어있다. 여기서 종교성을 영성으로 바꾸어 말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굳이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만물에 영성이 깃들어있다는 생각은 이미 고전적인 사유에 해당된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오면서 인간의 이성은 영성을 억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성주의를 기반으로 한 근대 자본주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종교성과 탈종교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 근대 자본주의 윤리 속에는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의 핵심인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철학이 이성 중심에서 탈이성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상을 프로테스탄티즘과 직접적으로 연계시킬 수는 없지만, 이성이 가지고 있던 절대 권력은 이미 그 힘을 상실한지 오래다. 세상 만물에 종교성이 깃들어 있다면, 시에도 종교성이 깃들어 있다는 명제는 타당하다. 왜냐하면 시야말로 세상만물을 대상으로 한 인간의 사유와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고 쓰는 시 속에는 종교성과 탈종교성이 동시에 들어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의 종교성은 시에 내재해 있는 종교적 사상뿐 아니라 창조자적 관점에 서있는 시인을 포함한다. 이러한 사유는 시의 종교성을 신앙적 차원에 가두어두지 않고 시적 차원으로 확장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따라서 시인은 시적 대상을 자신의 독특한 관점으로 믿고 있는 신자인 동시에, 대상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창조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는 그 자신이 스스로 존재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탈종교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시 스스로가 미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 시는 이미 시의 종교성과 탈종교성 사이에서 무수히 길항하면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우리시의 종교성과 탈종교성을 탐색하는 논의는 아직 매우 단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시의 종교성과 탈종교성을 신앙적 차원을 뛰어넘어 시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뿌리로부터 멀어질수록 가지 끝의 이파리가 위태롭게 파닥이고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뿌리로부터 달아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뿌리로부터 달아나려는 정신의 행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허공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뿌리 대신 뿔이라는 말은 어떤가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 올리면 감히 바람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뿌리로부터 온 존재들, 그러나 뿌리로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들
오늘의 일용할 잎과 꽃이 천천히 시들고 마침내 입을 다무는 시간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미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
―나희덕,「뿌리로부터」전문(『문예중앙』, 겨울호)
나희덕의 시에서 ‘뿌리’에 대한 사유는 그의 등단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희덕의 신춘문예 당선작 「뿌리에게」는 뿌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모성적 대지의 상상력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나희덕의 시는 초기작에서부터 일관되게 모성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여성으로서의 존재성에 더 깊이 천착해있다. 최근의 나희덕 시가 여성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용 시는 그의 관심이 모성적 뿌리에서 이파리를 거처 우듬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이파리나 우듬지는 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나타내는 은유이다. 나희덕이 이파리나 우듬지의 삶을 믿는 것은 “뿌리로부터 멀어질수록”“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희덕은 모성의 견고한 집을 벗어나는 일이 여성적 사랑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인의 의식변화는 이 시의 후반부에 오면 ‘뿔’ 이미지에 귀결된다. ‘뿌리’와 ‘뿔’의 발음의 유사성에서 출발한 시인의 진술은 ‘무소의 뿔’에까지 상상력이 미치면서 이 시가 본질적으로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시라는 것이 드러난다. ‘무소의 뿔’은 1993년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사회 전반의 문제로 끌어올려 페미니즘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던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시인의 사유는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 올리면/감히 바람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데/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같은 구절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서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는 여성으로서의 육체적 감각과 연관되어서 여성의 성적 즐거움인, 자크 라캉의 ‘주이상스(jouissance)’를 연상시켜준다. 나희덕은 모성적 뿌리의 삶으로부터 도망쳐서 여성적 아름다움과 성적 즐거움이 있는 ‘잎과 꽃’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한 그루 나무인 나희덕의 삶 속에서 ‘잎과 꽃’은 더 이상 장식품이 아니라 매일매일 상용하는 ‘일용할 잎과 꽃’이다. 이 시는 형식적으로는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종교성을 지향하지만, 그 정신은 오히려 탈종교성을 지향한다.
