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을 찾습니다
정영선
불혹이 고개를 넘어가자
처음으로 열었던 원촌초등학교 15회 동창회
코흘리개 개구쟁이였던
광근이 연래 대수 봉호 대신
그들의 아버지가 뱃살처럼 부푼 허세를 허리에 감고 왔다
여리여리 풀꽃 같았던
점숙이 은숙이 순옥이 정자도 보이지 않고
펑퍼짐한 그녀들의 어머니가 수다를 품고 왔다
그 후,
20년이 지나고 김천수 아들 결혼식 날
무슨 일인지,
식장에 친구들 얼굴은 안 보이고
늙수그레한 할배 할매들만 하객으로 왔다
동열이 현식이 민호 정갑이 봉기 대신
그들을 꼭 닮은 할아버지가 대신 왔다
정숙이 명순이 순덕이 복자 순자도
그녀들의 할머니를 하객으로 보냈다
아무리 찾아봐도
풋풋했던 내 어린 친구들은 온데간데없다
잠이 내 몸을 나갔다
정영선
수십 년 내게 찰싹 달라붙어
머리만 기대도 달려오던 잠이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다
날망 밭에는 고구마 심고
원속골 밭에는 작년처럼 고추와 마늘을
세중 모퉁이 밭에는 메주콩이나 심어보자고
새벽마다
농사 계획표를 짜느라 도란거리던 부모님처럼
나는 농사꾼도 아니고
딱히 내년 농사지을 일도 없어
온몸을 뒤척거리는 새벽
그때처럼
건넛마을 양악 교회에서
어둠을 가르고 건너오던 종소리도
집 모퉁이 닭장에서
새벽을 흔들던 수탉 울음도 없어서 더 서러운 밤
나는 대도시 닭장 같은 집에 갇혀
떠난 잠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불교문예』 2024년 여름호
정영선 시인
전북 장수출생,
2016년『불교문예』등단,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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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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