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옷장 서랍에서 통장이 나왔다. 통장을 살펴보는 큰형 주위로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통장의 주인이 되는 아버지는 영혼과 육신이 슬픔에 젖어 벽을 보고 누워 있었다. 아내는 부엌에서 짝수의 살림살이를 홀수로 정리하며 청소를 했다. 아버지와 아내, 두 사람만이 통장에 관심이 없다.
페이지를 넘겨 거래 내역과 잔액을 확인한 큰형은 아내를 흘끔 보고 통장을 테이블에 얹어 두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둘째형과 누이도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머니의 부재처럼 통장 잔액도 텅 비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통장이 어떤 용도와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더 이상 생활 능력이 없게 되자 피를 나눈 동기들이 모였다. 노후대책이 자식을 키우는 게 전부였던 부모님을 위해 매달 십오일에 통장으로 생활비를 보내자는 말로 결론이 났다. 달마다 기본 입금액이 정해지고 각자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알아서 더 입금하자는 결정을 했다.
가난의 개흙에서 육체적 노동만으로 네 명의 자식을 키운 부모님의 노후를 보살피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집간 누이를 빼더라도 삼형제 모두 결혼해서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여섯 명이나 되는데 부모님을 돌보는 게 뭐가 어렵겠냐며 입을 모았다. 입히고 먹이고 재워야하는 아이 키우기보다 훨씬 쉽게 한 달에 한번 돈을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큰형과 사업을 하는 둘째형의 형편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내 처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부모님의 노후가 문제없이 잘 풀렸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가벼워졌다.
마주 앉은 아내에게 형제들과 의논한 결과를 전하자 "네"라는 짧은 대답만이 돌아왔다. 군소리 없는 대답이 미심쩍어 얼굴색을 살폈다.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왔으니 달라진 게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결혼 후 삼 년 동안 아내가 부모님께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아내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통장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귀중한 자료라도 되는 듯이 페이지를 꽉 채운 통장은 고무줄로 묶여 있었고 최근까지 사용했던 통장만이 혼자였다. 무리에서 떨어진 통장은 이제 배우자를 잃고 혼자 지내야하는 아버지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 이름으로 처음 입금된 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부부가 결혼한 날이 오월 이십구 일인데 그 이전 어버이날에 이미 입금된 내역이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자식으로서의 책임을 시작한 것이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통장 전부를 살폈지만 십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십오 일을 넘겨 입금 한 날이 한 번도 없었다. 휴일이면 다음날 빠져 나가는 자동이체가 아니라 매 순간 아내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계좌이체라 날짜 통일이 가능했던 일이었다.
긴 세월 동안 십오 일이 공휴일과 몇 번은 겹쳤을 것이다. 그때마다 은행에 가서 직접 붙였다는 말인가? 아내는 왜 쉽고 편한 자동이체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휴일에도 돈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도록 부모님을 배려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내의 집중력에 놀랐다. 우리 아이들의 생일이 삼 일과 이십육 일이다. 만삭일 때도 입금했고, 산모의 몸으로 직접 계좌이체를 시켰다는 뜻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난 해 내가 맹장이 터진 걸 모르고 일하다가 복막염으로 전이되어 큰 수술 받은 날도 십오 일이었다. 수술 받는 그날도 잊지 않고 입금은 이루어졌다.
뚫어질듯이 입금내역을 보다가 눈을 비볐다. 아내 친구 이름으로 두 달 동안 입금이 이어져 있었다. 입금 년도와 월을 살펴보다 청소하는 아내를 쳐다봤다. 가시밭길을 걸었던 잊을 수 없는 기간이었다. 거래처의 부도와 공장의 화재로 살림집 지붕이 날아가고 기둥이 뽑혀진 시기였다. 아내는 부모님의 생활비를 친구한테 빌려서 보냈을 것이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빠져 나갈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으니 친구에게 바로 송금을 부탁했던 모양이다. 부모님 생활비에 정성을 쏟은 아내의 마음이 읽혀졌다.
부모님은 아내를 무척 고맙게 여겼고 나를 살렸다는 말로 남다른 사랑을 표현했다. 같이 식사를 하면 맛있는 것을 항상 아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아내를 만나기전 나는 집안이 꽤 부유한 여자를 만났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결혼조건으로 처갓집에서 살아야하는걸 싫어했다. 아버지는 노후에 막내인 나와 살고 싶은 마음을 아내가 우연히 알았다. 그런 아들인데 처가 식구들과 더불어 살고 있으니 아내는 부모님께 늘 죄송하다는 말을했다.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그랬던 것일까.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매년 이월이나 삼월에 특별히 입금된 내역이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이었다. 부모님 생일도 아니었다. 아내에게 통장을 보여주며 이유를 물어봤다. 눈동자에는 슬픔이 자욱하게 베여있었다. “당신 생일날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벽을 보고 누워있던 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너 낳아주어서 고맙다며 보낸 거다. 털피같은 네가 뭐가 잘났다고 해마다 돈을 보내는지, 데리고 살고 밥상 차려주고 옷 빨아 입혀서 우리는 짐 하나 덜었는데”
애교와 정이 없는 여자라고 섭섭함을 입에 달고 살았던 지난 시간이 부끄러웠다. 반바지라고 놀렸던 아내의 작은 키가 나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마당에서 아내가 통장을 태우고 있다. 작은 불꽃이 일렁인다. 아내의 눈물에 불꽃도 젖어든다. 통장의 거래내역을 남겨서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냥 지켜보았다. 이제 아내는 평생 나를 부려 먹어도 되는 우월적 지위에 올랐다. 하얀 연기를 보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나에게 아내보다 사흘만 더 생명을 주시어 그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첫댓글 가슴 먹먹한 이야기!
감동이 넘칩니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혼탁해졌다 해도 곳곳에 이런 분들이 있어 살만한 세상인 듯 합니다. 가슴에 감동을 지니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