사람은 참말로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신께서 내게 옷 한 벌 지어주셨다. 의심이라는 환한 옷,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 견고한 이 한 벌의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신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해 의심이 내 등을 다독인다. 내가 너를 지키마. 편히 쉬어라. 어떤 평안이 광배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고 전지전능하사 나를 보호하시며 한없이 사랑하시는도다. 꿈속에서 나의 찬양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배화교도처럼 의심의 불을 조용히 밝히고 내 아버지마저 그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한 어느 새벽, 당신도 내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천둥과 벼락으로 인해 의심의 옷이 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우대식,「의심」전문(『시안』, 겨울호)
우대식의 시「의심」은 나희덕의 시와 마찬가지로 형식적으로는 종교적 외피를 입고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탈종교성을 지향하는 시이다. 이 시에 나오는 신은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고 전지전능하사 나를 보호하시며 한없이 사랑하시는도다.”라는 구절로 보아, 기독교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신이 만들어준 ‘의심’이라는 옷을 입고 사람들을 의심하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급기야는 신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이 시의 어법은 “의심이라는 환한 옷,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는 시인의 진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어적이다. 일반적으로 반어법을 사용하는 시들은 알레고리적 속내를 보여준다. 이 시 역시 세상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끝없이 의심하는 불신풍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기반성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 이 시의 말미에 나오는 ‘천둥과 벼락’은 의심으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하늘의 준엄한 꾸짖음을 상징하는 이미지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의심의 옷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는 결구는 반성할 줄 모르는 자아와 시대에 대한 반어적 풍자라고 볼 수 있다. 나희덕과 우대식의 시는 공통적으로 종교적 외피를 입고 있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탈종교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시인들이 문학을 종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종교마저도 과감하게 비유로 사용하는, 금기에 대한 위반의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텐션(tension)이 문학의 본질이라면 종교적 틀이 그 무게로 인해 종종 문학적 긴장관계를 갖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의 神은 언제나 왼쪽 귀로만 온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편애에 익숙한 그는 왼손잡이인지도 몰라 사륵 사르르 긴 옷자락을 끌며 하루도 빠짐없이 전례처럼 그가 다녀가고 내 왼 귀는 그래서 종교적이다 지극히 도덕적이다 오른 귀의 낭만과 사철 부는 바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좌우의 기류가 풀 멕인 하늘처럼 팽팽한 날 그런 날은 성난 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데칼코마니 같은 내 몸의 경계에는 반절짜리 연애가 산다 절반쯤 달려가다 돌아오고 돌아오는 슬픈 연인이 산다 그래도 모른 척 신은 왼쪽 귓속에 더 깊은 소리의 동굴을 파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近思錄에 관해 ㅡ우대식
