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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정에서 모이는 신약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어라연
자유주제설교(2026. 8. 9.)
몸(Body)
오늘은 자유주제설교입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벌써 몇 년간 이어져오고 있는 성경인물 시리즈 설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구약성경 소선지서를 다루는 설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월 첫 주에는 복음이 선포됩니다. 그 중간중간에 자유주제설교가 있습니다. 설교자가 주제를 정하여 준비하는 자유주제설교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설교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주제설교보다는 현 시점에서 우리 모임에 꼭 필요한게 무엇일까 고민하며 준비하는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 몸(Body) 』이라는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소제목은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성도 여러분은 아십니까? 바로 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입니다. ἐκ(에크)라는 접두어와 καλέω(칼레오)라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제가 말씀교제를 하면서 가끔 원어를 인용합니다만, 이는 제 지식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고 성경말씀의 참 뜻이 뭔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원어 몇 가지만 알고 가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식으로...
먼저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즉 구약성경에서의 하나님은 אֱלֹהִים(엘로힘)입니다. אֱלֹהִים(엘로힘)은 ‘신’이라는 뜻의 אֱלוֹהַּ(엘로아흐)의 복수형입니다. 창세기 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복수형 אֱלֹהִים(엘로힘)으로 쓰였는데 이는 성경 첫 문장에서 이미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헬라어 θεός(데오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헬라어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예수스 크리스토스)라고 읽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표시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ΙΧΘΥΣ(Ἰ이ησοῦς Χ크ριστός θ데εός Υ후ἱός Σ소ωτή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들 구세주)
익투수 (예수스 크리스토스 데오스 휘오스 소테르)
초대교회 때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암호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하는 물고기 문양입니다. ΙΧΘΥΣ(익투수)는 고대 그리스어로 물고기라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식으로 알아두시면 좋을듯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 즉 ἐκ(에크), 로부터, καλέω(칼레오), 부르다 라는 뜻으로 ○○로부터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무리,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
로마서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고린도전서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교회는 죄로부터 불러낸 사람들,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무리, 사탄의 통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 우리말 성경은 “교회(敎會)”라고 부릅니다. 교회라는 한자는 뜻으로만 보자면 가르칠 교(敎)자, 모일 회(會)자로 ‘가르치는 모임’입니다. 아마도 아시아권에서 가장 먼저 복음이 전해진 중국 선교사가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어떤 단어로 번역할까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가르치는 모임, 즉 성경을 가르치는 모임이라는 의미의 교회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창기에는 교회라는 단어 말고 신회(信會), 곧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영어성경인 위클리프 성경에서는 주님의 집을 뜻하는 Church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교회하면 건물을 연상하게 된 배경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번역자는 아마도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하나님의 집, 성령의 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겐 직관적으로 ‘아! 교회는 건물이구나, 예배당을 교회라고 하는구나!’ 이렇게 오해하게 된 것이지요.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린 영어번역은 윌리엄 틴네일 역인데 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를 회중, 모임을 뜻하는 Congregation로 직역하였습니다. 우리 모임 기독교형제단의 초기 사역자인 다비 형제님도 church라는 단어 대신 assembly(모임)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후로 우리 모임에서는 church보다는 assembly를 선택한 듯합니다. 저희 교회도 간판을 보시면 assembly로 되어 있을 겁니다. 어쨌든 교회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건물이 아니라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는 곳(장소)’이 아니라 ‘모이는 것(모임 자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교회, 즉 불러낸 무리를 여러 가지 비유로 표현합니다.
1) 성전(하나님의 집, 성령의 전): 디모데전서 3:15, 베드로전서 4:17, 고린도전서 6:19
디모데전서 3:14~15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2) 주님의 몸: 에베소서 1:23, 고린도전서 12:27, 골로새서1:18,24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3) 그리스도의 신부: 에베소서 5:31,32, 계 19:7~9, 21:9
4) 하나님의 양 떼: 요한복음 10:16, 사도행전 20:28, 베드로전서 5:2,3
5) 진리의 기둥과 터: 디모데전서 3:15
6) 세상의 빛과 소금: 마태복음 5:13,14
7) 하나님의 밭: 고린도전서 3:9
저는 오늘 이런 다양한 표현 가운데 ‘주님의 몸된 교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저 자신이 몸된 교회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현재 내가 속해 있는 지역교회에 한정하여 생각하기를 잘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처음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실 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분명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시작되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진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적으로는 주님의 부활 이후부터 재림 시까지이고, 공간적으로는 5대양 6대주 온 세상에 퍼져있습니다. 한 몸인 것이지요. 따라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에 관한 모든 말씀들이 반드시 우리 모임, 춘천샘물단지길교회에게 적용해야 하거나 또 그런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말씀의 앞절을 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신데 그분께서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렇게 하신 이유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세우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 몸으로 존재하는, 소위 말하는 우주적인 교회 측면에서 보면 모든 지역교회에 사도나 선지자나 복음전도자나 목사·교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는 초대교회에만 존재했었고 선지자 역시 대부분 그렇다고 성경학자들 대부분이 분별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복음 전도를 위해 특별히 구별된 사람으로 성경에는 단 세 번만 사용된 용어입니다. 사도행전 21장 나오는 복음전도자 빌립, 그리고 엡 4:11, 딤후 4:5에만 나옵니다. 아마도 오늘날 예를 들면 허드슨 테일러, 무디, 스펄전, 빌리 그래함 같은 인물들겠이죠. 우리 모임에도 복음 전도의 특별한 사명을 받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다비 형제님이나 춘천 모임에도 오셨던 쿠리안 형제들이나 허윤욱 형제님 같은 분들이겠죠. 목사와 교사는 아마도 대부분의 지역교회에 있어야 할 은사라고 보여집니다. 로마서 12장이나 고린도전서 12장, 은사에 관한 말씀도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따라서 주님께서 세우시고자 하셨던 교회는 하나의 교회이고,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그렇지만 각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은 어찌보면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따라서 우리 춘천샘물단지길교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어떤 역할이 주어진 지체일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지체로 주님의 몸을 세워가야 할까요? 모두가 사도일 수 없고, 모두가 선지자일 수 없으며, 모두 말씀의 은사나 신유·방언의 은사를 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이어가기 전에 한 가지 질문!
