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전반 - 어린 수비진을 잘 공략한 티키타카, 그리고 RVP의 클래스 ]
스페인의 선발라인업은 모두의 예상대로였습니다. 귀화시킨 디에고 코스타를 최전방에 세우고 그들이 자랑하는 미드필더라인을 굳건히 배치한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네덜란드는 준비한 맞춤 전술 3-4-3(실제는 3-4-1-2에 가까웠음)을 들고나왔는데 주목할 점은 스네이더가 미드필더 라인에서 움직인다는 점과 로벤과 반 페르시가 특별한 위치없이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점, 그리고 역시 젊고 국제무대 경험이 적은 수비라인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었습니다.
선발라인업은 예상대로였을지 몰라도 경기 전개 방식은 예전과 달랐습니다. 선발 출장한 디에고 코스타를 활용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스페인은, 평소와 달리 경기 초반부터 롱패스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며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그와 동시에 백전노장 챠비와 알론소가 조율하는 스페인 특유의 티키타카가 네덜란드를 서서히 몰아붙였고, 공이 끊길시엔 높은 위치에서의 빠른 수비 전환으로 젊은 네덜란드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반면 네덜란드는 노련한 스페인 선수들에게서 경기 주도권을 내준대다가 시도때도 없이 수비 뒷공간을 향해 로빙패스가 날아오면서 쉽사리 본인들의 경기를 펼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선제골 - 27분 - 로빙패스를 받은 디에고 코스타가 박스안에서 패널티킥을 그야말로 '얻어냄', 사비 알론소의 PK 득점
좋은 흐름에 달라진 전술을 그대로 골로 만들어낸 스페인은 지속적으로 네덜란드의 젊은 수비진을 압박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두고두고 아쉬울 다비드 실바의 1대1 찬스를 만들어내는 등 경기력, 호르디 알바의 좌측면을 비롯한 다양한 공격 루트, 전방 압박, 후방 수비까지 단점을 찾기 힘든 경기력을 전반 내내 보여줍니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전방의 디에고 코스타와 다비드 실바의 호흡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는 점인데 어쨌든 골을 넣었고 찬스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동점골 - 44분 - 왼쪽 측면의 데릴 블린트가 먼거리에서 로빙 패스를 시도했고, 수비 뒤로 파고든 주장 로빈 반 페르시의 우아하고 환상적인 다이빙 헤딩 골
네덜란드에는 반 페르시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완벽한 경기운영으로 마무리 될듯했던 경기를 데릴 블린트와 반 페르시가 환상적인 골을 합작하며 전반을 원점으로 마치게 됩니다. 전반내내 혼쭐이 났던 네덜란드의 젊은 선수들에겐 단비같은 골이었고, 결과적으론 경기를 뜨겁게 달구는 도화선이 된 골이었습니다.
[ 경기 후반 - 노쇠한 스페인에게 폭격을 가하는 젊은 네덜란드 ]
1골씩 주고 받고 경기는 원점이 되었지만, 양팀의 분위기는 경기시작과 달랐습니다. 자신감과 여유를 되찾은 젊은 네덜란드는 본격적으로 스페인의 약점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다비드 실바가 자리를 비워 공간이 생긴 데릴 블린트의 왼쪽이 공략 포인트였습니다.
역전골 - 53분 - 데릴 블린트는 자신에게 온 공을 논스톱으로 수비사이로 투입했고 박스안의 로벤이 전광석화같은 움직임으로 볼을 따내 침착하게 마무리 하며 역전에 성공함
추가골 - 64분 - 역시 공략포인트 스페인의 오른쪽 측면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네덜란드. 스네이더의 날카로운 프리킥을 수비수 스테판 데 브리가 헤딩골로 연결하며 점수차를 벌립니다.
