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329591§ion=sc30§ion2=
누런 들풀 우거진 사잇길. 얼마만 인가? 잡초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오솔길을 걷노라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내가 유난히도 좋아하던 흰 빛 가녀린 몸매의 들국화를 대하고 보니 들국화 꽃향기에 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책하였던 옛일이 생각난다. 미국에 와보니 유난히 흰색 들국화가 많이 눈에 띈다. 영락없이 청초하며 순결하고 앳된 시골 처녀 같은 모습을 한 들국화!
하지만 이 꽃은 들국화와 거의 흡사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으나 정작 그 이름은 “벌개미취” 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서북미 특히 퓨젯 사운드 지역 들녘이나 야산을 걷다 보면 자주 눈에 뜨이는 꽃이다. 우리는 이 꽃을 그저 들녘에서 피니까 들국화로 오해하기 쉬운데 이 꽃은 순수한 우리 말로 “벌개미취” 라고 하며 이 꽃의 서양식 꽃말은 “그대를 잊지 않으리” 의 의미를 알고 나면 저 높은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서서 마치 태평양 너머 고국이 그리워서 고국을 향해서 눈물을 흘리는 우리 이민자들의 서글픈 모습을 대하는 것 같다. “벌개미취” 에서 벌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에 나오는 그 “벌”이다. “벌 노랑이” 벌씀박이” 처럼 들판에 나는 풀꽃 이름에 붙인다.
개미는 꽃잎 하나하나가 개미를 닮은 듯하고, “취” 는 어린잎을 나물로 먹기에 붙였다. 벌개미취는 사는 곳, 생긴 모양, 쓰임이 두루 어울린 이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애틀”은 본디 원주민 인디언 추장이었던 Seattle Chief(1786-1866) 이 그의 나이 79살 때 1855년 1월 9일에 인디언들 앞에서 “Speech To Governor Stevens”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한다. 인디언들이 사는 땅을 미국 정부에서 구입하고, 인디언들을 위한 보호지(Reservation)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미국 대통령 프랭크린 피어스(Franklin pierce 1853-1857) 에 대한 답변을 워싱턴 주의 첫 번째 주지사였던 이삭 스티븐(Issac Stevens) 앞으로 전한 메시지다. 합법적으로 땅을 팔라는 미국 대통령의 제안에 시애틀 추장은 “형제 여러분! 저 하늘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조상들을 동정하고 긍휼히 여겨왔습니다. 저 하늘이 우리의 눈에는 변함없어 보이지만 저 하늘도 변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쾌청하고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덮일 수 있듯이 제가 하는 말들은 하늘의 별처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와 시냇물을 소유 할 수 있으며,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사고 판단 말입니까?” 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더욱이 “들꽃은 우리 누이고, 말과 독수리는 우리 형제”라고 했다니, 시애틀 추장이 보기에 벌판에 있는 꽃을 꺾어 파는 일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나는, “벌개미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유년 시절을 추억하며 감상에 젖어본다. 이 조락의 계절에 벌개미취는 길가에, 야산 기슭에 별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새하얗게 피어 오가는 이들의 마음에 새하얀 순정을 바람결에 쏟아부으며 순수한 미소를 흩날리듯 유난히도 가는 허리 구부려 인사하고 있다. 겸손하고, 유순하며, 청초하게ㅡ
나는 잡초 속에서 새하얀 벌개미취꽃을 바라보며 비록 모양은 다르나 고향의 들국화를 연상하며 참으로 오랜만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며칠 전 이웃에 사는 분과 다정히 오솔길을 거닐면서 언니! 저 꽃 이름이 무엇인지 아세요? 하고 묻자, 글쎄 들국화 같은데ㅡ 하길래 나는 제법 잘 아는 척하고 “벌개미취”라고 설명을 해 드렸다. 그리고는 우리는 계속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서 사잇길로 들어갔다. 그 길은 올봄에도 새빨간 산딸기를 따서 먹으며 흥얼흥얼 유년 시절에 부르던 노래도 부르고, 명곡도 부르고, 유행가도 부르며 자주 산책하던 길이지만 홀로 걷기에는 좀 외진 곳이었다. 우리는 산딸기나무에서 딸기를 따서 서로에게 주며 뱃속이 완전히 딸기 술 공장처럼 되어서 목구멍에서 꼴깍하고 더 이상은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실컷 먹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산책을 즐기다 돌아오는 도중 별로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질러서 가면 빨리 집에 가지 않을까 싶어 들어선 길의 어느 지점에 이르러 와!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샛노란 민들레 꽃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영어로 댄딜라이언(Dandelion)이라 불리는 민들레가 마치 군식이라도 해 놓은 듯 여기저기 민들레밭을 이루어 곱게도 피어 있었다. 그 옆에 식용과 한약용으로 줄기와 잎과 씨앗 모두를 다 먹을 수 있다는 길경이들이 줄기에 씨를 다닥다닥 붙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대가족처럼 오순도순 모여 앉아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일요일에 시간만 허락하면 이곳으로 산책을 나왔던 터라 오늘은 미리 칼을 준비하여 길경이와 민들레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캐고 있자니 흘러간 유년 시절이 그리워졌다. 민들레는 뿌리째 캐어 뿌리는 잘 손질하여 말려서 차처럼 끓여 먹으면 내장에 어느 곳이든 다 좋다고 한다. 오죽하면 만병통치약? 이라고 하지 않는가. 누가 지었는지 이름도 성도 참 좋다. 성은 민 氏. 이름은 들레. 언제나 우리를 오라고 노랗게 꽃 대궁을 피워 올리고 바람결에 한들한들 손짓하는 민들레! 길경이 또한 위장, 신장, 알레르기(Allergie)성 질환에 좋다고 한다.
