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109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신정절 떡국 공양은 남자교도들이 준비하기로 되어 있었다.
남편이 회장으로 모든 준비의 최전방에 있었기에 나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데 두 분의 타원님이 육수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시기로 하였다하여 마음이 놓였다. 전날 남자교도 몇 분이 나오셔서 준비에 참여해주셨고 당일 신정절 떡국 끓이기도 두 분의 타원님의 도움으로 맛있는 떡국공양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사 후 남자교도님 한 분과 여자교도님 두 분이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그걸 보는 순간 내 마음이 요란해진다.
설거지까지 남자교도님들이 마무리해야한다는 나의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다른 사람은 그냥 아무런 분별심없이 도와주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분별하고 있지? 하는 또 다른 경계가 다가온다.
그 마음을 한동안 보고 있으니 내가 갖고 있는 표준이 나를 괴롭히는 것임이 알아진다. 상대에게 나같이 하라고 하는 주착된 내가 있음이다. 모든 경계는 상대가 아닌 나에게서 비롯됨이라는 걸 가르쳐주는 순간이다. 내가 오늘은 남자교도님들이 하는 것이라는 표준을 갖고 있으니... 그 표준으로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문제였구나.
남자 교도님들은 아직 이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럴수도 있는 것이지 그 어떤 의도도 없는데 나는 그것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여 상대를 원망하고 비판하고 있었네. 이렇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나를 보고나니 그 순간의 어리석음에 웃음이 난다.
그러니 원망의 마음이 감사로 돌려지는 은혜가 나타난다. 남자교도님들이 이렇게라도 공양에 참여해주심이 절반의 성공이며 감사한 일이구나 해진다. 상대에게로 향하는 초점을 나에게로 돌리는 이 공부가 나를 살리는 공부임을 깨닫는다.
첫댓글 걸림은 공부하라는 신호이지요... 나에게 촛점을 맞추고 공부를 하니 원망의 마음이 아니라 감사가 되지요 ... 그래서 원망 즉 감사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