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붓이 사고를 쳤다'고 말한다면 십중팔구 사람들은 또 무슨 필화사건이냐 할는지 모른다. 다들 알겠지만 굴곡 많았던 우리 근대 정치사에는 그만큼 굵직굵직한 필화사건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신문사설이나 정치평론이 아닌 어느 몽매한 작사가가 통치자까지 끌어들여 북조선을 찬양하느라 쓴 노랫말로 인해 붓이 사고를 쳤으니 사태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백성들의 분노 또한 들끓고 있는 것이다. ‘…칠십년 세월/ 그까짓 게 무슨 대수요/ 함께 산 건 오천년인데/ 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 우린 함께 살아야 한다/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 한 줄 한 줄 적어나가세…// 한라산 구름을 화폭 삼아/ 한 점 한 점 찍어나가세/ 여보게 친구여/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우선 6.25동란에서 너무나도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나 같은 사람도 노랫말을 접하니 피가 거꾸로 끓어오르는 것을 억제하기 힘들다. 동란 2년 전 북에서 태어난 문재인은 간첩 아버지 손에 이끌려 비밀리에 남조선에 잠입하여 청와대까지 점령했으니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싶다. 노랫말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를 이른다. 그것을 먹물 삼아 역사를 다시 쓰자고 한다면 그 역사는 어떤 역사일까. 북조선 노동당 정권이 붕괴되지 않는 한 남북이 하나같이 ‘다 잊어버리자, 용서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뭘 잊어버리고 뭘 용서하자는 말이냐. 우리가 북조선에 끼친 피해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북조선으로부터 당한 피해다.
이걸 다 잊어버리고 용서하자니 이런 얼빠진 자가 또 있을까 싶다. 결국 역사를 백두산 시각으로 허위날조하자는 것인데 백두산에서 김정일이 태어났고 백두산에서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투쟁을 했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바꾸자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작사자는 2018년 9월 문재인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오른 장면을 보고 아주 감격했었고 평양에서 그가 한 연설을 듣고 그 내용 중 하나를 가사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상 문재인이 공동 작사가다, 분량으로 봐서 10분의 1은 그가 작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결국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이 이제는 비핵화 사기극으로 드러난 2018년 가짜 평화 쇼에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더욱 끔찍스러운 것은 작사자가 감동받았다는 그 연설은 바로 ‘남쪽대통령’이란 연설이다. 당시 문재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북한을 방문해 매우 기쁘다’고 얘기하지 못하고 ‘남쪽대통령 ’이라고 자신을 낮추었다. 아들 뻘 되는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이라고 깍듯이 부르며 연설 전반에 걸쳐 김정은을 마치 ‘민족의 지도자’인양 추켜세웠다. 이 연설에서 작사자의 가슴을 쳤다는 대목은 과연 어떤 것이며 그는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대가로 권력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알 수가 없다. 망국 세력들의 마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으니 그 진실이 드러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기껏해야 A4용지를 읽었을 문재인의 쇼를 살펴보자.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천 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라는 대목이다. 이 말을 듣고 감동해서 노래를 작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먼저 5천 년을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는데 왜 헤어지게 되었나. 이 분단의 주범은 김일성과 소련 스탈린이다.
6.25에서 기적적으로 통일될 뻔 했었다. 그러나 북진통일을 앞두고 1950년 10월 국군 6사단은 이미 압록강에 도착했었다. 강물을 떠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려 했었다. 그 순간 수 십 만의 중공군이 불법 개입해 우리의 북진통일을 막았다. 이후 다시 통일될 뻔하다 다시 분단됐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가. 모두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 때문이었다. 분단 이후 북조선 노동당 정권은 1.21사태를 비롯하여 박정희 대통령도 여러 번 암살하려 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는 부비트랩을 설치해 17명의 장차관을 죽였다. 1983년 10월 9일의 아웅산 테러다. 그 4년 뒤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중동 근로자를 싣고 오던 비행기를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시켜 115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이 노래는 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고 한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천안함에서 전사한 순국용사들이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작사자는 김정은을 용서하고 김정은과 함께 살 용의라도 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평양 쇼 이후 북조선이 뭐가 달라졌는지 말해보라. 북한이 핵을 포기했나. 북한으로 떠내려간 해수부 공무원을 구조하기는커녕 바다에 띄어놓고 총살시켰다. 우리가 만들어 준 연락사무소까지 폭파시켰다. 사람이 너무 순진무구해서 허위로 가장된 연설에 현혹되었다면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전부 거짓말이어서 노래를 취소한다고 그는 선언했어야 한다.
