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고인돌 해설서-
또는 고인돌 철학에 담긴 보고서
1. 머릿글
2. 우주의 기원
3. 사람의 기원
4. 민족의 기원
5. 자연과 인위
6. 인류문명사와 민족
7. 고인돌 민중론
8. 고인돌의 미덕
9. 고인돌의 철학여행
10. 우리것의 긍지 찾기
11. 2장을 맺으며
12. 충성을 위한 진혼곡
3장 3000년의 꿈, 인류 미래를 여는 꿈
1. 고인돌과 콜럼버스
2. 고인돌 할아버지의 탄식
3. 고인돌 동화
1. 머릿글
내가 태어난 마을 앞바라기에도 고인돌이 있었고 ,
그 위에서 어린 시절 뛰고 놀았었지만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후 내게 운명적 만남으로 다가왔을 때도 나는 알지 못 했다
고인돌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1년6개월여를 고인돌 주위를 서성인 후에야 그 돌 무덤떼가 죽은 자만의 것이 아니라 3000년전의 이 땅에 현실로 살았던 할아버지라고 생각의 틀을 바꾼 후 고인돌과 나의 시공을 넘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긴 시간 무의미하기만 하던 그 크고 작은 돌무덤들이 어느 순간 낯익은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작은 글로 썼고 16개의 소제목으로 고창군 인터넷에 올렸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이제 그 글은 18개의 소제목으로 남았고 나는 시간의 여유를 갖고 독서와 사색의 깊이를 더하여 고인돌에 담긴 민족혼과 역사바로보기와, 민족철학의 의미를 남기고자 했으나
요즘에 고창군에서 밝힌 고인돌 개발사업과 고인돌 터 앞에 이미 조성된 임시주차장을 보고 와서 다급히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전날 한반도와는 멀리 떨어진
이집트에서는 이집트 유적 탐사팀과 내셔날 지오그래픽 팀이 인류의 마지막 베일이라며 쿠푸왕의 피라미드 탐사를
전 세계의 관심 속에 현장 생중계 하였다. 그 방송은 카메라를 이원화 하여 피라믿의 비밀과 함께 그 근방에서 우연히 발견된 축조에 동원된 수십만 노예(?)들의 생활터전을 동시에
중계하며 그곳에서 발견된 모든 것의 의미를 새겨서 생선가시 하나에도 고고학적 의미를 담고자 충실했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간 우리의 고인돌은 무자비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고인돌 공원 개발 사업을 한다고 관람로를 내고 로프를 치고 쇄석을 깔더니만 공원앞도로 건너편에 중장비를 동원하여 주차장을 만들어 버렸다. 피라믿이 있고 축조에 동원된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분명히 있었듯이 고인돌 즉 돌아가신 분들의 공간이 고인돌 터이었다면 그 앞의 논과 냇가는 분명 고인돌을 축조하고 이 땅을 지켜간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간이었고 몸짓이었으며
율동 이었으며 대화의 장소였다.
수많은 고인돌을 축조한 그 긴 시간과 그 많은 선조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있는 곳 그 분명한 살아있던 사람들의 터를 깔아 뭉게어 화장실과 도로와 조경을 하고 있다.
3000년 전 깨끗한 냇가에서 흐르는 그 물을 그냥 마시던 선조들의 숨결을 흔적도 없이 밀어 붙여 그곳에 다리를 놓고 300억짜리 공사판을 벌이고 있다.
현재 우리는 서구나 일본에 비교하여 3차 산업의 사회에서 머물러있지만 문화를 인식하는 힘과 문화 관광 콘텐츠를 개발 하는 힘 그것은 4차원 세계이며, 단순성의 틀을 벗어난
예술적 가치 창조는 4차원의 세계이며, 기획과 시나리오를 씨줄과 날줄로 하며 새로운 창조적 어드벤처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4차원의 완성도이다.
그리고 유대의 야훼나 인도의 싯달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처럼 집대성한 민족 철학을 실어 내는 것 그것은 5차원의 세계이다. 이제 우리는 고인돌을 생각하면서 세계사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도록 인류와 사람, 민족과 민족혼에 대해 이야기 하는 원대한 도전을 해야 한다.
나의 사색은 덜 여물었으며 글 또한 정립되지 못 했으나 결과는 항상 고인돌에 돌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 근원은 고인돌에 남겨진 민족혼 즉 자유민중에의 열망이다.