성도 여러분은 십자가를 그릴 때 어떻게 그리십니까? 보통 십자가 성호나 아니면 십자가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순서로 그리시는지 한번 상상하면서 그려보시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위에서 아래로, 그 다음 좌에서 우로 그리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좌에서 우로, 그 다음에 위에서 아래로 그리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어떤 순서가 맞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그냥 본인이 그리고 싶은대로 그리시면 됩니다. 어떤 분들은 수직선을 하나님과의 관계, 수평선을 사람과의 관계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위에서 아래가 우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가지 측면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에 관한 말씀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 사랑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전에 에베소서 4장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에 관한 말씀을 찾아봤는데요, 이번엔 골로새서를 찾아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1:15~18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표현할 때에는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교회는 스스로 판단하고 알아서 행동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몸을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걷거나 뛰거나, 손으로 음식을 먹거나, 반갑다고 악수를 하거나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거나 이 모든 몸의 행동들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입이 알아서 혀와 입술을 움직여 목에서 소리를 내는 건가요? 다리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 우리는 걷거나 뛰나요? 손이 스스로 원해서 움직이게 되나요? 현대 과학은 이 모든 지체들의 움직임은 바로 다름 아닌 머리, 머리 중에서도 뇌에서 모든 지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요즘 핫한 AI(제미나이)에게 물어봤습니다.
| 뇌에서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5단계) 1. 아이디어 및 의미 형성 (전자기획 단계) 주요 영역: 전두엽(Prefrontal Cortex) 및 연합 피질 작용: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의도와 개념을 떠올립니다. 감정, 기억, 주변 환경 정보가 종합되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뼈대가 만들어집니다. 2. 단어 선택 및 문법 구성 (언어 부호화) 주요 영역: 베르니케 영역 (Wernicke's Area) - 좌뇌 측두엽 위치 작용: 뇌 속의 '어휘 사전'을 검색하여 생각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찾고, 어법에 맞게 문장 구조를 배열합니다. 좌뇌 측두엽은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고 조합하는 핵심 센터입니다. 3. 정보 전달 (신경 연결망) 주요 영역: 궁상속 (Arcuate Fasciculus) 작용: 베르니케 영역에서 완성된 언어 정보(단어와 문장 구조)의 발화 계획을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으로 전달하는 신경 섬유 다발 다리 역할을 합니다. 4. 발화 운동 계획 수립 (언어 표현) 주요 영역: 브로카 영역 (Broca's Area) - 좌뇌 전두엽 위치 작용: 전달받은 언어 정보를 실제 입 밖으로 내뱉기 위해 입술, 혀, 성대, 턱 근육을 어떤 순서와 타이밍으로 움직일지 '운동 프로그램'으로 전환합니다. 5. 신체 근육 구동 및 소리 출력 주요 영역: 운동 피질 (Primary Motor Cortex) 및 뇌간/신경 작용: 브로카 영역의 명령을 받아 조음 기관(혀, 입술, 후두, 호흡근)으로 실시간 전기 신호를 보냅니다. 공기가 폐에서 올라오면서 성대를 울리고 입 모양이 바뀌어 소리가 완성됩니다. 실시간 조절 및 모니터링 시스템 말을 하는 도중에도 뇌는 쉬지 않고 정교하게 결과를 점검합니다. 소뇌(Cerebellum)와 기저핵(Basal Ganglia): 근육의 미세한 떨림이나 발음의 타이밍을 실시간으로 균형 있게 조절하여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발음이 나오도록 돕습니다. 청각 피질(Auditory Cortex): 자신이 내는 목소리를 귀로 실시간 피드백 받아 억양, 크기, 발음 오류가 없는지 모니터링하고 즉각 수정합니다. |
이런 면에서 볼 때,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서와 순종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이 바로 질서입니다. 즉,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창조물마다 자기 자리를 지정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기 자리를 벗어나는 것, 즉 불순종이 죄이고, 천사장 루시퍼가 범죄한 것 역시 제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를 탐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하나님께서는 혼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증거한 바 있습니다.
