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
전체를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조만간 사달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분야든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몸에 좋다며 어떤 음식만 지나치게 먹거나, 근육을 키운다고 특정 부위를 지나치게 혹사시키면 다른 곳에 무리가 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진리도 똑같습니다. 지난 교회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없이 특정 진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많은 분파가 생겨났습니다. 문제는 전체 윤곽을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일단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머리이신 주님을 앙망하며, 배우는 자세로 몸 안의 다른 지체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겸손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아래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아는 일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름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목적 … 에 따른 것입니다(딤후 1:9).
아침에 위 본문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아울러 좀 더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검색도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온라인상에는 ‘부르심’(혹은 소명)과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상당량의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모르던 부분도 있어서 일부 도움을 받았지만, 저는 주님이 주신 빛 가운데 이 진리를 보길 원해서 간절히 그분을 앙망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이런 과정 후에 제 안에 정리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성경에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창세기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부르심’에 관한 많은 사례들이 나옵니다. 그중에서 이번에 새롭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부름받은 성도들”이라고 한 대목입니다(고전 1:2). 사실 ‘교회’인 ‘에클레시아’의 의미 자체가 ‘부름받은 이들’을 가리킵니다. 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1) 특별한 소명을 안 받았어도, 거듭나서 몸의 지체가 된 모든 이들은 위 본문이 말하는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2) ‘부르심의 목적’에 관한 계시는 구약보다는 신약이 더 깊고 포괄적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 이 주제에 대해 추구하면서 한 가지 정리해야 할 것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계획’ 등은 크게 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셔서 부르셨는가? 참고로 성경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부르심의 목적을 모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복음(롬 1:1), 교통(고전 1:9), 자유(갈 5:13), 거룩(살전 4:7), 영광(살후 2:14), 생명(딤전 6:12), 제자 됨(벧전 2:21), 축복(벧전 3:9). 그러나 성경의 이런 기록들은 솔직히 다소 산만해서 잘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항목들을 포괄하는 뭐가 좀 없을까 생각하며 그분을 앙망할 때,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담긴 로마서 8장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래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우선 위 로마서 8장 28절과29절 본문을 논리의 흐름에 따라 풀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거듭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았다.
2) 그 목적은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시도록) 우리를 주님과 똑같은 형상을 가진 그분의 많은 형제들로 만드시는 것이다.
3)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모든 것”(모든 사람, 모든 일, 모든 사물)이 “협력하게” 환경을 안배하신다.
4) 그러나 우리가 어떤 환경을 통과할 때 “선이 이뤄지는” 쪽으로 믿음으로 반응하여 그분과 같은 형상을 이뤄갈 것인지(고후 3:18), 아니면 그 환경 자체에 눌려 좌절하거나 겨우 문제만 해결하는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에 따라 우리를 부르신 그분의 목적이 이뤄지거나 혹은 지연된다.
이런 추구 과정을 통해 제 안에 다음 세 가지가 더 분명해졌습니다.
1) 위 28절의 “선이 이뤄진다”(for good)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유익하던 것들까지도 그리스도 때문에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계속 얻어가는,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이 되는 과정을 말한다(빌 3:8, 갈 4:19).
2) 이것은 “왜냐하면”(호티, 3754)이라는 접속사로 시작되는 29절 본문이 잘 말해준다(대부분의 한글 성경이 이 접속사를 번역하지 않음).
3) 우리가 맏아들의 형상과 똑같은 많은 형제들이 되도록 장성한 분량에 이른 상태는 앞에서 열거한 부르심의 목적들을 다 포괄한다(엡 4:13).
하나님은 몸의 머리이시자 맏형님이신 주 예수님과 똑같은 생명과 본성과 표현을 갖는 존재인 그 몸의 장성한 지체들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 이 어떠한 영광이요 거룩한 부르심인지요!
첫댓글 불러서 나온건가요 믿고 싶어서 나온겁니까?
그분의 부르심에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한 것이 아닐까요?