3차원의 문화관광지 조성이 아니라 4차원의 창조적 가치관 의미 부여와 5차원의 통일된 민족혼의 함성, 나아가 6차원의 세계 - 우주와 자연이라 통칭되는 그 모든 것의 존엄이 함께 하는 인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우주의 기원
130억년 전 우주의 기원이 있었고 45억년 전 지구의 기원이 있었고 35억년 전 지구생물체가 탄생했고 천만년 전 영장류에서
3.사람의 기원
오백만년전 인류가 탄생했다. 백만년전 이후 구석기 문명이
나타났고 만년 전쯤 지구 대륙 곳곳에 신석기 문명이 나타났고
4.민족의 기원
오천년쯤 전에 지구의 여러 지역에 각 민족과 부족이 역사 문명적 기원을 열었다.
5.자연과 인위
우주가 열린 후 그 모든 시간을 거의 다 소비하고 구석기 문명이 나타날 때 까지 우주와 지구의 그 모든 것은 “ 스스로 만들어 지게 되어 있는 것”을 자연의 범주에 정하고
구석기의 유물을 포함한 “인위적인” 그 모든 것을 인위적 문화 또는 인류문화사라 한다면
민족의 형성은 자연의 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
지구상 어떤 민족, 어떤 부족이던지 지리적 자연적 여건에 의해 형성됐다가 후일 역사 적으로 체계화 된 것이지 처음부터 우리 민족은 여기 모여 살자 한 것은 아니다.
민족이란 길고 긴 세월을 거처 정착 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후에 지리적 경계에 갖쳐서 뜻이 통하는 비슷한 언어를 쓰게 되고 비슷한 문화와 모습으로 여타 민족과 구분이 된 것이다.
현재의 국가간 경계선이아니라 지구 전역에 형태를 달리하는 여러 민족은 이만 년 전, 만 년 전 그 민족을 거쳐 간 모든 것이 모태가 되어 각 민족의 전설과 설화와 역사와 철학이 되었다.
우주기원에서 지구의 현재까지 그 모든 시간을 소진하고 나서야 사람의 기원이 열리듯 사람의 기원에서 인류현재까지 그 모든 시간을 거의 소진하고 나서야 인류 문명사가 시작 되었다.
6. 인류 문명사와 민족
오천년 전 온 지구상에서 인류란 존재는 무엇 이었는가?
구석기 유물과 신석기 유물 그리고 동굴 벽화 외에 인류에게 더한 무엇이 있었는가? 지구를 점령한 인간이지만 단지 오천년 이전에는 문명도 문자도 민족도 국가의 구별도 없이 자연이 제공한 공간이 전부였었다. 그러나 오천여년 전 자연으로부터의 순응을 벗어나 인류는 민족과 왕국, 신들의 공간을 만들었다.
문명들은 유물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고래 되어온 구전을 바탕색 으로 형이상학의 정신세계도 구축하여 인류 문화사를 다양하게
쓰기 시작했다. 문명사에 사람의 기본적 조건인 의*식*주가 여러 형태로 나타나듯이 유신론의 구조 또한 자연 조건적 제한을 받아 들인다. 수메르에서 신과 문명의 태동이 인류 최초로 발견 되지만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각 민족들은 성격을 달리하며 발전해 나간다.
중동과 소아시아, 이집트와 북부 아프리카에서 왕과 신으로 이어 지는 인류 문화사가 태동되는 시기 중부 유럽과 영국에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문화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고인돌을 비롯한 열석, 환석, 스톤헨지 같은 거석문화이며 고인돌은 인도 중부, 러시아 남부에도 나타난다. 중국에는 요순시대를 지나 은,주 왕조가 들어서고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는데 반해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를 중심하여 고인돌문화가 나타나는데 한반도에는 전 세계 고인돌의 70%라는 밀집된 분포를 보이고 있다. 모든 역사 에는 당위성이 있고 유물에는 배경이 있으며 문화유산에는 민족 철학이 스며 들 듯이 중동과 중국, 유럽과 한반도에 남겨진 문화 유산은 민족태생의 배경을 여실히 살펴 볼 수 있다. 한반도에 수많은 고인돌이 축조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조선상고사 한민족 의 민족철학의 표출이며 그 시대 사회상의 온전한 큰 그림이다. 이 땅에 터를 잡은 조선상고사 민족, 고인돌 민족은 유독 그 수많은 고인돌을 축조하고, 할 수 있었는지 민족혼 최 상위 개념의 당위성을 갖는 배경을 우리 후손은 세계에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어떤 종교나 사상보다도 상위 개념에 있다. 모든 종교가 나름대로의 우주창조론을 갖고 있지만 민족은 전설의 이 만년, 설화의 만년, 역사의 오천년을 갖으며 그 후 이천 오백년의 문명적 진보가 이루어 진후에야 종교나 사상의 기초적 정립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7.고인돌 민중론
이 만년, 일 만년 설화로 전해져온 반만년 전 우리 민족의 개천이념은 이렇게 시작 한다.