서울 인사동 골목 어귀엔 초대형 붓 조형물이 서있다. 붓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비현실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어느 유명관광지보다 내외국인이 많이 찾던 인사동이지만 붓에 대해서 감탄사를 늘어놓거나 그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화랑을 끼고 있는 인사동 골목도 알리면서 노전의 그림쟁이들도 격려하기 위해 세운 것 같았다. 난 인사동 골목을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이 붓에 대해 얼마나 애착을 보이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탐방객들은 무심히 지나쳤고 나 혼자만 짝사랑하듯 앵글을 달리해서 조형물을 카메라에 담기 일쑤였다.
인사동을 홍보하는 용도로 들머리에 설치한 붓이라면 그 옆에 추사체나 한석봉체라도 보여주면서 관광객들이 직접 붓글씨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면 어땠을까 싶다. 조선의 서예가 한석봉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이다. 한석봉 어머니는 떡장수로 아들 글씨 공부를 10년간 시키는데 출가하여 공부하던 석봉은 3년 만에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모친은 호롱불을 끄고 자신은 떡을 썰고 석봉은 글씨를 쓰게 했고 불을 켜보니 모친의 떡은 보기 좋게 썰어져 있었으나 석봉의 글씨는 비뚤비뚤 엉망이었다. 모친은 석봉을 야단쳐서 다시 산으로 보냈고 석봉은 남은 7년을 채워 말 그대로 10년 공부를 해서 조선의 명필이 되었던 것이다.
광릉수목원 입구에도 붓 조형물이 서있다. ‘세상을 녹색으로’ 바꾸자는 구호를 새겨 넣어 산림청이 세웠고 덩치는 왜소한 편이지만 높이는 인사동 붓만큼 된다. 인사동이 글씨를 쓰는 붓이라면 수목원은 채색용 붓인 것이다. 이처럼 붓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건축물이나 공산품에 색칠을 할 때도 두루 쓰인다. 붓글씨는 한국 정치에도 등장한 적이 있었다. 세계 최빈국 코리아를 10위권 경제대국으로 키운 대통령은 자신의 독특한 글씨체를 그의 시대에 들어선 현충사 충렬사 등의 현판과 조형물에 새겼고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의 글씨체는 친숙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문민 대통령을 자처했던 어느 후임자도 민주화 투쟁을 한답시고 단식을 하거나 붓을 들고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글씨를 자주 썼는데 순박한 백성들은 이러한 그를 믿었고 또 열광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나라를 말아먹는 한보사태로 외환위기를 불러오는 바람에 그가 쓴 글자는 결국 대도무문大盜無門이 되어 백성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들추긴 항상 조심스럽고 민망한 노릇이지만 그가 역대 대통령 중 꼴찌 평가를 면하지 못한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붓 노래가 안겨준 충격 덕분에 책장 속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어있던 붓을 끄집어냈다. 젊은 날 퇴직한 직장 선배로부터 ‘전력보국電力報國’이란 서예액자를 선물 받은 후 붓글씨를 배우고 싶어 구입한 서예도구세트였다. 걸출한 최고경영자 덕분에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부산 원도심에서 서면으로 사무실을 새로 지어 옮길 수 있었고 우리 부서는 독립된 방이어서 액자는 사무실을 돋보이게 했었다. 그때 그 액자에 들었던 농산農山이란 선배의 아호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을 관통한 때문인지 난 그동안 이면지를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었는데 붓을 꺼내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린 것 같아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