朱子가 성리학에 대해 쓴 책 제목이 近思錄이라 했다 近이라는 글자에 놀랐다 이른 새벽부터 내 詩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이 近이라는 말이 천근만근으로 나의 생각을 눌렀다
늦가을 서리가 기와를 타고 녹아내려 이마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나의 생각은 나에게서 얼마나 떨어진 것일까 누추한 주막에 들어 붐비는 생각의 잔盞을 마시다 도마 위에 놓인 오래된 칼을 보았다 그 칼로 내 생각 아닌 것들을 단번에 쳐내고 싶었다 하여, 나도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近思해보고 싶었다 詩가 아니어도 좋다
-------------------------------------------- 주자는 일찍이 근사록은 사서의 초보라 하여 고전 공부의 중요한 저작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근사록은 성리학 이론을 체계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조선 후기까지 유학자들의 필수문헌이었다. 본래 ‘근사’라는 말은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切問而近思]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는 논어의 한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우대식 시인의 시선이 근사(近思)에 꽂혀 근사하게 꽃피웠다. 시인의 촉수에 걸려든 근사라는 말이 새로운 감성의 영토에 진입하여 시의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살아 꿈틀대고 있다. 특히 “近”이라는 글자가 절실하고 명료하게 다가와 화자는 시에 대해 궁구하고, 여러 날 이 글자에 붙들려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접신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 순간은 놀라움과 깨달음의 순간이며 희열과 매혹으로 몸을 떠는 찰나이다. “나의 생각은 나에게서 얼마나 떨어진 것일까”라는 화두를 잡게 된 화자는 비로소 사유의 방향과 내용을 구체화하고자 좀 더 골똘해진다. 생각의 색깔, 모양, 줄기, 뿌리 등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우연히 술집 도마 위에 있는 한 자루의 칼을 보게 된다. 눈이 번쩍 뜨이고 머릿속이 명쾌해진다. 가슴은 뜨겁고 손을 조금씩 떨린다. 목표물이 정해진 화자는 단숨에 “내 생각 아닌 것”을 가차 없이 쳐내기 위해 긴장하고, 온몸의 기운을 한곳으로 모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생각을 입고 산다. 마치 제 옷인 양 한껏 멋을 부리며 현학적 제스처로 자기 과시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체의 감각을 통해 발현된 독창의 사유가 아니라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의 틀에 길들여져 사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이 아니라 타자의 사유를 수용하고 보편의 질서에 쉽게 편입된 비주체의 삶인 것이다. 시 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보편성이라는 낱말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보편이라는 말은 다수의 정서를 평균화하고 균질화한 결과물이다. 보편의 논리가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는 지금까지 그럴듯한 품새로 걸쳐 입고 있던 남의 생각의 덤불을 쳐내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유의 핵심에 이르고자 “近思”를 염원한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近思”야말로 주체 회복의 열쇠이다. 설령 그것이 한 편의 “시”가 아니라 할지라도 가장 근원적 삶의 양식에 대한 기원은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다. 존재의 고양은 영성의 힘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이러한 실존적 노력을 통해서도 근사하게 실현될 수 있음을 우대식 시인은 한 편의 시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적 노력은 시 이전, 언어 이전의 존재의 심연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시원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지난한 몸짓이다.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버지의 쌀 ㅡ우대식(1965~ )