“하늘에 살던 환님(하느님)의 아들 환인이 이 세상이 보기가 좋아 긴 시간 하늘 님에게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아 무리 삼천을 이끌고 내려와 이 땅에 터전을 잡으셨다.” 이다. 환인은 ‘선한 지도자’이고 무리 삼천은 동등한 민중이라는 개념이며, 홍익인간 <크게 서로를 돕는>의 이념을 세웠다.
그분들은 이 땅이 좋아서 왔으므로 돌아가야 할 하늘도 없었고 힘으로 지배하는 권력자도 없었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할 평등한 민중이었다. 그것은 고조선까지도 맥을 이어와 국가의 시대에 겨우 8개의 율령만이 존재했다는 것으로도 증명될 수 있다. 고인돌 사회는 일반론적 역사관인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구조가 아니라 민중과 그들을 지도하던 선한 지도자가 있을 뿐이다. 그 민중철학이 그 수많은 고인돌을 축조 할 수 있었던 방편이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두레 공동체이며 품앗이이며 우리 가락-가락잽이가 선창을 하고 모두가 후렴을 하는 풍토가 남겨 진 것이다. 한민족의 개천이념은 자연스럽고, 민주적이며, 담백한 민중론이다. 그 모든 것이 고창 고인돌, 한반도 전체의 고인돌에 스며있다. 섬세한 연구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지만 민족 설화와 홍익인간의 이념을 갖고 고인돌 시대로 돌아가 보자. 그 당시는 농경 사회였으므로 많은 인원이 한군데 모여서 살수는 없다. 농부는 농토에서 현실적으로 1Km이상 멀리 떨어져 살수는 없는 일이다. 또 잉여 생산물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몇 백명씩 동원되는 거대한 공사를 하기도 힘들며 세력자의 무덤이라는 일반론적 해석은 권력이라는 의미를 전혀 무시한 발상이다. 윌리엄 골딩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을 보면 권력의 조직 과정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데 그 내용에서 보듯이 권력은 지성이 아니라 힘을 앞세운 패권주의자의 것이며 권력은 서열을 만들고 위계질서를 만들며 법과 율을 세우며 당국의 허가사항을 만든다. 인간의 절대 생존은 먹는 것인데 당국은 먹을 것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그 많은 무덤의 축조를 허가 하지 않는다. 권력은 1인자의 것이며 일인자의 것을 탐내는 것은 반역이다. 이 인자 그룹은 일인자의 지배구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충성의 수단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며 하부구조 층에는 생명을 담보 로 복종을 강요하고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것 외에는 모든 것을 앗아 간다. 그러므로 그 많은 숫자의 고인돌은 초기 농경사회에서 민중, 즉 공동체 사회가 아니면 이루어 질수 없으며 축조상한에서 하한 연대까지 그 많은 기간에 그 넓은 지역에의 분포는 선한 지도자 환인과 3000의 평등한 민중론과 홍익인간의 민중적 철학 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해석 될 수 없다.
