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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나무는 사람과 닮은 점이 있다. 나무는 씨앗에서 싹이 터서 올라오고 약 5년 동안은 대부분의 나무가 크게 자라지 않는다. 땅 밑에서 뿌리를 키우고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걸린다. 사람도 비슷하다. 사람도 태어나서 5세까지는 인간이 살아가는 기초를 거의 배운다.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고 기본예절을 거의 배운다. 아동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5세까지 일생 동안 살아갈 기초를 거의 배운다고 하며 일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우리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몸에 배어서 일생동안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 것 같다. 나무를 어릴 때 다른 곳으로 옮겨주고 조금 만 보살펴주면 자리를 잡고 잘 자란다. 사람도 어릴 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곧 적응한다. 외국으로 이민을 가도 빨리 적응을 한다. 사람이나 나무를 어른이 되어서 자리를 옮기게 되면 잘 적응하지 못하고 몸살을 앓는 것은 비슷하다. 사람이 나이 들면 가급적 거처를 옮기지 말라 한다. 나이가 많은 나무는 자리를 옮기려면 신중하지 않으면 고사枯死할 수 있다.
1920년경에 인류 역사에 늑대아이가 인도에서 발견되었다. 8세 카멜라와 1세 아멜라이다. 늑대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데리고 왔으나 말도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오래 살지 못하고 둘 다 죽어버렸다. 늑대가 아이를 어떤 경로로 데리고 가서 키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과 교육학자들 그리고 사회학자들은 인간이 어릴 때 환경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나 나무는 어릴 때 주변 환경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이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작가 이양하는 “나무는 덕德이 있고 고독孤獨하지만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意者)요, 고독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다.”고 했다. 그는 불교의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굳이 나무의 수종樹種을 가리지 않으면 어떤 나무라도 좋다고 했다.
삼성그룹을 창설한 이병철 회장은 공장이나 회사를 순시할 때 부근의 나무를 제일 먼저 살펴보았다. 나무가 잘 살지 못하면 사람도 살기 어렵다는 그의 생각이 사원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파트를 건설 할 때도 일정한 면적에 반드시 나무를 심어야 준공검사가 된다. 나무는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며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시혜施惠의 존재이다. 나와 인연이 깊은 세 종류의 나무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려한다.
(1)느티나무
나는 나무를 엄청 좋아한다. 어린 시절 민둥산을 바라보면서 숲이 우거진 산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나의 이름 앞에 푸른숲[靑林]이라고 하나 붙였다. 세월이 지나니 나의 필명筆名이 되었다. 이제는 푸른 산이 되었으니 소원이 이루진거나 다름없다. 2차 대전 후에 조림造林에 성공한 나라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니 자부심이 생긴다. 그뿐인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도 우리나라가 유일 하다니 자랑스럽다. 최근에 UN무역개발회의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자랑스러운 나라다.
나와 인연을 가장 먼저 맺은 나무는 느티나무다.
나의 고향 자그마한 정자에 몇 그루 나무들이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세월이 지나니 모두 없어지고 느티나무만이 지금도 살아서 튼튼하다. 고향의 느티나무는 아이들이 올라가기 딱 좋을 정도로 가지가 벌어져서 밟고 쉽게 올라 갈 수 있었다. 나무가 단단하여 좀 작은 가지도 우리들을 받쳐주었다. 고향을 떠나도 늘 느티나무가 마음에 심어져있었고 여름에 고향에 가면 느티나무 그늘에 잠시 쉬기도 했다.
타지他地에 가더라도 느티나무를 보면 반갑고 정겨웠다. 시골 마을 어귀에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이 상당수가 있다.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이기도하다. 어떤 마을에는 느티나무에 동제洞祭를 지내기도 한다.
나는 초임으로 발령받아 간 시골학교의 건물 바로 뒤에 느티나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속으로 고향의 느티나무처럼 반가워했다. 느티나무는 성질이 급하지 않다. 초봄에 잎을 내지 않는다. 늦봄이 가까워야 잎을 뾰족이 내민다. 나무가 요란하거나 거만하지도 않다. 소박하다. 잎 모양도 작다. 바람이 웬만히 불어도 시끄러운 소릴 내지 않는다. 가을에 단풍이 들어도 책갈피에 넣고 싶을 정도로 예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건이 맞으면 튼튼하게 잘 자라는 나무다. 우리나라에 1.000년이 넘은 나무 60그루 중에 25그루가 느티나무라고 하니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도 받고 친밀감도 주고 있다.