아버지가 쌀을 씻는다 쌀 속에 검은 쌀벌레 바구미가 떴다 어미 잃은 것들은 저렇듯 죽음에 가깝다 맑은 물에 몇 번이고 씻다 보면 쌀뜨물도 맑아진다 석유곤로 위에서 냄비가 부르르 부르르 떨고 나면 흰 쌀밥이 된다 아버지는 밥을 푼다 꾹꾹 눌러 도시락을 싼다 빛나는 밥 알갱이를 보며 나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죽어도 잊지는 않으리 털이 숭숭 난 손으로 씻던 그, 하, 얀, 쌀
............................................................................... 여기 '어미 잃은' 어린 것, 그래서 자칫 '죽음에 가까운' 아들 곁에서 아버지가 쌀을 씻는다. 그때마다 잃은 아내와 남겨진 아이의 일로 쌀뜨물처럼 흐려지는 마음을, 아버지는 차분히, 차분히 '맑은 물에 몇 번이고' 씻어낸다. '부르르 부르르' 떨면서 잦아들어가는 흰 쌀밥. 처음 보는 밥이다. 솥뚜껑을 열면 뽀얗게 웃으며 피어올랐으리라. 슬픔을 익혔으니! 아버지의 사랑을 꿀떡꿀떡 삼키는 어린 아들을 본다. 철이 들어버린 어린 아들이다.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詩) ㅡ우대식(1965~)
시는 나를 일찍 떠난 내 어머니였으며 왜소했던 아버지의 그림자였으며 쓸쓸한 내 성기를 쓰다듬어 주던 늙은 창녀였으며 머리에 흐르던 고름을 짜주던 시골 보건소 선생이었다 시는 마당가에 날리는 재(灰)였으며 길을 잃고 강물 따라 흐르는 밀짚모자였다 폭풍 전야, 풀을 뜯는 개였으며 탱자나무 가시 아래 모인 새이기도 하였다 늘 피가 모자라 어지러워하던 한 소년이 주먹을 힘껏 모았다 펴면 가늘게 떨리는 정맥 그곳에 시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시집 『설산 국경』(2013) .............................................................................. 시는 현실에는 없고 마음에는 있는 것을 숙주로 삼는 데는 선수다. 어머니가 시퍼렇게 살았다면, 잘난 아버지가 있었다면, 애인과 참하게 연애하여 결혼했다면 시를 만날 수 있었겠는가. 마음에는 충만하고 현실에는 터럭 한 올 찾을 길 없는 이 극한 부재의 화신이 시다. 없는 것을 우상처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바닥까지 인정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우대식 시인이 시를 쓰기까지의 과정 또한 그러하다. 자신의 안팎에서 출발한 시는 심도와 확장을 더해간다. 현실에는 없고, 마음에는 충만한 이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자를 떼어내려는 노력을 한다. 이를테면 전쟁터에서는 평화를, 억압의 공간에서는 자유를 그려낸다. 인류가 그런 시들을 가지게 된 것도 우선은 시인들이 개인의 영역에서 고통과 맞서 싸운 훈련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시인들이 시를 쓰게 된 배경과 과정에 대한 고백은 거개가 이런 유형이다. 그들은 고통에 대한 수많은 위로의 방법 중에서 하필 시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시 쓰기는 자신이 받은 위로를 세상에 돌려주는 채무이행 과정이다.ㅡ 안상학 (시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내 안의 겨울, 三冬을 찾아서 ㅡ우대식
내 안에도 三冬이 있어 펑펑 눈이 쏟아지는 진부 골짜기에서 다시 나를 만났을 때 붉게 언 손도 못 내민 채 쓸쓸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겨울을 찾아 헤매던 어느 여름날 나는 임계 장터의 각다귀이거나 봉평 냇가 여울목 쏘가리이기도 하였다. 차디찬 겨울은 눈 속에 묻혀 보이지 않고 아무르 강까지 찾아간 발걸음은 허탕이었다. 하루 종일 멱에 지친 등짝 까만 사내아이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의 무지는 병이 되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즈음 허파 속에서 강력한 눈보라가 일어나 허름한 방에 나를 눕혔다. 가물거리는 백열등 아래 차디찬 방바닥에 몸을 묻으면 하나의 환영(幻影)이 다가오다 사라지곤 하였다. 내 안의 겨울, 三冬은 반갑지도 슬프지도 않은 사내의 형상으로 진부 골짜기 허름한 방에 불쑥 들어와 한참을 바라보다 눈보라와 함께 사라졌다. 이미 멀리 겨울까지 도달한 내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봄으로 가는 모든 회로를 끊은 채 하늘 높이 눈이 쌓여가는 三冬 아래 잠들 것이다.