8.고인돌의 미덕
고창 고인돌 축조 하한 시대는 B.C 4,5 세기로 추정하는데 그때는 그리스 로마정, 인도 싯달타, 중국 제자백가의 시대이다. 고인돌 부장품 중에서 간혹 정교한 세문경과 돌검이 출토되기도 하였지만 그 긴 시기, 그 넓은 지역, 그 많은 기수의 고인돌에 표식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고인돌의 격을 낮추고 있는데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자. 그 많은 고인돌에 단 한자라도 한문이 표식 됐다면 중국의 침략 구실이 됐을 것이고 어떤 치졸한 이가 있어 무언가를 표시하려 했다면 그건 이천년 외세에 희롱 당하고 파괴 됐을 것이다. 고인돌은 모진 천재지변의 세월을 풍파에 맞서 3,4000년을 굳건히 버틸 수 있지만 인위적 파괴에는 아주 약할 수도 있다. 나에게 단 한 자루의 삽만 있어도 장마철 한철에 빗 물길을 효과적으로 내면 고창 고인돌군의 원형을 거의 대부분을 파괴 시킬 수도 있다. 일본 문화재 관리국은 광개토대왕 의 비문까지도 교묘히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상상을 뛰어 넘어 국가의 이념을 생산 해내는 치밀한 조직이다. 일제의 한반도 문화말살 정책의 집요한 마수를 고스란히 벗어 날수 있었던 고인돌의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인돌의 자연과의 일체성이며 절대 침묵이며 강요된 침묵이 아니라 민족 민중철학이 담겨 있는 침묵이며 이천년 외세를 견뎌 내기 위한 침묵이며 한반도 전체에 펼쳐진 삼천년 후의 통일을 대비한 침묵이다. 영국에 있는 한 고인돌처럼 추상의 무늬를 그려 넣었다면 그 고인돌은 중국에 의해 희롱됐거나 아니면 원형은 파괴된 채 일본의 박물관에 진열 되어 민족의 아픔을 배가 시키고 있을 것이다. 4만~8만기의 무표정의 고인돌에서 침묵의 미덕을 해석해 내는 것은 새로 태어남의 화두 깨기이며 민족혼을 읽어내는 또 다른 길이다.
9.고인돌의 철학 여행
인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형이상학의 숙제를 5000년간 풀어 왔다 하지만 답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에 반하고 역하기 때문 이다. 사람은 오롯이 자연일 뿐이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사람 그 이상이 되려는 어떤 열망도 그 이하가 되는 어떤 비하도 자연은 준비 해 논 적이 없슴 이다. 자연은 자연 안에서만 인간을 허락 한다. 인간이 도구를 써서 자연을 이탈하려 해도 그 노력한 만큼만 허용하며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반듯이 그 대가를 절대 지불하게 한다. 자연에서의 일탈을 자연은 허락한 적이 없기에 그 이상과 그 이하를 외치는 모든 사람은 허구이다. 그 허구를 외치 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달리기는 달리기 선수가, 높이뛰기는 높이뛰기 선수가, 멀리뛰기는 멀리뛰기 선수가 제일 잘하는 이유로 뉴턴의 기초 물리학이 제시하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난 인간은 단 하나도 없으며 아무도 보지 못했으며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그 이상을 외치는 자들은 무수히 많으나 모두 허망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의 세계에서도 분명하다. 고인돌 민족은 지배구조의 결과적 불합리성을 느꼈으며 탐욕과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이 땅의 평화와 평등을 누리다가 자연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자연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자연을 마지막 안식처로 인식했기에 자연에 순응했기에 고인돌의 절대 침묵이 완성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인돌 홍익인간은 자연이며 나눔이며 도움이다 무한한 발전과 무한한 파괴의 인류 군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평등성을 외치는 인류미래를 여는 꿈의 본보기이다“
인간은 그 방법에 조금 다가선 것도 같다 새로운 도구 인터넷이 그 방편일수도 있다. 인터넷은 자유이며 민중이며 구속받지 않는 다. 프랑스 대혁명이 압제에 대항한 힘에 의한 제1의 민중봉기이 었지만 총칼에 무너졌고 공산혁명은 글에 의한 제2의 민중혁명 이었지만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구를 간과했음에 처절한 실패를 했다. 인터넷을 활용한 제3의 민중해방 자유혁명은 총칼을 필요 로 하지 않으며 인간의 탐욕을 배제하고 계급 구조가 형성되지 않는 완성의 민중봉기로 이끌어 나갈 수도 있다.
붉은 악마처럼 순수와 자유에의 열망이란 불이 붙기만 하면....
10. 고인돌 무위 자연
고인돌은 오직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몸을 지켜나가지
탐욕을 얹으면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에
타인의 위에 있지도 않고 타인의 밑에 있지도 않는다네.
고인돌은 오직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의 무게를 지니지
바람이 불어오면 스스로 마음을 털어내어
타인의 몫을 범하지도 않고 타인을 시기하지도 않는다네.
