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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행] 만경강 비비정.......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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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만경강 비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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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부터 어제 함께 수고 했던 용수 칭구 와 헤어지고 다른 칭구인 도로공사에 다니는 수철이
칭구 와 일정을 잡았다. 참으로 수고하고 또한 고마운 칭구일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내려온 칭구를 위
해 기꺼이 하루종일 시간을 내어 함께 해준 나의 소중한 칭구에게 먼저 고맙다는 말을 이 온라인을 통
해서 다시한번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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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칭구들에게 아름다운 친구, 소중한 우정(友情)이길 바래본다. 가끔 이성간에는 사랑이란 말
을 하지만 그러나 사내들끼리 사랑이란 단어를 쓰기란 그리 쉬운말을 아니지만. 암튼 사랑하는 나의
칭구. 고마운 칭구들, 잊을수 없는 그 칭구들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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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飛亭(비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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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한 달빛 아래서 고기비늘 처럼 반짝거리는 물결을 찾아 날아드는 기러기 떼에 시에 대한 흥취를
달래고 고기를 낚는 어화(漁火)를 비비정에서 바라보는 것은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를 닮았다’을 것
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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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있는 듯, 없는 듯, 항상 나의 인생 타임라인(timeline)에 그 친구들이 있었던 것을 새삼 다
시한번 느껴보는 순간 이었다. 자기 일에도 성실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들, 어느
덧 나이 들어 있는 친구와 나를 보니 지난 어린 추억들이 주마등처럼.스처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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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삶에대한, 우정에 대한, 작고도 큰 행복감을 누리면서 유랑자는 오늘 이 우정어린 두 번째
칭구와 함께 풍요의 들녘을 가로 지르는 만경강을 찾았다. 유랑자는 칭구가 비비정을 가 보자는 말
에 흔쾌히 응했다. 사실 유랑자는 정자(亭子)문화를 즐겨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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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호남선,,,열차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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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俗世)를 떠나 자연 경관을 바라보면서, 또 감사하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수 있는 곳, 그야말
로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유유자적(悠悠自適)시간을 보낼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대로를 거처 도착한
곳은 비비정(飛飛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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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과 추천, 전주천이 합수되어 다시 거듭 소양천과 고산천에 합수되어 만경강이 시작 되는 곳을 한
내(한천교 아래)라 한다. 한내란 큰 내라는 뜻으로 호남으로 빠지는 관로의 요충지였다. 또한 한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한 마지막 길목이었고, 동학농민군이 서울로 진격한 월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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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을 안고 유랑자가 비비정에 도착하고 보니 갑자기 조선시대 천민출신으로 감히 사대부와
당당하게 시를 겨룬 유희경(1545~1636),이 떠오른다. 당대의 최고의 시인으로 기생이자 시인인 부안
출신 이매창(李梅窓)과 사랑에 빠진 그의 ‘계랑에게’란 시가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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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後重逢未有期(별후중봉미유기)이별 후 다시 만날 기약이 없으니
楚雲秦樹夢相思(초운진수몽상사)서로 멀리 떨어진 채 꿈속에서나 생각하려네.
何當共倚東樓月(하당공의동루월)언제쯤 동쪽 누각 위로 뜬 달빛에 의지하여
却話完山醉賦詩(각화완산취부시)전주에서 술에 취해 시 짓던 이야기 할꺼나
유희경 촌은집 寄癸娘(기계랑)이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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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희경이 기생이자 여류시인인 이매창(李梅窓 1573 선조8~1610 광해군3)에게 사랑에 빠져
그리워하며 지은 시로 비비정에 왔으니 유랑자 역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이 곳 정자에서 달래본다.