계간 『시와 사람』 2010년 여름호 발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제18회〈현대시학〉작품상
왼손의 그늘 (외 4편) 우대식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시라 이 가을날 나의 사랑을 얼마 남지 않은 저 잔광의 빛으로 당신을 몰고 가는 일 그것이 내 연애법이다 그 몰입에 얼마나 당신이 괴로워했을 줄 모든 빛이 꺼지고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처럼 당신과 내가 어느 풀밭에 앉아 있다 하자 젓가락을 들어 당신은 내 입에 음식을 넣어준다 음식 밑에 바쳐진 당신의 왼손 그 아래로 그늘이 진다 왼손의 그늘, 지상에서 내 삶이란 당신이 만들어준 왼손의 그늘에서 놀다 가는 일 놀다가 가끔 당신이 그리워 우는 일 코스모스처럼 내 등을 툭 한번 쳐보다가 돌아가는 당신의 늦은 귀가 그림자가 사라질 때 나의 연애는 파탄의 골목길 용재 오닐의 비올라 소리 같은 깊고 슬픈 당신의 오랜 귀가
—《문예중앙》2012년 가을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론 ㅡ 친자(親子) 확인 ㅡ 우대식
어느 날 다 큰 여자가 찾아와 당신이 나의 아버지입니다 라고 증오에 찬 눈으로 집 문 밖에 서 있다면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처럼 정중하고 사랑스럽게 맞이하겠다. 친자 확인 같은 것은 필요 없이 당신이 내 딸임을 스스로 고백하겠다. 내게 재산은 없지만 정성을 다해 나누어 주겠다. 19년 동안 <옵바와 화로>라는 임화의 시를 읽었지만 나는 늘 추웠다. 두 손을 식어버린 난로에 디밀고 무언가 올 적에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리라 결심을 했다. 이미 있는 것들 때문에 앞으로 올 것을 버리지는 않으리라. 얼마나 추웠느냐? 얼마나,
계간 『미네르바』 2012년 겨울호 발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신폭(神瀑)에 들다
윈난성 신폭 아래 객잔에 들었다 숯불을 피우고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다 쿵쿵 발자국 소리가 들렸지만 먼 당신은 가끔 눈사태만 엽서처럼 보냈을 뿐 흔적이 없다 떡을 떼어 객잔의 창으로 흐르는 눈발에 섞어 먹었다 반야의 밤에 달이 떠오르면 야크의 젖통은 부풀어 신의 나라에서 온 것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아무것도 나를 지우거나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붉은 숯불이 잦아든다 국경 아래 뜬 달이 조금씩 기울면서 그 아래를 걷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 듯도 했다 환상 속의 당신 그대 어깨가 붉어진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명도 무명의 다함도 없다는 설산 국경에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당신을 기다리던 한 생(生)이 있다
—《문예중앙》2012년 가을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버지의 발자국
꾹꾹 눈 쌓인 산소를 밟으며 무슨 대답을 해야 합니까 무엇을 물어도 답할 수 없습니다 어린 날 만종 驛 어느메 즈음에서 당신과 함께 걷던 먼 들판을 기억합니다 그 들판에 눈도 내리고 저녁놀도 지곤 하였습니다 오늘 당신과 나의 거래(去來)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가고 무엇이 왔습니까 아마도 번뇌 같은 것이겠지요 그물과 같이 던져진 그것 눈이 시린 하늘을 새가 날아오를 때 당신과 나의 거래는 원만히 성사된 것이지요 이제 다시 만종 驛 즈음에서 서성입니다 기사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풀리지 않는 답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아버지의 발자국이 흐려졌습니다
—《시와 미학》2012년 가을호
겨울날의 모든 저녁은 슬프다
지옥을 유예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원한다면 다음 생애를 이어가며 지옥을 영원히 유예할 수 있다는 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영원 너머 한 번은 그곳에 가야 한다는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지상의 소시민이 이렇듯 큰 생각을 하며 지옥 아래 마을을 떠돈다는 사실이 조금은 쓸쓸했다 추운 겨울 저녁 들기름 바른 김을 숯불에 굽던 옛집으로 돌아가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눕고 싶다 오한 속에서 만나는 지옥의 야차와 일대의 싸움을 끝내고 오랜 잠을 자고 싶다 겨울날의 모든 저녁은 슬프다 봉당에 켜진 알전구처럼 겨울날의 모든 저녁이 나를 기다렸다
