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기, 다 – 슬기
-윤동재
어렸을 때 어른들은 말씀하셨지
남자는 바깥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갈 때 하다못해
돌멩이라도 하나 들고 들어가야 한다고
돌멩이라도 하나 들고 들어가면 된다고
늦게 철이 들었나?
새봄 나 혼자 청송밭에 가서 감자 심고 부추씨 뿌리고
차를 몰고 분당 집으로 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괴산휴게소에서 잠시 쉴 때
오늘따라 로컬푸드점이
눈에 쏙 들어온다
그렇지 빈손으로 집에 들어갈 순 없지
밭에서 수확한 건 하나도 없고
로컬푸드점으로 가서
왕깐다슬기살 만 칠천 원짜리
과감하게 집어들고 계산했다
술값 쓰는 일 말고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과감해졌나?
참 그렇지 나를 위해서는 이보다 큰 돈을 써보았지만
집사람을 위해서는 처음이니
과감해진 게 맞다
우리 마눌 안사람이라 부르던 게 새삼 어색하고
와이프는 날 선 나이프의 사촌 같아 싫고
이제부터는 집사람이라 하면 좋겠다
그래 집사람 주려고 샀다
집사람 주려고 그것도 과감하게
만 칠천 원을 말 그대로 쾌척했다
집에 빈손으로 들어갈 순 없잖아
그렇다고 돌멩이를 들고 갈 수 없잖아
돌멩이를 들고 들어가면 된다지만
왕깐다슬기살을 받아들고
로컬푸드점을 나오니
다슬기들이 바로
나 들으랍시고 다슬기 다 - 슬기 외친다
다슬기, 내가 슬기가 많다는 뜻
다 - 슬기,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슬기롭다는 뜻
집사람이 알아주기 전
남들이 알아주기 전
다슬기가 먼저 알아 주네
다슬기, 다 - 슬기
과감하게 만 칠천 원 쓰고
내가 다슬기, 슬기가 많은 사람이 되었네
내가 다 - 슬기, 모든 게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네
아, 나 같은 사람을 애처가라고 하는구나
슬기 많고 슬기로운 나도
슬기 다슬기 다 - 슬기 덕에 명실상부 애처가가 되었네
슬기, 슬기, 모든 슬기는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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