@김바울 그러면 무당도 산신령에게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던데. 님도 똑같은거 아닙니까?
@무한대 그분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무당을 부르시지는 않습니다.
@김바울 무당과 기독교는 똑같은데요. 무당의 신내림이나 기독교의 성령받는거나 다를게 없잔습니까?
@무한대 시내림은 악령 들림이고요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지요.
@김바울 말만 바꾸는거지 같은겁니다. 한국교회가 모두 무당종교가 되어있지요.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을 창조하는 것이지요..
개독 믿음은 하나님의 형상 사람을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욕심으로 가득한 마귀 형상 짐승이 된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유업으로 주시기 위한 것이고
창조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머가 진행하는 것은 계획
진행의 끝이 목적이고.
사람을 창조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고 하나님의 왕국을 유업으로 줄 목적으로 그 사람은 유업으로 받을 대상으로 창조된 것이지. ㅋㅋ
부르신 목적의 대한 글을 맞는데
그러나 개독 믿음으로 거룩 그리스도의 형상이 될까요
욕심으로 가득찬 마귀가 준 믿음이라
거룩커녕 그리스도의 형상커녕
일곱귀신이 들어가 더러운 마귀의 형상이 되고 있지
구더기가 감히 하나님 뜻을 어찌 안다고 해석을 하시나요,, 하나님 말씀을 님이
해석하는 순간 성경은 하나님 뜻이 아닌 구더기보다도 못한 님뜻이 되는겁니다.
욥기 25 : 5,6,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구더기 같은 인생, 벌레 같은 사람이야 더 말할것이 있겠는가?
잠언 30 : 6<공동번역>
하나님 말씀에 아무것도 더 보태지 마라. 거짓말쟁이라고 꾸지람을 들으리라!
요한 22 : 18
누구든 성경 말씀에 다른 것을 더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책에 기록된 재앙을
그에게 내릴 것입니다!
전도서 8 :17,
하나님의 모든행사를 살펴보니 해아래서 하는일을 사람은능히 깨달을수없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못하나니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깨닫지 못하리로다!
<전도서를 쓴 지혜의 왕 솔로몬조차도 모른다는 하나님 뜻을 님이 안다니 교만이
하늘을 찌르네요..교만은 패먕의 선봉입니다.>
고전 2 : 11,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합니다.
골 1:9
1:27
@김바울 고린도전서 1 :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김바울아 이 문장에서 부르심은 성도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자들 말하는 것야
이리 와 하는 부르심이 아니고
@김바울
님 주장을 보니 교인들 헌금에 만 눈이 시뻘건 양아치
목사놈한테 악령을 받아놓고 성령 받은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네요,, 지금은 악령 받은 교인들이 넘침니다
마태 15 :14,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아이구 환장하겠네
부르심은 머가 일을 시키려고 부르는 것이 있고
고린도전서 1 :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 문장에서 부르심은 호칭을 말하는 것야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성도라고 불리는 자들이라는 뜻이지
오라 가라에서 이리 오라고 부르심을 말하는 부르심이 아니야 ㅋㅋㅋㅋㅋㅋ
\고린도전서 7 :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이 문장에서 부르심은 종으로 일을 시킬려고 부르신 것이고.
ㅋㅋㅋ
디모데후서 1 :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기서 부르심은 구원을 우리의 행위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주시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뜻이지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우리의 행위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은혜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누구를 가르칠 입장이 아니고
국어 이해력 부터..
부르심이라는 말이
이리와 하고 부르는 부르심이라는 말이고
호칭 즉 김바울을 앞으로 돌아이라고 부르다는 부르심이 있어
ㅋㅋㅋㅋ
하나님의 이리와 하고 부르는 부르심은 종으로 하나님의 일을 시키기 위해서
로마서 8 :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부르심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루어야 해
고린도 전서 7장에 일을 시키기 위해서 즉 은사 즉 사명을 위해서 부르신 부르심을 잘 설명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