고인돌은 오직 자신의 벌거벗은 몸으로 이야기하지
무얼로 감추고 무슨일로 감추겠나
타인이 비 맞으면 나 비 맞고 눈 내리면 고만큼의 키 큰다네.
고인돌은 오직 처음 생겨난 모습으로 세월을 살아가지
타고난 천성이 무데데 한 것이 다행으로
타중국놈도 타일본놈도 모르게끔 숭숭숭 살아간다네.
고인돌은 오직 변함없는 속 살 내음으로 하늘을 함께하지
사랑에 속고 돈에 울어도
타향 가서 고향 정 그리고 타국에 가서 조국 하늘 그린다네.
고인돌은 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또한 닮았어
내 나이 48세, 내 아버지를 어쩜 그렇게 닮아 가는지
타인들이 먼저 알아보더군
내가 아버지를 닮고, 할아버지를 닮고,
그렇게 삼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인돌 할아버지를 닮았겠지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내 고향 친구들 고향 친구들 고향 친구들 박 홍기 11.
우리 것의 긍지 찾기
2000년 전 선진 문명이라는 진의 문화와 1500년 전 당을 통해 들어온 불교와 500년 전 다시 제가 백가의 중국 철학이, 150년 전 기독교가 들어와 이 땅은 외세의 침략에 고달 펏고 외세 문화와 철학과 종교에 함락 되었다. 민족은 우리 것을 서서히 잊어 갔고 현재 우리는 지성인들 조차 우리의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그 긴 세월 그래도 우리 민족을 지켜준 것은 우리말과 우리글이며 배달겨레의 민족혼이다. 얼마 전 최 순우선생의 “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거의 대부분이 외래종교와 외세문화에 접목된 컬렉션 수준의 작품이었다. 나는 그 책에 소개된 모든 것과 세종대왕이 남기신 “배흘림”이라는 세 글자의 우리말을 우리글로 쓸 수 있는 떳떳한 자유와 바꾸지 않겠으며, 유 흥준교수의 완당평전 세권에 소개된 그 모든 작품과 한 용운님의 님의 침묵에 새겨진 님이란 단 한 글자에 들어 있는 민족혼의 떳떳함과도 바꾸지 않겠다. 만약 우리말 우리글이 없어서 그 모든 것을 한문으로 써야한다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을 것이며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혼을 어떻게 표현하여 단결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우리가 우리글로 시 한줄, 글 한편 쓸 수 있다는 것은 민족의 기쁨이며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민족의 무한한 자긍심 이다. 우리 민족이 거대한 세계 인류 문화사에서 한 장을 차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글과 고인돌이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 아직은 안타까운 실정이다. 위대한 우리한글을 우리국민이 우리국경일에서 제외시킬 만큼 홀대하고 있으니 일본 보수 우익주의자들이 다다미위에서 까무러 치게 즐거워 할일 아니가. 신라의 불상, 고려청자, 추사의 세한도 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세계최고의 작품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컬렉션적 가치이지 민족 정체성을 확보하는 인류문화사적 가치는 아니다.
“문화재적 가치는 유한하며 문화사적 가치는 무한하다
문화사적 가치는 뺏고 뺏김도 없으며 주어도 가져 갈 수가 없다“
고인돌도 우리가 푸대접하기는 한글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다 해도 우리가 어떤 철학과 이념을 실어 넣는 가에 존재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우리 것의 긍지 찾기에 민족의 힘을 모아야 한다.
2장을 맺으면서
나는 고인돌의 의미와 개발방향에 대해 대화를 할 때마다 거대한 벽을 느껴야 했다. 헤어 질 때 그들의 반응은 이랬다.