—《유심》2013년 4월호 ------------- ▮ 작품상 심사평 중에서(발췌) 특히 매회 수상자에서 비껴간 우대식의 시가 이번 수상 대상자로 심사위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우리 시의 흐름이 지닌 어떤 영악스러운 계산성에 그가 그동안 편승하지 않고 묵묵히 극복해가고 있는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 나는 그의 어눌한 연애가 갖는 그만의 파탄의 골목길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한다. <왼손의 그늘>! 그것이 보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이 바로 파탄의 골목길이다. 그 삶의 환유를 우리는 소중하게 읽어야 한다. — 정진규 우대식의 시에는 살아온 자기 생의 상처가 있고, 고뇌하는 자기 생의 사유가 담겨 있다. 언어로 그린 간결한 이미지의 데생 같은 우대식의 「시詩」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인의 가파른 삶의 궤적을 나타내 보인다. 자기 삶과 시와의 대비가 간결하고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이 같은 우대식의 진일보한 화법은 시로서의 높은 성취를 보여준다. — 김종해
그의 시 가운데 「왼손의 그늘」에서 그 떨림은 사뭇 독특한 반향을 일으킨다. ‘지상’의 화자가 ‘놀다 가는’, 그러다가 ‘당신이 그리워’ 울 수밖에 없는 ‘당신이 만들어준 왼손의 그늘’은 황량한 만큼 아름답고 아름다운 만큼 황량한 역설의 미학을 드리운다. — 오태환 시가 만들어주는 <왼손의 그늘>에서 놀다 가는 일이 얼마나 쓸쓸하고 애틋한지 그는 늘 돌아가려는 곳이 있어 보인다. 그곳이 고향 같기도 하고 애인의 품속 같기도 하고 그가 추구하는 시의 아름다움이 완결되는 곳 같기도 하다. — 조말선
—《현대시학》2013년 8월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천국의 나날 ㅡ우대식
천국의 나날을 사는 동안 신은 늘 너무 먼 곳에 있었다 황량한 마을 공한지에 핀 낡은 꽃잎처럼 마음이 엷어질 때 마리아를 불렀다. 마리아 당신의 등에서 어떤 외로움이 낸 물길을 바라본다 마리아 내 성기는 이미 사타구니 살에 붙어 버렸다 천국의 나날을 사는 동안 불행의 구름들은 늘 나를 조준하였지만 당신 등에 기댄 내 얼굴은 행복했었다고 고백하겠다 어떤 서원(誓願)도 내가 당신의 과거를 생각하는 일보다 위대하지는 않다 당신의 윤기 흐르는 머리칼을 생각하는 일보다 깊은 심연은 없다 지금, 여기 내 발에 고인 먼지를 당신의 머리칼로 닦아준다 영원히 깨지지 않는 항아리를 등에 지고 당신이 허리를 숙인다 죽으면 안 되는 것들은 지상엔 없다 당신의 허리에서 솟아나온 하나의 목소리 천국의 나날들이 지겨워질 때 까마귀 한 마리가 들판을 건너간다 세상에 나보다 더 아픈 건 없다 세상에 나보다 더 아픈 건 없다
웹진 『시인광장』 2013년 11월호 발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폐허 ㅡ우대식
꽃은 지고 사이보그 빌리지에서 떨어진 붉은 꽃잎을 깔고 앉아 자위를 한다. 무너진 한쪽 지붕으로 달빛이 스민다. 폐허다. 폐허의 터전이다. 천천히 속도를 조절한다. 모든 깃발이 내려온다. 모르스 부호를 타전한다. 돈쓰돈돈 돈돈돈돈 어떠한 구조요청도 아님. 수신자가 있다면 어서 여기를 떠나라. 폐허 속에서도 한 인간이 잠들고 가끔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알리고 싶을 뿐,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겸손히 지구에서의 생을 마치라. 체리 브로솜, 구겨진 얼굴로 벚꽃이 쏟아진다. 어떤 향기, 여자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아득함이 몸을 감싼다. 누구도 죽지 않았지만 누구도 살아있지 않다. 가끔씩 인기척이 들린다. 요금 청구서가 쌓여간다.
계간 『시와 문화』 2015년 봄호 발표
백 년만의 사랑 ㅡ우대식
백 년 전 나는 긴 난전의 뒷골목에 앉아 있었다 점점이 어두워지는 거리에 등불이 켜지면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내게로 왔다 젖은 채 다가오는 사람들 호리병 같은 젖가슴을 가만히 내밀었다 지긋이 입술을 대면 저 멀리 골목 끝에서 날려 오는 벚꽃 잎들 온통 꽃잎이 깔린 뒷골목에서 등불을 들고 걸어가는 반백의 사내가 있었다 이제 어둠의 잔을 채우고 꿈같이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노니 시여 백 년만의 시여 이제 내게 검이 아닌 하나의 사랑을 다오 차마 만질 수 없어 치어다 보다 울고 떠난 한 송이 꽃을 다오 백 년만의 사랑이 또 다시 뒷골목을 헤매도록 그대로 놓아다오