정자에 오르니 세상천지 넓음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비비낙안(飛飛落雁)의 아름다움을 다 담아낸 정
자임에 틀림없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호남평야(湖南平野)의 드넓은 들판을 다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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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5경 속하는 비비낙안은 비비정(飛飛亭)에서 만경강을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말한다. 낙안
(落雁)은 떨어질 락(落), 기러기 안(雁)으로‘땅에 내려앉는 기러기’라는 뜻으로 때로는‘기러기 떼'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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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3년(선조 6) 최영길이 건립, 그후 철거되었다가 1752년(영조 28) 관찰사 서명구가 중건 다시 오랜
세월이 흘러 정자가 없어졌다가 1998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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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낙안은 바로 한내천 백사장에 내려앉아 노는 기러기 떼가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이며 옛날 선
비들은 비비정에 올라 술을 마시고 시와 운문을 지으며 풍류를 즐겼으리라. 이런 분위기가 유랑자의
꿈이자 로망이다. 유랑자가 정자(亭子)문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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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자에 오르면 세상시름 다 떨처 버리고 이내 평온(平穩) 모드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비비정(飛
飛亭)!, 후정리, 시골 들녘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을 줄이야 내 미처 몰랐다. 비비정 마을은 30가구 정
도에 100여명이 사는 농촌 작은 마을이다. 삼례읍에는 야산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는데 대부분 논이 시
작되는 곳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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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비정 마을만 야산의 한 자락이 유독 멀리까지 뻗어 만경강 상류를 이루는 삼례천에 닿아 있
다. 비비정은 마을에서 가장 길게 나와 있는 땅 끝 부분에 서 있는 정자다. 비비정 정자에 올라 말 그
대로 만고강산 (萬古江山)을 바라보는 맛은 글로 표현이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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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서 보면 만경강둑 풍경은 가히 ‘완산8경’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는 풍치에 손색이 없다는 것
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말로하면 무엇하리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이요, 백견이 불
여일각(百見而 不如一覺)이며, 백각이 불여일행(百覺而 不如一行)'이라는 말이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깨우침이 나으며, 백번 깨우침보다 한번
행함이 낫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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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난 호남선 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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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飛亭復元記(비비정복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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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지기문(完山誌記文), 완산군편에 보면 비비정은 1573년(선조6)에 무인(武人), 최영길(崔永吉)이
별장으로 지은 것(전라도읍지 飛飛亭在府北三十里萬曆癸酉武人崔永吉創建爲別墅:비비정 재부북 삼
십리만역계유무인최영길창건, 위별야)이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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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철거된 것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52년(영조 28년)에 1752년 전라도관찰사로 과중한 조세
부담을 삭감하게 하고 관하지방관들의 부정을 엄격히 처벌하는 등 치적을 올렸던 약허(若虛) 서명구
(徐命九 1692 숙종 18∼1754 영조 30)가 중건하여 관정(官亭)으로으로 삼았다. 고 적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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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飛亭記(비비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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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飛亭重建記(비비정중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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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랜 세월에 관리가 부실해지면서 소실되자 최영길의 9대손 최광용이 감영에 품계를 했지만
중건을 보지 못했다. 지금의 건물은 일제강점기 1930년에 지어진 것이다. 이 비비정에는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로 붕당정치의 중심인물로 서인노론의 대변자로 보수파의 끝판왕인 송시열과도 관련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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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 대 학자,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 선조 40∼1689 숙종 15)
이 지은 "비비정기(飛飛亭記)"를 보면 "우암이 최씨 집안을 찬양하기 위하여 장비나 악비 등 중국 명
장의 이름을 붙여 비비정(飛飛亭)이라고 했을 뿐 지명을 취한 것은 아니다 "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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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드는 기러기 등을 타고 금방이라도 날아갈것만 같은 飛飛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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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이 쓴 비비정기는 최영길(崔永吉)의 손자인 최양의 청탁을 받고 쓴 것(飛飛亭在全州參禮驛之
南 其主人崔後良也:비비정재전주삼례역지남기주인최후양야)인데 "최양이 찾아와서 나에게 정자의
기문을 청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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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조부 최영길이 창주첨사를 지냈는 데 정자는 1573년(선주 6년) 창건했다는 것으로 그의 부친 최
완성도 나난만호를 지냈으며 최양 또한 조업을 이어 무관이었다. 당시 무관들은 추세 속으로 권문에
아첨하여 뇌물이나 바치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청고한 인물이어서 정자를 일으키어 풍아하
게 살았고, 최양은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데도 정자를 보수한 것은 효성에서 우러난 일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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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정이라 이름한 뜻을 물으니 지명에서 연유된 것이라고는 하나 내가(송시열) 생각하기에는 그대
의 가문이 무변일진대 옛날에 장익덕은 신의와 용맹스러운 사람이었고, 악무목은 충과 효로 알려진
사람이었으니 둘이 다 함께 이름이 비(飛)자였다.
비록 세월은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무인의 귀감이 아니겠는가. 장비와 악비의 충절을 본뜬다면 정자
의 규모는 비록 작다 할지라도 뜻은 큰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적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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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지사 비비정에 올랐으니 조선후기 문신으로 도승지에 추증된 서귀(西歸) 이기발(李起渤 1602~1
662)이 이곳에서 읊은 시로 비비정의 문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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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州幾處有江亭(남주기처유강정)남쪽 고을 곳곳마다 강정이 있으나
最是津山獨擅名(최시진산독천명)이곳 진산이 가장 이름을 드날렸네
三大水橫臺下合(삼대수횡대하합)세 큰물이 넘쳐 흘러서 누대 아래에 합하고
四長程遠眼中平(사장정원안중평)사방의 긴 길이 멀리 눈 속에 확 트였네.
