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하나님의 엄청난 질문 공세를 받은 후 그것에 답할 능력과 지혜가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최종적인 대답과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은 욥의 고난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당신의 의로움 가운데 행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식에 대해서 사람인 우리가 함부로 평가하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욥의 의로움을 변호해 주셨습니다(1-6).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이 당신께 대하여 말한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십니다. 세 친구가 자신들의 좁은 인과응보의 원리 속에서 하나님을 가두고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엘리후에 대한 책망이 없는 것은 주된 논쟁의 대상이 세 친구들이었고, 엘리후가 하나님께서 교육의 도구로 고난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반드시 인과응보의 원리만 작동하는 것은 아님을 잘 이야기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 친구들의 잘못도 용서 받을 길을 알려주십니다. 바로 욥의 중보를 통해서 입니다(7-9). 욥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욥은 그들을 위해서 마치 예전에 그의 아들들을 위해서 했던 것 같이 제사를 드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욥을 기쁘게 받으셨고 친구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또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욥의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욥에게 모든 소유보다 두 배를 더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다시 얻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평안히 마친 후에 자녀들과 손자 사대까지 보고 죽었습니다(10-17). 이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가운데 평안히 복된 죽음을 맞이 했다는 뜻입니다.
욥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현실에서는 복잡하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불의하심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결국에는 의인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제자리를 잡고 이전보다 더욱 나은 상황이 됩니다. 욥을 비난했던 친구들은 욥이 많은 부분에서 그들보다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욥은 그들을 위해서 제사하고 기도하므로 용서했으며 하나님은 욥이 잃은 모든 것을 보상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이지 용서의 댓가가 아니었습니다. 욥기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당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과 부조리와 고난의 상황에 답을 제시합니다.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내 생각에 가두고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욥기를 통해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는 것을 내다보게 합니다. 고난 받은 자가 고난을 비방하는 자를 위해 중보하는 것도 봅니다. 이 세상을 오직 인과응보의 원리로만 보면 완전히 의로우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고난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의로운 예수님에게 죄인들의 형벌을 대신 지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구원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 삶의 마지막에 우리가 겪은 억울함을 갚아 주시려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억울한 일 당할 때 원수 갚아 주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을 의지하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