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식탁이라고 해서 언제나 山海珍味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왕의 기호나 인생관에 따라 다르다. 정조임금은 찬품 서너 그릇 외에 더하지 않았다고 한다. 王母인 洪氏는 한중록에서 밝혔다. 붉은칠한 둥근 상(朱漆圓床)과 그보다 적은, 역시 둥근 左右 협반 위에 왕의 기호대로 반찬(饌物)이 올라 가는데, 고종이나 순종임금도 짠것, 매운 것을 못 들었다 한다.
순종임금은 치아가 약해서 깍두기도 무우를 삶아서 담갔다고 한다.
____<식기ㆍ食器>_
식기는 모두 은반상기(銀飯床器)이며, 접시라는 것은 아예 없고 반찬도 다 조그만 은합(銀盒)에 담는다. 이 은합에는 고종과 순종대에는 이화(李花)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는 日人들의 소위 家門의 상징인 문장(紋章)을 따라 한국 왕실이 제정한 가문(家紋)이었다. 왕이나 왕비의 수라 그릇은 남녀 구별없이 민간에서 쓰는 것보다 두 배나 큰 합(盒)과 바리(鉢里)의 중간쯤 되는 은기(銀器)였다. 시저(匙箸,보통 수저:숟가락을 말함)는 은수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