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심초사는 억울하다 (외 1편)
손한옥 너희를 키운 8할이 노심초사다 다섯 살 때 얼음강 아래 빠진 너를 건져냈을 때부터 다섯 살 때 어른 자전거를 타다가 군용 지프 속에 들어갔을 때부터 기흉으로 폐가 달걀만 해졌을 때부터 봉와직염으로 발목이 시커멓게 연탄 같았을 때부터 어린 엄마를 압박한 아득한 그 시간들 나와 너희들의 생애를 지켜준 노심초사의 무게 찰싹이는 물결이다가 노도로 솟구치는 쓰나미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라 일어나던 일들에 대한 방비로 자란 초사들 그 거대한 해일을 넘고 넘어 사나운 경험을 건너온 영혼의 입자들 사랑이 깊어 내가 아프지만 사람이여 필사적 이정표가 된 노심초사에게 경배하라 장엄한 나의 공포 내 일생을 지키는 조심스러운 수로를 비난하지 마시라
삼복에 겨울 코트
삼복에 내가 좋아하는 원색 전문 브랜드 겨울 코트 하나 샀다 시즌에는 이 가격 아들이 사장이라도 못 살 살살 녹는 한우 쇠고기 옷장 안 들어있다 배부르다 달콤한 수밀도 솜털 세우고 쌓여 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한 번씩 문지르고 문 닫았다 첫눈 오는 날 말러의 대지의 노래 들으며 왕유를 생각하며 눈을 맞으리 옷 속에 가만히 스며 가슴까지 서늘하게 젖어도 좋으리 옥빛 보랏빛 무늬 나를 사랑하는 누구라도 곁에 서면 좋으리 내 꿈은 아직도 천년 어른 아이 하얀 감꽃 목걸이 고르게 꿰어 목에 걸고 알밤 줍는 부끄러운 그 머스마 곁 쪽밤처럼 서고 싶은 —시집 『사랑이 깊어 내가 아프다』 2024.7 ---------------------- 손한옥 / 2002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목화꽃 위에 지던 꽃』 『직설적 아주 직설적인』 『13월 바람』 『그렇다고 어머니를 소파에 앉혀 놓을 수는 없잖아요』 『얼음강을 건너온 미나리체』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