월간 『시와 표현』 2015년 3월호 발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정선을 떠나며 ㅡ우대식
파울 첼란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시절은 흩어져 여자의 등에 반짝인다고 시선을 거둔다 운명이란 최종의 것 정선 강가에 밤이 오면 밤하늘에 뜨는 별 나에게 당신은 그러하다 성탄절의 새벽길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기찻길 옆 제재소에서는 낮은 촉수의 등이 켜지고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들을 받아내고 있다 선명한 모든 것들을 배반하며 산기슭으로 흐르는 눈발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또 언제나 부질없다 가끔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을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밥을 남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사랑이다
—《시와 표현》2013년 가을호 -------------
며칠 ㅡ우대식
청령포 부근 마을 작은 방을 빌려 한 며칠, 죽은 왕은 눈 속에도 자꾸 물을 건너고 어쩔 수 없다 꿈에서 꿈으로 며칠 배가 고플 즈음 강가에 서면 감발을 치고 길을 나서는 사내들의 눈이 매섭다 쉬이이 귀때기를 치고 가는 바람 눈은 며칠 멈추지 않으리 다시 걸어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갈 때 칼같이 선 바위꼭대기에서 우르르 눈이 몰려 내려온다 나라는 무엇입니까 사랑은 무엇입니까 어린 왕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꾸 장에 가는 아낙들의 뒤를 따른다 여기에 이르러 얼음장 아래 물소리는 소리 죽인 천둥소리가 되고 어두운 하늘 날아가며 점점이 우는 겨울새 그, 겨울날의 며칠
—《시인수첩》2014년 여름호 -------------
삵 ㅡ우대식
내가 한 마리 삵이 되어 발해만 앞바다를 서성이는 이유는 어디 먼 해조음이 들려오는 탓이다 울지 말고 그만 잠들라는 그 어떤 신호도 울음소리였다는 것을 아는 때문이다 달 아래 그대 젖가슴으로 찬 손을 천천히 뻗어본다 죽음이란 이런 순간 다가오는 것 내가 한 마리 삵이 되어 발해만 앞바다를 서성이는 이유는 발이 네 개인 때문이다 해변을 달린다 달림, 들림, 혹은 울음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 12월의 해변을 내달려 나의 울음도, 너의 울음도 그대 핏줄 어딘가에 돋아난 푸른 감각이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그대에게 보낸 한 통의 죽간(竹簡)은 받아보았는가 내 입에는 날이 선 이빨이 가득 고여 입을 벌리면 한 마리 삵이 되어 눈 내린 험한 산을 떠돈다고 썼다 기차는 발해만을 떠나 극락강을 지나는 중이다 광포한 노래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고 썼다 너는 읽었는가 모든 근육이 일제히 발이 되어 걸어가는 한 마리 삵, 꽃무늬 발자국이 그대 젖은 분화구를 어지럽게 흩뜨려놓았을 것이다
ㅡ단검ㆍ실천문학사 2008.01.15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五里 ㅡ우대식
五里만 더 걸으면 복사꽃 필 것 같은 좁다란 오솔길이 있고, 한 五里만 더 가면 술누룩 박꽃처럼 피던 향香이 박힌 성황당나무 등걸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五里, 봄이 거기 서 있을 것이다 五里만 가면 반달처럼 다사로운 무덤이 하나 있고 햇살에 겨운 종다리도 두메 위에 앉았고 五里만 가면 五里만 더 가면 어머니, 찔레꽃처럼 하얗게 서 계실 것이다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ㆍ천년의시작,2003년ㅡ
ㅡㅡㅡㅡㅡㅡㅡㅡ
정선 아라리, 당신 ㅡ우대식
비가 오는 삼월의 마지막 날 마음의 회랑 안쪽에 정선 아라리 긴 휘장을 친다 다시 비가 내리고 또 다시 눈이 내린다 그 휘장 아래를 걸으면 밑도 없는 물길, 끝도 없는 산길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내 슬픔이 무엔가 생각할 즈음 당신에 대해 명상을 한다 정선 아라리, 당신 왜 그렇게 천천히 또다시 굽이굽이 적막강산에 서 있는가 비는 여전히 내리고 그 긴 휘장에 앉아 한 마리 짐승처럼 온 몸을 웅크린 채 소금 사러 가던 먼 길과 석탄으로 몸을 씻던 내(川)와 그런 길과 그런 내에서 당신을 기다리던 배가 고팠던 저녁 정선 아라리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