전반 막판부터 문제를 보였던 스페인 중원의 기동력은 후반들어 활력넘치는 네덜란드 미드필더들의 놀이터가 되고 맙니다. 특히 챠비와 사비 알론소부스케츠의 중원은 수비에서는 물론이고, 공격에서도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또한 디에고 코스타를 향한 로빙패스도 론 블라르를 위시한 네덜란드 수비수들에게 읽히며 위협을 주지 못했으며, 다비드 실바는 끝끝내 디에고 코스타와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이때부터 네덜란드의 파상 공세가 시작됩니다. 전방의 발빠른 로벤과 힘과 테크닉을 겸비한 반 페르시, 좌우 측면의 블린트와 얀마트, 중원의 데 구즈만과 교체투입된 바이날둠, 렌스 등은 힘이 부족한데다 느려지기까지 한 스페인의 선수들에게서 지속적으로 공을 빼앗고 슈팅을 시도하며 스페인과 주장 카시야스에게 절망을 선사합니다.
4번째골 - 72분 - 카시야스가 트래핑 실수한 것을 반 페르시가 끝까지 쫓아가 뺏어내며 팀의 4번째, 자신의 대회 2번째 골을 작렬
5번째골 - 80분 - 자기진영에서 스페인의 공격을 막아낸 후 스네이더가 스루패스를 넣어줌, 로벤이 센터서클 이전 부터 질주를 시작해 라모스를 스피드로 제치는 등 70m 가량을 돌파 후 카시야스를 3번 넘어뜨리고 득점에 성공
【 네덜란드의 두 베테랑 공격수 로벤과 반페르시의 활약에 힘입어 첫경기 대승을 거둔 네덜란드 】
《사진 = FOOTBALLIST》
[ 경 기 종 료 ]
많은 팬들이 기대한 소문난 잔치였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으로서는 악몽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경기 중 전술 실패는 물론, 그동안 우려되왔던 스페인의 모든 문제점이 한꺼번에 쏟아진 경기였습니다.
새로 합류한 디에고 코스타와 기존 선수들의 부조화
(다비드 실바가 디에고 코스타와 함께 움직이며 벌어진 오른쪽 측면은 다음 경기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부분)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은 백업 공격수들
노쇠화로 압박은 물론 높은 레벨의 경기에선 기존의 경기 운영도 하기 힘들어진 중앙 미드필더
힘 싸움에서 밀릴수밖에 없는 미드필더진
주장 카시야스의 떨어져가는 집중력 등
월드컵 연속 우승을 노리는 스페인으로서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할지 델 보스케 감독의 고민이 한없이 깊어질 경기였습니다. 다음 경기가 역시 에너지 넘치고 선수단 전체가 빠른 칠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희생양이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이 될 가능성이 생겨버린 경기였습니다. 스페인도 오늘의 상대팀 네덜란드를 보며 리빌딩의 시점을 생각해봐야할 시기가 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사실이 참혹한 결과로까지 증명이 되버린 날이었습니다.
반면 현재 리빌딩을 하고있는 네덜란드는 초반 실점을 치더라도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른 실점을 잘 극복해냈고, 어린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스페인을 공략했으며 비록 조별 예선전이지만 완성되지 않은 팀으로 지난 월드컵 결승전의 설욕을 너무나 완벽하게 해냈다는 점. '10점 만점의 1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빛난 데릴 블린트나 얀마트
디에고 코스타와 스페인 공격진을 철저히 봉쇄한 수비수 마르틴스 인디
훌륭한 수비와 더불어 결정적인 추가골을 집어넣은 스테판 데 브리
결정적인 선방을 하고 정확한 패스를 공급한 키퍼 실리센
그리고 월드컵 종료 후 맨유 감독으로 부임하게 될 '명장' 반 할 감독까지
(이미 명장인 감독을 제외하고) 월드컵이 왜 스타탄생의 장 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또 앞으로 더 보여줄 수 있는 팀이 바로 젊은 네덜란드입니다. 다음 경기 호주전을 잘 치룬다면 마지막 껄끄러운 상대 칠레를 만나기 전에 16강에 진출할수 있으며, 16강 이상의 성적을 올린다면 반 할 감독과 네덜란드는 리빌딩과 성적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소중한 대회가 될 가능성이 생겼고, 그 가능성을 오늘 강적 스페인을 대파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네덜란드입니다. 앞으로 네덜란드를 꼭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 반 페르시와 반 할의 조합을 맨유 이전에 미리 만나볼 수 있는 브라질 월드컵 】
《사진 = 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