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IER SPIRIT(창12:1-5)
-부제 : 한사람의 발걸음이-
2008. 8. 24(서울제일교회 4부예배)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5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12:1-5)
어느 분야에서든지 선구자와 개척자(Frontier)가 되는 일은 외롭지만 그만큼 보람있는 일이기도 하다. 또 선구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다되는 것도 아니다.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숲속이라 해도 그곳에 길을 볼 수 있는 눈, 지금은 투박한 바위돌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서 멋진 작품을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눈을 가졌다 해도 내 생각 속에 있는 그것을 눈에 보이는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전정신과 모험정신 그리고 지혜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선구자는 곧 꿈의 사람이며, 패기(覇氣)의 사람이기도 하다.
몇 개월 전에 전경련 세미나에서 미래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서 ‘10년 후 무얼 먹고 사나?’라는 주제로 전략을 세운다는 뉴스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구자 정신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정신이 선구자 정신이다. 현실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지금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선구자 정신(Frontier Spirit, 개척자 정신)이다. 선구자 정신은 단순히 무슨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 바톤을 이어받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분야에 대해서 선구자가 되거나 설령 선구자는 아닐지라도 선구자 정신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선구자 정신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령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집안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 영적인 선구자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선구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또한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선구자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적이든 또한 세상에서든지간에 이 세상은 선구자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의해서 유지되고 발전되어 왔다.
오늘 본문은 영적인 선구자 정신(Spiritual Frontier Spirit)을 갖고 승리했던 한 대표적인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하실 때 즉시로 순종해서 떠났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아브라함의 원 고향은 갈대아 우르이다(지금의 이라크,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합류하는 지점 부근에 있음). 그가 살던 우르는 우상숭배가 가득한 도시였고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제조업자로서 우상을 만들어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복을 받아 누리며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뤄나갈 사역자로 서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란에 왔을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갈 것을 명령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75세였다. 75세나 된 아브라함이 과감하제 고향을 떠난 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나이와 건강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결단했다. 그의 결단은 단순한 로또복권처럼 ‘혹시나’식의 모험이 아니었다. 그의 도전은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간 말씀의 결단이었다. 아브라함은 영적인 선구자 정신으로 출발했다. 흔히 우리는 이것을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진정으로 영적인 패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믿음이 뭔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뜻대로 살기로 결정하는 것은 분명히 큰 영적인 모험이며 결단이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모험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믿음의 결단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생명이 흘러가게 하신다. 아브라함이 이러한 믿음으로 선구자적인 결단을 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탄생한 것이다.
만약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선구자적인 결단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는 그 당시에 수 많은 범인(凡人)들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았고 성경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 대신에 또다른 누군가를 택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부름(Calling)에 대한 응답을 기대하셨을 것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부름에 대해 선구자적인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을 통해서 흘러간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부름에 대해서 선구자적인 정신과 믿음으로 반응할 영적인 도전정신과 패기를 가진 젊은이를 찾고 계시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름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이러한 부름 앞에서 자칫하면 약한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수가 있다.
“선구자 정신을 갖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의 몫이지... 난 아냐”
“헌신은 사역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니 나같은 사람은...”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은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을 때, 그는 어떤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지금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그는 여러 평신도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보통 평신도라면 목회자(목사, 전도사)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일반 성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종종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가 아닌 신자를 편의상 성도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믿는 사람들은 다같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평신도일 뿐이다. 목사라고 큰일을 하고 일반성도라고 큰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목사보다 더 큰일하는 평신도가 많다. 미국에 큰 부흥을 일으켰던 무디(D.L.Moody)는 안수 받지 않은 평신도였지만 누구 못지않은 복음의 큰 사역을 이룬 사람으로 지금까지 그 영향을 미국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끼치고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무슨 안수 받은 성직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행할 때 위대한 일에 쓰임 받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결단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자신의 분야에서 선구자가 되라. 미개척 분야가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하나님께 구하라. 또한 설령 이미 다른 사람이 개척한 분야라해도 더욱더 선구자 정신으로 노력해서 그 분야에서 또다른 선구자가 되라. 특히 신앙적으로 가정과 직장에서 영적인 선구자가 되라. 하나님의 부름 앞에서 뒤로 물러나지 마라. 아브라함의 결단과 선지자 이사야의 결단처럼 담대하게 결단하라. 나는 내 분야에서 - 그것이 현실적인 분야든 영적인 분야든 간에 - 아브라함이 되겠다고 결심하라. 그리고 폭발적인 모험정신과 영적인 패기로 그 일에 대해서 도전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청년회의 부흥이나 셀사역, 처음교회를 회복하는 일에 대해서도 선구자 아브라함이 되라. 나를 통하여 영적인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맺히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라. 그리고 실행하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들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