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벼라별 이름의 직업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이다. 글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직업도 그 하나이며,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논술을 가르쳐 주는 직업, 자기 소개서, 자서전을 써주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남에게 글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고쳐 준다. 참으로 좋은 일이면서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고한 벗 무관(이덕무)은 참으로 한 시대 문단의 으뜸이었다. 나도 그릇되게 명성이 있어서 새로 배우는 후배들이 시와 문장을 가지고 와서 고쳐주기를 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무관이 붓을 내 던지고 한숨을 쉬며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울에는 온갖 물건마다 모두 땜장이가 있네. 부서진 소반, 부서진 냄비나 떨어진 신, 헤진망건을 잘 고치면 넉넉히 생계를 꾸려 나갈 수가 있지, 나나 자넨 늙은 데다 글솜씨마저 거칠어졌네. 어찌 가만히 앉아서 굶주리기를 기다릴 수 있겠나. 붓 하나 먹 하나 끼고, 필운대, 삼청동 사이를 다니면서 “파시破詩” 때워 하고서 외치면 어찌 한 사발 술과 한 접시 고기야 얻지 못하겠는가?
하여 서로 크게 웃었다. 최근 서학사와 이야기하다가 이 일을 말하고는 함께 포복절도하였다. 그러더니 나를 ‘시 땜장이’라고 불렀다.“
<고운당 필기> 권 5에 실린 ‘보파시장補破詩匠’이다.
유득공이 살았던 그 당시는 문장을 고쳐주는 것이 썩 내키지 않은 일이어서 이덕무와 함께 자조 섞인 말을 나누고 한바탕 웃음으로 끝을 내었지만, 지금은 글이나 논술을 배우는 학원도 생기고, 대학의 합격도 논술이 좌지우지하며, 출판사의 편집자들도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보편타당한, 믿기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문장이라는 것이 어디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일이겠으며 쪽집게처럼 알아맞힐 수 있는 것인가? 다만 좋은 책(고전)을 많이 읽고, 많이 쓰며, 많은 경험과 산천을 유람하는 것, 그것만이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