길경이 나물이 좀 질기기는 하나 이민을 떠나와서 사는 우리네 삶에 향수를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우리가 민들레와 길경이를 무슨 노다지라도 캐듯 열심히 캐고 있자니 말만 한 개와 함께 산책 나온 미국인 부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는 어김없이 댄딜라이언 인데요 건강에 유익하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동감하는 표정을 짓곤 하나 같이 have a Good day 하며 지나간다. 우리는 공연히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들처럼 부끄러웠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관대하고 부드러웠다. 사실 산에 있는 식물을 함부로 손대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흔한 민들레를 Plant로 여기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고향에 토속의향이 넘치는 씁쓰레한 민들레와 길경이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오면서 즐겁게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으면서 그동안 세파에 찌들었던 마음의 주름들이 한결 펴지고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민들레 뿌리는 말려서 차로 달여 먹고 속잎은 김치를 하기로 했다. 길경이는 나물무침으로 우리의 저녁 식탁을 풍요롭게 하겠지!
한국인들은 어디에 갖다 놓아도 굶어 죽지는 않을 성 싶다. 조국을 등지고 태평양을 건너와 이민의 고달픈 삶 속에서나마 생활 환경이 바뀌어 아무리 어릴 적보다 풍요로운 미국에 산다 해도 유년 시절의 아릿한 고향에 대한 추억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성 싶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실향민으로 살아가면서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이 하찮은 민들레와 길경이 만 보아도 우리의 텅-빈 마음에 환희를 채울 수 있다니----- 그동안에 회한의 세월 속에 잡힌 주름들을 순식간에 행복감으로 충만하게 가득 채워 기쁨을 줄 수 있는 묘약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언니! 우리 다음 일요일에 시간 내서 다시 오는 게 어때요? 우리는 다시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져 돌아왔다.
시인. 수필가. 소설가.
** 한맥문학 시부문 당선 등단 [2001년]
** 제14회 월간 한맥문학상 수상 [2008년]
** 해외문학 신인상 수필당선수상 [2008년]
** 한국문인협회 워싱턴 주 지부 창설자[김성령. 김학인. 이춘혜] 2007년2월 창설
** 한국문협 워싱턴 주지부 초대 [시분과회장] 역임. * 1918년 본협 감사.
** 해외문학 18대 [시부문] 대상수상. *해외문학 작품상 수상[매미]
** 제1회 북한 인권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장려상 수상.
** 2010년 미주 재림문학 단편소설 당선 [치한과의 조우]
** 한맥 문학 북미주지회 이사.
** 한국문협 본국회원.* 전 미주시인 회원.
** 미주 재림문협회원 “미주 재림문학에 [제 1집부터 13집까지 시 게재]
** 전 서북미 문협 회원. 뿌리 동인.
** 해외문협 워싱턴 주 편집위원.
** 전 문예운동 [공동발행인] 탈퇴
** 시애틀 문학인협회 회원
** 시집 ㅡ 시애틀의 단풍[2009년10월]
** 제3회 워싱턴주한인의날 축시 당선 [영원한 한인의 날] 낭송
**시애틀 한국일보 신년시. 미디어한국.
**시애틀 중앙일보 신년시 [2006 ㅡ 2012년까지]
** https://WWW.seattlen.com/hot/18319 이춘혜 시인의 신앙시 [2014 년부터 ~ 2023]
** 시애틀 라디오한국 창사 기념 축시와 신년시 20년 연속 게재.
** 라디오한국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음 [2020년 10월 1일]
** E- mail : choonlee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