두 번째 학교로 전근을 가니 교문 바로 옆에 한 아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한번 안아보았다. 여름이면 쉬는 시간에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서 고향 생각을 가끔 했다.
세 번째 학교는 울릉중학교였다. 학교 건물 뒤에 점잖은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2층으로 올라가면 느티나무가 잘 보였다. 역시 고향의 느티나무를 보는 것처럼 친숙하고 다정했다. 울릉도를 떠나고 20년 후에 제자들과 만나는 약속을 지키려고 울릉중학교에 들였더니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버티고 있으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사람이 변하지 느티나무는 변하지 않았다.
작가 이양하는 “나무는 덕德이 있고 고독孤獨하지만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意者)요, 고독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다.”고 했다. 그는 불교의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굳이 나무의 수종樹種을 가리지 않으면 어떤 나무라도 좋다고 했다.
웬만한 시골 마을에 수문장처럼 서있는 느티나무는 수령도 길고 탐욕도 없다. 또한 겸손하며 소박한 좋은 나무이고 나의 고향의 나무이다. 고향의 느티나무가 늘 그립다. (2020.12)
(2)소나무
우리나라는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다. 산이 차지한 면적이 평지보다 훨씬 크다. 5-60년대 온 산이 민둥산이 되었을 때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먹고살기 어렵고 연료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산에 있는 나무를 닥치는 대로 베어다가, 밥을 지어 먹고 군불도 때고 목재로 이용했으니 벌거숭이산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땔감이 연탄과 기름으로 전기와 가스로 바꿔지고 산은 자연스럽게 푸르게 되었다. 물론 치산치수治山治水에 힘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지만 연료가 해결 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산림녹화를 해도 무용지물이 되고 헛구호에 그칠 수 있다. 경제력이 늘어나고 여러 가지 여건이 좋아지니 산은 점차 푸르게 변해졌다.
소나무는 육송, 곰솔, 외래종으로 구분된다. 육송은 육지의 내륙에서 사는 나무이고 곰솔은 해송이라고도 부르는 주로 바닷가에 사는 소나무를 말한다. 흔히 야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리기다소나무는 북미 원산의 한 종류이다. 육송은 적송 금강송 반송 처진소나무 등 색깔이나 자라는 형태를 가지고 부르지만 통틀어 소나무라 부른다. 소나무가 항상 푸르러 보이는 이유는 단지 잎이 지는 시기가 낙엽활엽수처럼 1년에 한번 씩 지는 것이 아니라 2년에 한번 씩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새잎은 1년에 한 번씩 나게 되므로 서로 교대가 되어 항상 푸르러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에 아직 까지는 가장 많은 나무가 소나무다. 또한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나무도 소나무다. 나무 중에 벼슬을 한 나무도 소나무다. 속리산 입구에 우뚝 서있는 정2품 소나무가 있다. 세조가 지나갈 때 가지를 들어서 왕의 행차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다. 경북예천의 석송령石松靈은 수령 600년의 천년기념물 제294호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세금 내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리나라 애국가2절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소나무의 기상을 애국가에 넣을 정도로 친숙하고 사랑하는 나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나무로서 온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우리고향 산에도 대부분 소나무가 가득하다. 특히 앞산에 큰 소나무는 우리 마을 개구쟁이들과 인연이 깊었다. 추석날 아침에 동내아이들이 골목에 모여서 집집마다 햇벼짚단을 갖고 온다. 마을 청년들이 그네 줄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줄 당기기를 하고 그네를 앞산 큰 소나무에 메어주었다. 며칠 동안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동네 처녀들은 밤에 그네를 타러 갔다. 아이들은 줄을 서서 그네를 타고 며칠 동안 아이들의 멋진 놀이터가 되었다. 지금은 고향에 가면 그 소나무는 없어져 버렸지만 그때의 즐거웠던 추억은 그대로 남아있다.
