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화가 마르틴 요한 슈미트(Martin Johann Schmidt, 1718–1801), 별칭 크렘저 슈미트(Kremser Schmidt) 의 작품인《The Martyrdom of Saint Simon Zelotes and Saint Judas Thaddeus》 (성 시몬과 성 유다 다대오의 순교) 1796년
복음서에서 본 시몬의 신앙 행적
시몬은 성경에서 “셀롯인 시몬”, 즉 열심당원(zelotes) 시몬이라고 불린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시몬은 가나안에서 태어나 자랐났다. 시몬의 이름의 뜻은 ‘응답하셨다’ 또는 ‘들으심’이다. 열심당원은 로마의 지배에 강하게 반대하던 유대 민족주의적 성향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제자가 되기 전에는 바리새파로 구성된 극단적 유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열심당의 일원이었다.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실상을 증거하는 예수님의 하늘복음 증거와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바 열심당을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성경에서 시몬에 대한 기록은 이름을 언급한 것 외는 전혀 없다. 시몬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또는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가나나인 시몬은 복음을 전할 자로 택함을 받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 10:1-4).
셀롯이라는 시몬은 열심당원이었다.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눅 6:14-15). 시몬의 이름에 붙은 ‘열심당원’이라는 수식어는 시몬이 강한 열정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열심당원(zelotes)은 로마로부터의 정치적 해방을 위해 폭력을 인정한 광신적 금욕주의자들을 의미한다. A.D. 6년 유대와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임명된 코포니우스가 자기 관할지역에 주민세를 부과하자 이에 갈릴리 지역 가믈라 요새 출신 유다가 주민세 거부운동을 벌이고 사람들을 모아 열심당을 조직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통치자이므로 황제의 흉상 등이 새겨진 은화 데나리온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여겼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반대하는 자는 모두 정죄했다. • 셀롯 시몬(눅 6:15)도 열심당원(zelotes, 셀롯인) 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셀롯이라는 시몬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눅 6:15). 시몬의 별칭은 그의 정치적 배경과 열정을 암시한다. 그는 세상의 이념과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격정적인 혁명가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통해 '칼을 통한 혁명'에서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서 이후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로 산 제자였다. 성형 강림 이후 시몬에게 신앙과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Mauritania)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영국에서도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개종시킨 후, A.D. 74년에 영국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설교하다가 유다 다대오와 함께 페르시아 지역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했다고 한다. A.D. 62년, 페르시아에서 예수님에 대해 설교한 뒤 그곳의 이교 신상을 파괴하자, 그 속에서 마귀가 튀어나와 도망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자신들이 여태껏 섬겨왔던 신상이 부서지자 흥분한 이교도들은 그들에게 달려들어 포박한 후 죽였는데, 유다 다대오는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고, 시몬은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사타구니에서부터 머리까지 대형 톱으로 썰어내려 육신이 좌우로 두 동강이 나는 형벌을 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시몬은 자신의 과거의 정치적인 열정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영적인 열정으로 바꿔 산 제자였다. 그는 정치적인 자유를 넘어, 영적 자유를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충성을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