우리 몸의 원리를 살펴볼 때에도 모든 신체, 각각의 세포가 신경을 통해 뇌와 연결되어 활동하듯이 모든 교회의 지체들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움직여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주님과의 교제를 갖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교회는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이나 조직,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명령과 지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져야 합니다. 물론 지금 시대에는 성령님을 통해 이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의 리더인 장로나 교사를 통해서, 또는 말씀 사역자들을 통해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 나, 1:1 관계입니다. 구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일 수 밖에 없고, 신앙생활 역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어쩌면 머리이신 주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12:3~8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각 사람은 주님이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각자 받은 은사를 충실하게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몸의 구조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사람 몸의 신체구조 1. 세포의 수: 약 30조 ~ 37조 개 인간의 세포 수는 측정 방식 및 체격(성인 남성 기준 70kg)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현대 분자생물학 논문에서 제시하는 표준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약 30조 ~ 37조 개) 이 중 적혈구(RBC)가 전체 세포 수의 약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 장내 미생물/세균 세포: 과거에는 미생물이 인체 세포보다 10배 많다고 알려졌으나, 최근 논문(Ron Sender et al., 2016)에 따르면 약 38조 개로, 인간 세포 수와 1:1 비율에 가깝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2. 기관(장기)의 수: 약 78개 의학계에서 통용되는 '기관(Organ)'의 개수는 정의와 구분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의학 표준 기준으로 78개로 분류합니다. - 주요 생명 유지 필수 기관 (5대 생명 기관): 뇌, 심장, 간, 폐, 신장 - 구분 방식에 따른 차이: 뼈나 치아, 피부 등을 개별 단일 기관으로 묶어 세었을 때 약 78개로 산출됩니다. 2017년 장을 지탱하는 '장간막(Mesentery)'이 독립된 해부학적 기관으로 재분류되면서 학계에 따라 79개로 보기도 합니다. 3. 뼈의 수: 성인 기준 206개 뼈의 개수는 연령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 성인: 머리뼈, 척추, 갈비뼈, 팔·다리뼈, 귓속 뼈(이소골 6개) 등을 합친 수치입니다.(손 54개, 발 52개) - 신생아: 약 270 ~ 300개 이상, 출생 시에는 연골 형태의 분리된 뼈가 더 많으나, 성장에 따라 서로 융합(연결)되면서 성인이 되면 206개로 줄어듭니다. |
이번에는 고린도전서 12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4~11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는 같다.
사역은 여러 가지지만 하나님은 같다.
무슨 의미일까요? 은사든, 직분이든, 사역이든, 교회 안에서의 모든 은사적 활동들은 한 성령, 한 주님, 한 하나님으로부터 통제되고 다스림 받아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요? 11절을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그분께서 정해주신 자리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웃 사랑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질서와 순종이 중요합니다만 연합 또한 중요합니다. 연합은 하나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날 밤, 기도하신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 땅에서 하나되는 것을 얼마나 바라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됨에는 하나님과의 연합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는 머리되신 주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해소될 문제입니다. 이제는 성도 간 연합의 문제입니다.
에베소서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서로 연결하여’이라는 단어와 ‘함께 지어져 간다’라는 단어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린도전서 12장 후반부를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12~27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이 말씀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와 너는 다르기 때문에 한 교회가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즉, 고린도전서에서 나왔듯이 나는 바울에게, 나는 바나바에게, 나는 게바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교회사 속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은 늘 있어 왔습니다. 로마카톨릭교회, 동방정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순복음교회, 형제교회, 지방교회, 그 밖의 독립교회, 가정교회, CCC, IVF, UBF, 내비게이토 등 다양한 교회들과 선교회가 존재하지만 모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한, 그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한, 모든 곳은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라는 전제는 ‘그 교회 안에 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있을 때’입니다.
우리들은 거듭난 이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세움을 받습니다. 기독교고전이나 경건서적은 우리들의 영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최근에는 유튜브나 심지어 AI를 통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앞선 믿음의 선배들의 연구 결과와 신앙 경험, 노하우를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단이나 거짓 가르침에 노출될 위험이 있긴 하지만 잘 분별하기만 한다면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와 역할과 외형이 다르다고 해서 주님의 한 몸 된 지체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너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필요없는 존재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다른 것, 서로의 다른 역할은 몸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각 지체에게 부여하신 역할입니다. 그러니 한 지체가 다른 지체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판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모습들입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자기 중심적인 죄인이기 때문에 나와 다르면 틀린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 없다고 판단하길 잘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다면?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그러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로봇입니다. 나와 다른 지체가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습인지 한 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산에 들에 한 가지 나무나 한 가지 꽃만 있다면 아름다울까요? 만약 똑같은 역할에 똑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만 존재한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삭막하고, 또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요? 교회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다른 누군가가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를 위해 다양한 지체에 다양한 모습, 다양한 역할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창조 당시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제 자리를 지정해 주셨던 창조주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우리가 판단하고 왜곡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2:18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바가 참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에클레시아한 자들로서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비유이지만,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몸의 원리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새 계명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군’라고 알아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이상 말씀 교제를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