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즐겨 그리던 발달 장애 청년의
첫 그림책
함박눈이 펑펑 온 세상을 뒤덮어 버릴 것처럼 내리는
겨울 날, 점점이 흩날리는 눈발에도 파란 하늘에는 솜털처럼 포근포근한 구름이 이불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하늘이 비쳐 더 새파란 강물 속에는 큼직한 물고기들이 한 곳을 향해 묵묵히 유영하고 있습니다.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이 풍경 속에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하철이 보입니다.
“얼마나 더 가야 남극에 닿을까요?
소복소복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꾸벅꾸벅 소리 없이 눈이 감깁니다.”
이 그림을 들여다보노라면 그림을 그린 작가는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힘들지만 묵묵히 살아온 세월이 느껴집니다. 쏟아지는 눈 속을 뚫고 자신이 가고 싶었던 남극을 향해 나아가는 지하철이 작가 자신의 모습만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왜 그리도 많이 지하철 그림을 그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김성찬
작가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고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그는 자폐성 발달 장애를 가졌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나선 그림책 여행
매주 화요일 김성찬 작가는 그림을 그립니다. 주로 지하철을 그리는데,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도화지가 작가의
세상입니다. 김성찬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내내 권은정 선생님(미술치료
지도)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함께 해왔습니다. 수업이 이어지면서
작가만의 특별한 그림들을 ‘발달 장애’라는 틀에 가두어 놓기에는
아쉬움이 남았지요. 그래서 글을 쓰는 친구 김경화 작가에게 그림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성찬 씨가 그린 지하철과 남극 풍경은 단박에 김경화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자꾸만 말을 거는 것 같아,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글로 옮기는 작업을 기꺼이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김성찬 작가와의 특별한 작업은 느리고 힘들었지만, 단단히 진행되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꽤 오랜 시간 공들여 이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 속 힘찬 지하철처럼 세상 속에 당당히 이 그림책을 내놓았습니다.
| 작가 소개
김성찬 그림
그림에
있어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소년기를 거쳐 좀 특별한 어른이 된 발당장애를 가진 청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컴퓨터를 잘 다루어요. 서울 번동 초등학교, 정인학교
중등부, 정인학교 고등부를 졸업하고 현재 강북장애인 복지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2016년 한국 장애인 부모회 고등부 은상, 2016년 전국 장애
청소년 미술대전 최우수상, 2017년 서울발달장애인 사생대회 일반부 금상, 2017년 전국 장애 청소년 미술대전 대상, 2018년 JW ART AWARDS ‘꿈을 그리다’ 압선 등을 수상했습니다.
김경화 글
성균관대학교
아동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하고 <배달>, <그해 아폴로 1호는 달에 갔을까?> 등 몇 편의 단편 영화를 찍고 《햇빛과 바람이 정겨운 집, 우리
한옥》, 《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 《왕자가 태어나던 날 궁궐 사람들은 무얼 했을까》, 《달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왕세자의 입학식》, 《하멜 아저씨 따라 조선 구경하기》 등 다양한 어린이 책을 썼어요. 《레디, 액션! 우리 같이 영화 찍자》로 제1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기획 부문 대상을 받았어요. 지금도 꾸준히 어린이 책을 기획,
집필하고 있습니다.
권은정 기획
홍익대학교 회화과,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미술 교사,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미술치료프로그램 담당으로 활동했어요.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아이소리 미술프로그램 연재,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장애청소년공동연구 등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어린이는 물론 성인, 장애
청소년들을 아우르는 통합미술작업실, 해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수다쟁이 미술선생님의 점, 선, 면 놀이》(공저)가 있고 《브뢰겔”익살과
풍자로 가득한 풍속화》, 《세잔: 사과에서 출발한 새로운
미술》, 《신사임당: 그림에 담은 자연 친구들》의 미술 놀이
부분을
구성하고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