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환씨는“임종실의 환자를 보면서 저기에 누워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한다”고 말했다. /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대구의료원의 호스피스 병동을 책임지는 김여환(47) 의사가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라는 책을 냈다. 더 늦기 전에 뭘 하라는 주문인가. 5년간 이 병동에 근무하면서 말기 암 환자 800명에게 '사망 판정'을 내렸다는 그녀는 "우리가 한 번은 가야 할 죽음을 더 늦기 전에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섭씨 38도의 대구로 내려갔다. 그녀는 죽음을 말하기에는 너무 밝은 것 같았다.
―굳이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 필요가 있나. 죽을 때가 오면 죽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내 삶도 그렇게 바뀌었다. 죽음을 배우면 죽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달라진다."
―죽음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건가?
"죽음은 혼자 떠나는 것이다. 모든 걸 남겨두고 간다. 우리 삶은 갖고 가지 못하는 것들에 너무 집착한다. 마지막을 생각하면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훨씬 현명해진다. 중세 수도원 수사들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서로 인사했다. 자신의 마지막과 소통한 것이다."
―죽음을 늘 접하면서 죽음의 공포도 극복했나?
"임종실에 누운 환자를 보면서 '언젠가 저렇게 누워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때가 있다. 한 번도 안 가본 죽음에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죽어갈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남의 죽음을 통해 배우게 된다."
―금방 죽은 이는 생전의 모습과 어떻게 다른가?
"감은 눈, 피가 안 돌아 약간 노래진 혈색이 다르다. 하지만 죽음 뒤에는 평화롭다."
―내가 만나본 죽음 직전의 암환자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피부는 쭈글쭈글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었다.
"겉모습은 그렇게 변한다. 환자는 말라가도 그 속의 암 덩어리는 기생충처럼 계속 자라니까. 외양이 추해도 내면의 평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암환자는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고 들었다.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1964년 쓴 '죽음의 춤'이라는 책은 암에 걸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그 어머니에 관한 내용이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은 잘 수용해도 폭력(暴力)'이라고 했다."
―우리는 대부분 암으로 죽는다. 정말 평화로운 죽음이란 존재할까?
"그때는 환자에게 쓸 수 있는 모르핀의 양이 한정돼 있었다. 통증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모르핀으로 통증을 조절해 평화로운 죽음이 거의 가능해졌다."
―죽음에 이르는 그 통증은 어느 정도인가?
"혈압 수치는 혈압계, 혈당은 혈당계로 잴 수 있다. 하지만 통증은 주관적인 감정에 해당된다. 환자들에게 1~10이 적힌 통증 단계표로 자신의 통증을 표시해보라고 한다. 통증 4는 치통, 통증 7은 산통(産痛)이다. 암의 고통은 산통 이상이다. 여기 호스피스에 들어오는 조건에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았느냐보다 통증이 얼마나 심하느냐를 우선으로 한다. 통증이 7 이상이면 무조건 입원해야 한다. 여기서 모르핀으로 통증을 조절해주는 것이다."
―모르핀에 계속 의존할 경우 중독에 의해 점점 양을 늘려야 하고, 마침내는 내성(耐性)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모르핀은 하느님이 주신 마지막 선물이다. 모르핀을 쓰면 중독이 되지 않을까, 장차 더 아플 때면 쓸 약이 없지 않을까 그렇게들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모르핀을 쓰는 양은 아프리카 수준이다. 이 때문에 말기암 환자들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모르핀은 통증에 대한 내성이 없다.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다. 일반 사람에게는 '마약'이지만, 환자들에게는 중독이 거의 안 된다. "
―아프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인격이나 수양 정도가 드러나지 않나?
"레지던트 시절 일반외과를 도는데 담낭암에 걸린 한 목사님이 입원해 있었다. 담즙을 빼내는 관을 주렁주렁 달고 살았다. 그전까지 점잖게 살아왔을 이분이 통증으로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문병 온 신도들이 이 광경을 보고는 복도에서 수군거렸다. 그분이 그전까지 살아온 삶이 엉터리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다만 통증에 인격의 황폐화가 온 것이다. 이때의 사건으로 호스피스 의사를 지원하게 됐다."
그녀는 경북대 의대를 다니던 중 결혼했다. 졸업 후 13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다가 서른여덟 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마흔네 살에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정신과 육신이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지 않은가?
"여기 환자들은 저마다 소설책 한 권의 사연이 있다. 한 할머니는 암으로 얼굴 아랫부분이 몽땅 내려앉고 치아와 혀, 뼈가 통째로 드러났다. 내가 '자살하고 싶지 않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남은 가족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차마 못 그런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남은 자식을 배려해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것이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