春風草軟天兼碧,(춘풍초연천겸벽)봄바람에 풀은 연하고 하늘도 푸르고
秋夜沙晴月共明,(추야사청월공명)가을 밤에 모래펄 맑고 달도 함께 밝네
强策蹇馿探勝槪,(강책건려탐승개)절룩이는 노새를 채찍하여 좋은 경개 찾으니
興酣終日暢幽情,(흥감종일창유정)시흥이 절로 일어 종일 그윽한 정을 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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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는 풍요의 강 만경8경중 비비낙안 만경5경인 비비정에서 유유히 흐르는 만경천을 바라보
며, 망중한의 세월을 낚고 즐거움을 느끼고자 한동안 앉아 호남평야 의 넓은 들녘을 품었다. 먼 옛날
한내는 군산 과 부안에서 오는 꿈을 실은 고깃배 와 소금과 젓갈을 실은 배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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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실은 배가 멈추는 곳에는 어김없이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다. 백사장 한편에는 큰 시장이 형성
되었을 것은 자명하다. 요즘에도 강변에서 낚시꾼들이 고기를 낚아 올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강
변에는 갈대밭이 펼쳐져 있는데 마을 노인들에 의하면 지금은 백사장에 갈대나 풀이 무성해 모래밭
이 보이지 않지만 40~50년 전만 해도 잔풀 하나 없는 모래밭이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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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철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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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얗게 빛났던 백사장에 기러기 떼가 날아들어 고기를 잡아먹는 풍경은 아마도 한 폭의 수묵화였
을 것이다. 저녁에는 저녁노을을 받으며 만경강의 동쪽 포구로 돌아가는 황포 돛단배의 모습(동포귀
범:東浦歸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강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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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운 유랑자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심정으로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세월의 여
정속에 비비정에서 굽이쳐 흐르는 만경강을 조망하고, 춘포 와 삼례 만경강변의 은빛으로 물든 억새
의 장관을 구경하니 기분이 감개무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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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낙안(飛飛落雁)의 한축인 기러기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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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제205-2호)노랑부리 저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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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여서 한양과 지방을 오르내리는 나그네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비비정에서 쉬
며 시를 지었을 것이다. 아마도 전라도 삼례 이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이곳을 거
쳤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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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래도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완산팔경이라 칭했던 이유는 자연적인 풍경 때문일 것이다.
한내천 백사장 갈 숲에 사뿐히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비비정에 올라 바라보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었
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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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제206호)인 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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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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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지켜보면서 양반들은 비비정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그 정취를 달랬다. 그래
서 이곳이 완산8경의 하나가 됐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유랑자 역시 이 시점에서 농주
한사발 걸칠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음주운전은 금물이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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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두눈이 있어 비비정에서 눈이 시리도록 만경강을 조망할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 두발이 쓸만
해 다닐수 있어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과 우정을 논할수 있어 행복하고 그리고 집에 까지 무사히 귀
로 할수 있었음을 고맙게 생각하며 오늘 하루가 흘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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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마음으로 세월을 낚으니 행복하였다.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 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
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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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습없는 단 한번의 인생인 만큼 소중한 시간을 알차고도 즐겁게 살고 가길 바란다. 남이 내인
생을 대신 살아주는것도 아니거니 와 다시 되돌아 갈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는 나도 세끼, 길거리 노
숙자도 하루 세끼는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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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b2345/9t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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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길 7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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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나의 고향이며 어릴적 뛰놀던곳이 이런역사가 있던곳이라니 새삼 깨닫게 됐네요.. 잊혀진 추억이 생각납니다
감사 합니다.
고향의 추억이란 때론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지요.
저 또한 비비정에 가서 그 아름다움에 놀랐습니다.
암튼 아름다운 정자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삼례에 다녀오셨군요. 저 어렸을적에는 근처에 있는 다리를 한내다리라고 불렀으며 석양의 모습도 정말 아름답지요.
그렇군요.
만경강과 비비정, 한폭의 수채화요, 그림입니다.
들녁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속에 묻어오는 흙내음과 풀내음이
아련한 옛 고향을 불러 내는 그런 곳이더군요.
물론 노을이 아름답기도 하구요. 다음편을 주목해 주세요,
http://cafe.daum.net/b2345/9toB 이곳에서 미리 전주 여행기를 보실수 있습니다.
@유랑자1 구석구석 가 보셨군요.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신라여왕 감사 합니다.
저의 졸필에 그저 마음 써 주신 님이 고마울 뿐입니다.
신라 여왕님 오늘밤도 굿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