소나무는 불에 약하다. 송진松津이 거의 기름과 같다고 보아야한다. 강원도 낙산사 부근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소나무 수천그루가 넘게 소실燒失되었다. 애석한 일이다. 소나무가 목재로 사용 되려면 수 십 년의 시간이 흘러야 가능하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 핀다. 남매끼리의 수정은 자손의 형질을 점점 나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소나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선 암꽃은 꼭대기 근처에, 수꽃은 아래 나뭇가지에 피도록 설계했다. 풍매화인 소나무 꽃가루가 바람에 날아가 위로 올라갈 일은 거의 없으니 남매 수정이 안 되도록 일차적인 안전조치는 한 셈이다. 회오리바람 등 공기의 상하 이동도 드물게 있다는 사실을 배려하여 암수 꽃이 피는 시기를 약 일주일 정도 차이를 두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남매 수정 불가라는 원칙만 고수하다 엄혹嚴酷한 자연계에서 자칫 자손이 아예 생기지 못하는 불행이 생길까봐 5퍼센트 전후는 수꽃이 위로 가고 암꽃이 아래로 내려와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이 정도면 소나무가 영리하다고 해도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 같다.
소나무의 꽃가루는 송황(松黃)·송화(松花) 등으로 불리는데 밀과(蜜果)의 재료가 되었고, 기(氣)를 보호해 주는 약성을 갖고 있다. 솔잎은 송모(松毛)라고도 하며 송죽(松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소나무는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는데, 신라 진흥왕 때 솔거(率居)의 황룡사 「노송도(老松圖)」는 신화(神畫)로까지 알려졌다. 김홍도(金弘道)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이인문(李寅文)의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는 소나무를 소재로 한 유명한 그림이다.
이처럼 나무 중에서 소나무처럼 우리 생활에 물질적·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것도 없으므로, 우리 민족은 소나무 문화권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왕조는 소나무 왕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소나무를 숭상했다. 관청이나 양반의 집을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무였으며, 배를 만들거나 임금의 관재棺材에도 꼭 사용되었다. 이를 위하여 전국에 소나무가 잘 자라는 2백여 곳에 봉산(封山)을 설치하여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엄격한 소나무 보호 정책을 썼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숲은 점점 더 황폐화되어 버렸다.
소나무를 괴롭히는 해충은 첫째 솔잎혹파리다. 솔잎 밑 부분의 연약하고 점액이 풍부한 조직의 수액을 빨아 먹어 피해를 입힌다. 1930년 서울 창덕궁과 전라남도 목포시 무안에서 시작됐고, 아직도 피해를 주고 있다.둘째는 송충이다. 솔나방의 애벌레로 소나무 잎을 갉아 먹어 피해를 준다. 7~8월에 나타난다. 1960년대에 큰 피해를 입혔다.셋째는 재선충이다. 실처럼 가늘고 긴 선충이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그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 현재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재선충 병으로 소나무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한 쌍의 재선충이 20일 만에 20만 마리까지 늘어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 소나무 중에 가장 사랑받는 소나무는 적송이다. 붉은 색을 띄는 적송은 일명 「춘양목」,「적송」,「강송」,「황장목」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춘양목이란 태백산일대(봉화.울진.삼척 등)에서 생산된 우량 소나무 원목이 춘양역을 통하여 반출됨으로써 전국 목재상들이 춘양에 가면 질 좋은 나무를 구할 수 있다는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백두산 여행을 가면 도로가에 즐비한 붉은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자랑하는 백두산 미인송美人松이다. 백두산 동북부 지역에서 자라며 이름이 말해 주듯 곧은 줄기와 우산 모양의 수관이 아름다워 관상가치가 매우 높다.
부산광역시에는 금정구를 비롯한 6개구에서 구목區木으로 지정되어있으며 2011년 현재 27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다. 소나무는 이렇게 우리 민족과 친숙하며 사랑받는 나무이다. 우리나라 산야에 푸르게 자라는 모든 소나무와 아름다움을 지닌 보호수 소나무가 튼튼하게 우리 땅을 지켜주고 사랑 받기를 기원한다.
(3)향나무
한 때는 정원수로 각광을 받던 나무가 향나무다. 큰 건물의 정원에는 향나무가 거의 심어지고 특히 역사가 오래된 학교에는 정면에 향나무가 심어진 학교가 허다하다. 향나무는 잎의 모양, 줄기의 모양, 열매의 모양 등을 기준으로 구별한다. 여러 종류가 있다. 천천히 자라며 사철 푸르고 각종 나무 병에도 강하여 정원수로는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근래에 향나무는 인기를 잃어버렸다. 가까운 과일 나무에 각종 병충해를 옮기는 숙주宿主역할을 하며 일본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속설도 한 몫 한 것 같다.