“그런게 어딨어요” 그렇다 원래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위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람의 역사- 인류문화사에서 나타나는 그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상관없이 크기에 관계없이 인위적인 것이 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외세 문화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 우리의 민족문화를 흐리는 근원이 되어 2000년여를 민족혼이 희미해져 갔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원인이 되어 해방 후에도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원수와 원쑤가 되었고 친일파의 무리가 청산 되지 못한 채 그들이 다시 남한의 거대한 기득권을 차지해 버렸다. 그 암울한 시기에도 민족혼을 지키려던 분들은 정당한 대접은 커녕 친일 세력에 밀려나 소외되어 갔다. 나는 모든 이에게 이렇게 한번 묻고 싶다. 만약 일본의 한 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우리 민족이 가타가나를 쓰고 있다면 일본인이 과연 한글을 이렇게나 홀대를 할까 일본이라면 인류문화사의 한 장을 차지 할 만큼 세계속의 한글로 발전 시켰을 것이며 반대로 가타가나와에 대해 비하하기를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고인돌이 일본에 있었다면 이렇게 평면적이고 초라한 개념을 주었을까 고인돌이나 한글이 일본과 반대의 상황에 있었다고 가정해보면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외세 민족의 사상과 철학을 절대 절명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고로 우리 겨레의 혼이 흩어진 지금 선조의 무한한 지혜로 남겨진 고인돌은 강토의 마지막 보루로 혼신의 힘을 다해 강산이 삼백번 도 더 변하는 세월을 지키고 있다. 고인돌은 침묵의 공간이자 백지의 공간이다. 그 백지의 공간을 현재의 고창, 강화의 고인돌 축조 재현처럼 원시인의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민족 문화 유산의 훼손이며 우리의 젊은이들이 창조해야 할 무한한 백지의 공간을 찢어 없애 버리는 것이다.
이글을 쓰는 기본자세가 고고학적 관념보다는 지구상의 삼 만년 이내의 모든 인류의 흔적이 묻은 것은 사상과 종교조차도 케릭터 라는 관념으로 접근한 면이 강하고 그것이 고인돌의 세계적 가치 창조의 집중력과 접근성이 용이 하므로 더 선호 할뿐이다. 나는 고인돌의 화두를 잡고 관련 글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발표한다는 생각은 못했었다. 인용한 글들에 대해 저자를 밝히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분들께 미안하고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나의 글에 대한 창조적인 부분에 대해 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싶다. 내 부족한 시나리오 초안 (1부 마지막 글)을 내놓은 것은 혹시라도 현재처럼 인식 없는 개발이 진행된 후 후일 일본의 만화가가 임나일본부설처럼 고인돌의 자의적인 일본적 해석의 그림을 그리면 -가령 일본 고인돌 세력이 한반도의 정통세력이었는데 악한세력의 반역을 피해 일본에 건너와 일본에 귀화 했다는 식의 시나리오를 쓴다면 일본에게 고인돌의 정통성 과 부가가치를 뺏길 수도 있다. 픽션의 세계는 임자가 없으며 소유권도 국적도 국경선도 없다. 그 내용과 상관없이 선점과 선발표의 우선순위가 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더 서둘러 발표했고 저작권 이야기를 한 것이다.
굴절과 오욕의 역사 속에서도 민족혼을 지켜내신 신 채호님, 한 용운님, 조선어학회님들께 많은 영감을 얻었으며 무릎 꿇어 깊은 절을 올린다.
2002년 추석 후에 시작하여 10월 15일 맺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나타나고
민족이 힘들 때 사람의 됨됨이 구별 된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 중월리 사람 박 홍기
충성을 위한 진혼곡
통일이 오면 통일이 와 주기만 한다면
나는 충성을 다 할란다
짜잔한 충성이 아니라 진짜배기 충성을 다 할란다
탐욕과 치졸, 각하와 원수님이 아니라
참혹한 이념, 오욕과 굴절이 아니라
이 천년 외세 침탈과 천 오백년 외세 허울을
뛰어 넘어 다 벗어 던지고
진짜 충성을 해볼란다
만해님이 주신 님 하나를
배꼽 두어치 밑에 묵직히 간직하고
온 몸 온 얼을 바쳐 충성을 다 할란다
지배의 역사, 편견의 충성은 뒤로 감추고
왕도, 국가도, 지도자도 민족도 훌 훌 털어내고
빨갱이 하고도 손잡고 덩~실 춤을 추면서
오 직 하 나 반만년 이어온 민 족 혼 하 나 에 다 만
충성을 다할란다 오롯한 충성을 다 할란다
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다른 곳에는 절대 충성하지 말고
오직 오롯이 민족혼에다만 충성해야 한다고 말 할란다
그리하여 훗 날 어느 때 까지 라도
순백의 민족혼에만 충성을 맹세하고
부름에 답 해야 한다고 너그러히 전해 줄란다
통일이 오면 통일이 와 주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