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 Johann Schmidt의 《Martyrdom of Saint Simon and Saint Judas Thaddeus》
복음서에서 본 다대오의 신앙 행적
유다 다대오는 예수님의 12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유다는 ‘존경받는’ 또는 ‘찬미하리’라는 뜻이며, 다대오는 ‘마음이 크고 넓다’는 뜻이다. 소(小) 야고보와는 형제 관계이다. 유다가 이름이고 다대오는 아람어 타다이(תַדַּי; Ṯaday)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추정되지만, 하필이면 같은 이름을 가진 최악의 배신자가 있어서 대부분 '다대오'를 사용한다. 마태와 마가는 다대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와 요한은 유다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두 이름을 합하여 한꺼번에 유다 다대오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름이 셋이다. 예수님을 팔아 버린 유다 이후 유다는 악명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를 구별하기 위하여 다대오라고 불렀던 것 같다. 유다 다대오에 대한 성경의 유일한 기록은 요한복음 14장이다. 12 제자 이름을 말할 때 외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딱 한 번, 여기에만 나온다. 그는 시리아, 아라비아, 페르샤로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후에 아르메니아 그리고 죽기 직전에는 에데사에서 눈부신 선교를 하였다. 시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복음을 전할 자로 택함을 받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 10:1-4). 마태복음 10장 3절을 보면 그의 이름이 “다대오”라고 나와 있는데, 새 번역을 보면 주가 달려서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레배오’ 또는 ‘다대오라고 부르는 레베오’라고 되어 있다. ‘레배오(Lebbaeus)’라는 말은 ‘가슴’을 뜻하는 단어 ‘렛’에서 유래한 말이며, 그러니까 ‘아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만약 ‘레배오’가 그의 별명 내지 애칭이었다면, 이것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는 아주 따뜻한 가슴을 가진, 매우 다정다감한 제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선교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제자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2-23).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의 그 저녁 다대오는 왜 예수님은 그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려하지 않으시는지 묻는다. 그는 질문을 할만한 용기와 지적 추구심과 열정이 있었던 사람이었다.“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 14:22-23)라고 말씀하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유다는 자기가 만나서 알게 되었으며 또한 지금 따르고 있는 이 예수님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믿고, 따랐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질문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유다 다대오는 매우 진지한 선교적 관심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제자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복음서 이후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로 산 제자였다. 초기 문헌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 따르면, 유다 다대오는 열심당원이었던 시몬과 함께 시리아와 소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페르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A.D. 62년에 페르시아에서 이교도의 사제와 예언자들과 논쟁하다가 그들의 신상을 무너뜨려 처형되었는데, 유다 다대오는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고 시몬은 십자가형이나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했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아라랏산이 70KM 거리에 위치한 다대오교회(현지명-쿠라켈리;Cara Kelissa)는 A.D. 66년에 건축됐는데 현지인들은 시몬과 3,50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매장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유다 다대오를 표현할 때 보통 창(미늘창) 또는 도끼, 그 외에 고문 도구였던 곤봉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 복음이 널리 알려져야한다고 주장했던 다대오는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 자신은 알려지지 않아도 예수님의 이름은 널리 알린 진실한 제자가 되었다. 다대오는 결과적으로는 "이름은 없었으나 이름 값을 하고 간 제자, 이름 없이 빛도없이 주님을 섬긴 제자, 유명하지 않았으나 필요했던 제자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