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51/191214]선화禪畵 ‘한산과 습득’
당나라때 국청사라는 절에 얹혀 사는 ‘돌중(땡초)’ 두 명이 있었다 한다.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이 바로 그들인데, 그들을 문수와 보현보살의 현신이라고 알아주는 아미타불의 현신 풍간豊干스님까지 합하여 ‘국청삼은國淸三隱’이라고 했다던가. 한산은 한산굴에서 살았대서, 습득은 어릴 적 스님이 주워왔대서 생깅 이름이다. 믿거나말거나, 거의 전설같은 얘기이지만, 지금도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에 한산사寒山寺라는 절이 있고, 한산시寒山詩라는 선시집禪詩集(한산 314편, 습득 17편, 풍간 2편)이 남아있으니. 그들은 다 떨어진 옷에 뾰족한 모자, 커다란 나막신을 신고 다니며, 어디서나 어린애마냥 천진하게 낄낄거리며 기행奇行을 일삼았으나, 선지식善知識들조차 그들 앞에선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도력道力이 높았던 모양이다.
일단 한산의 시 한 편을 감상해보자.
유주상초음 유육상호끽 有酒相招飮 有肉相呼喫
황천전후인 소장수노력 黃泉前後人 小壯須勞力
옥대잠시화 금차배구식 玉帶暫時華 金釵非久飾
장옹여정파 일거무소식 張翁與鄭婆 一去無消息
술이 있어 서로 불러 마시고 고기 있어 서로 청해 먹으라
앞서고 뒤서 황천 갈 사람들 젊어 모름지기 힘써 일하라
옥대도 잠시의 영화, 빛나는 금비녀도 오래 가지 않는다
장가 늙은이도 정가 노파도 한번 가니 무슨 소식 있더냐
*옥대는 높은 벼슬, 금차는 부귀영화를 상징함.
그러니까 이런 ‘흰소리’나 읊조리며 자유분방하게 살다간 땡초들인 셈이다. 요堯임금이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하자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귀를 씻고 깊은 산으로 들어간 허유許由같다고나 할까.
70년대 후반, ‘한산시’ 시집을 어디에선가 구해 읽으며, 깊은 뜻도 모르면서 그들의 ‘탈속한 한삶’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그 시집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는데, 잦은 이사로 분실된 듯하다. ‘반 세기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한 것같지는 않는데(아마도 한두 번 했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고향집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자마자 선물로 가져온 그림이 놀랍게도 바로 이 ‘한산습득도’였다. 깜짝 놀라 반색을 했다. 그것도 ‘달마도達摩圖’로 유명한 범주梵舟스님이 그것이다. 범주 스님이 즐겨 그리던 소재이나, 쉽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작품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걸어놓고 범주스님이 화제畫題로 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고려말 나옹대사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시중에 노래로도 유명하지만, 한산시에 이렇게 실려 있으니, 원작자는 한산이 아닐까싶다.
靑山見我無言以生 청산견아무언이생
蒼空見我無塵以生 창공견아무진이생
解脫貪愛解脫塵埃 해탈탐애해탈진애
如水如風生涯以去 여수여풍생애이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땡초중의 스승격인 풍간에게 중생들이 ‘불법佛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풍간은 “수시隨時”라고 한 마디 툭 던지며 사라졌다고 한다. 아마도 ‘수시’는 ‘형편대로’의 뜻일 듯. 형편대로라니? 불교의 진리는 딱히 고정된 ‘그릇用器’이 없는 것인가. 기행 가득한 두 스님의 지향한 바를 언감생심焉敢生心, 뒷꿈치의 때만큼이라도 따를 수는 없을지라도, 가끔씩 무소유無所有와 탈속脫俗의 삶을 시늉이라도 내며 살라는 뜻으로, 친구는 이 그림을 액자에 담아 선물하지 않았을까. 빙그레 웃는다. 고맙다. 두고두고 그 의미를 곰씹으며 살겠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이 새벽, 두 손을 모은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