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축구산책] '마에조노의 몰락'
마에조노 마사키요(28ㆍ도쿄 베르디)를 맨 처음 본 건 96년 3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의 애틀랜타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무대에서였다.
그는 최전방의 조 쇼지(26ㆍ요코하마 F.마리노스)와 함께 일본올림픽팀의 핵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23세의 나이로 '일본의 축구영웅' 미우라 가즈요시(34ㆍ빗셀 고베)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았을 만큼 그의 기량과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일본의 플레이는 시종 마에조노를 중심으로 빨라지기도 하고, 둔해지기도 했다.
전방의 조에게 흘러들어가는 예리한 패스는 모두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이따금씩 직접 볼을 몰고 정면돌파해 들어갈 때면 상대 수비들의 오금이 저릴 정도로 힘이 넘쳤다.
일본은 결승에서 한국을 만나 이상헌과 최용수의 랑데부포에 1대2로 무너졌지만 마에조노의 플레이 만큼은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 한구석을 떠돈다.
하지만 그 기억을 갈수록 새롭게 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때 그라운드에서 보았던 마에조노의 섬뜩하게 살아있는 눈빛이다. 그 후로도 많은 축구선수를 봐왔지만 '마에조노의 눈빛'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한데 불행하게도 그는 많은 구단을 떠돌았다. 92년 요코하마 플뤼겔스 입단뎰97년 베르디 가와사키 이적뎰98년 브라질 산토스에 임대뎰2000년 J리그 2부 쇼난 벨마레에 임대뎰2001년 도쿄 베르디 복귀.
마에조노는 애틀랜타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팀 플레이에 적응을 못했고, 이렇다할 공격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멀리 용병으로 등을 떼밀리기도 했다.
올들어 도쿄 베르디가 그를 복귀시켰지만 뚜렷한 믿음이 없어 6개월의 짧은 계약을 했으며 지난 30일 6개월 연장을 했다. 근근이 목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천하의 마에조노는 왜 계륵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일본의 한 축구전문기자가 귀띔을 했다. "너무 일찍 돈맛을 알아서" 그렇다고.
천재적인 재주에 따라붙은 부와 명예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채 흥청거리다 급기야 다리힘이 풀리고 만 것이다.
겉멋부터 든 한국의 '어설픈 스타'들은 마에조노의 추락을 알고 있을까.
=> 이동국이 이길을 걷고있죠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