우리지역 달성공원에는 순종황제가 심었다는 가이즈카 향나무가 있다. 일제 강점기 직전인 1909년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한 그루 순종 임금이 다른 한 그루를 심은 거라 한다. 달성공원 입구 좌우측에는 가이즈카 향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일제의 잔재라고 철거해야 된다는 사람들도 있고 아픈 역사를 보존해야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향나무는 수령이 길고 향기가 좋아서 제사에 향료로 쓰이기도 하고 가구나 장식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향나무 중에 가장 수령이 오래된 것은 울릉도 도동항구의 절벽 위에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경상북도보호수다. 울릉도를 처음 찾는 관광객들은 이 향나무를 제일먼저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 모든 나무 중에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다. 하지만 가까이 보기는 어렵다.
산꼭대기의 수령 2.500년-3.000년쯤 된 보호수를 가까이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울릉도에는 옛날에는 향나무로 군불을 떼고 밥을 지어먹고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울릉도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에는 죽은 향나무들도 멀리서 많이 볼 수 있다.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는 천년기념물 보호지역이다.
내가 울릉도에 근무할 때 3년차에 총각 선생님이 한분 발령받아왔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울릉도로 오게 되었다. 행운아다. 도서벽지근무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데 제대복귀로 중간발령으로 왔다. 관운官運이 좋은 사람이다. 총각선생님은 인성이 좋았다. 선배 선생님들에게 예의가 바르고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잘 해서 학부형들에게 신임을 얻었다. 하루는 나에게 향나무 탐방을 가자고 제의했다. 절벽의 향나무를 가까이 가보자는 것이다. 관광코스가 아니다. 등산로가 없었으며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각개전투를 하듯이 기기도하고 절벽에 붙어서 가기도 해야 된다고 현지인들이 일러주었다. 토요일 오후 둘은 복장을 단단히 하고 신발을 졸라매고 산행을 하였다. 생각보다 길은 험하지 않았다. 두 시간이 넘게 조심조심 걷고 기고 바위 길을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천연기념물 향나무 밑에 도착했다. 나무는 절벽 밑에서 보기보다 엄청 크고 인물이 수려했다. 향나무에서 동해바다가 훤하게 넓게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풍수지리로 봐도 명당인 것 같다. 감탄 할 정도로 향나무가 웅장하면서도 정감이 갔다. 2.500년을 한자리에 버텨온 나무에게 잠시 경의를 표했다. 안아 보았다. 향긋한 향나무 향기가 온몸에 베여오는 것 같았다. 둘래가 2미터가 넘으니 푹 안기에는 어림도 없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본 나무 중에 가장 오래되었고 인물도 최고였다. 울릉도 진짜 주인을 만난 것 같았다. 이 향나무가 울릉도의 도주島主다. 무려 2.500년이나 긴 세월을 울릉도를 지켜왔으니 진정한 섬 주인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사람들은 수 도 없이 오고갔지만 이 향나무는 한자리에 굳건하게 울릉도를 지켜왔다.
이듬해 태풍이 와서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서 나무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안타까워했다. 나는 총각선생님과 다시 방문해보기로 했다. 역시 토요일 오후 둘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방문길에 올랐다. 한번 가본 길이라서 처음보다 쉬웠다. 큰 가지가 부러진 향나무는 부상을 당한 상이용사처럼 애석했다. 그래도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밑에서 죽지 말고 수천 년 수만 년 살아있기를 기도하면서 돌아왔다.
근래에는 철조망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고 밧줄로 묶어서 넘어지지 않도록 처방을 해두었다고 한다. 이제 다시 가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의 뇌리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천년기념물인 우리나라 최고의 수령인 울릉도 도주 향나무가 오래오래 잘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봉이 되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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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 이야기는 전 번에 상록수필 7호에 기고했지만 시리즈로 좀 더 쓰게 되었습니다. 느티나무 소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동백나무 다섯 종류의 나무가 인연이 있어 거의 완성을 했습니다. 나무에 대해서 연작을 쓰신 분에게 글을 좀 보아 달라고 주문을 해두었습니다. 봐 줄런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정리되고 발표한 나무 세 종류는 여러 회원들에게 코로나로 집에만 계시는 분은 글이 좀 길어도 읽을 수 있지않을 까 생각하면서 올려봅니다.
교수님 나무박사가 다 되셨습니다. 나무에 대한 모르던 내용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