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2. 6. 화요일.
<한국국보문학> 2024년 3월호(통권 187호)에 낼 글 하나를 고르려고 고교 여자동창 카페에 올렸던 내 글을 검색하다가 아래 글을 발견했다.
이 글은 2010년 10월 1일에 썼으니 2024. 2. 6.인 오늘로 따지면 벌써 만13년도 더 지났다.
'바람의 아들' 닉네임은 바로 나, 최윤환이다.
나는 쌍둥이-형이었다.
1969년 8월. 동생은 서울에서 대학 다니다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시골집에 왔다가 저녁무렵 변소에 가다가 뱀 물려서 다음날 죽었다. 동생이 죽은 지도 만 54년도 더 지났다.
그 동생이 죽지 않았더라면 형인 내 삶은 무척이나 신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게다. 동생이 죽은 뒤로부터는 나는 무척이나 소심하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다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려고 했다. 그게 어머니한테 효도하는 길이었기에.
형인 나는 2024년 2월인 지금껏 살아간다.
<한국국보문학> 문학지에 올릴 산문- 글을 더 골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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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을 닮은 雜文
바람의 아들
어렸을 적 길 나서면 사람들이 쌍둥이를 몰래 훔쳐보고는 한마디씩 소곤거렸다.
'쟤들이 튀기 아녀?'
그 말은 듣는 순간에 쌍둥이들은 '굿모닝, 하아 유.'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갓 배운 영어 단어를 씨부렁거렸다.
'어마, 정말이네, 튀기가 틀림없어, 영어루 말하잖여?'
거울에 비춰보면 내 얼굴이 조금은 이국적으로 생기도 했다.
툭 불거져 나온 이마빡이며, 움푹 들어간 눈구멍이며, 옆으로 코가 벌어진 것이며, 다부진 골격이 영락없는 튀기처럼 보였다.
키 작은 어머니가 양녀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동양인이 쓴 수필은 서양인과는 달리 점잖은 체하면서 썼기에 글맛이 재미없단다.
동양인들이 쓴 글에서는 유어, 위트, 재치 등이 적고, 고상한 내용이거나 교육적인 글이어서 세인의 사랑을 별로 받지 않는다고도 했다.
수필은 자기 고백에 가까운 글이기에 치부를 들러내지 않는 게 미덕인 양 치부되기에 동양인으로서는 '웃음'을 자아내는 글이 드물단다.
나는 외모가 어렸을 적보다는 많이 가셨다고 해도 아직도 튀기라는 인상이 조금은 남아 있다.
서구인의 안면 형상을 조금은 지닌 나도 서양인의 흉내를 내서 내 부끄러운 치부를 슬쩍 드러내놓고 있다.
금기시되는 암수의 성을 상징하는 oo, xx, 단어와 기호, 性論조차도 조심스럽게 쓴다.
전문적인 수필가가 되려는 뜻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외국인의 외모를 나타내는 것처럼 글의 모양을 조금씩 변모시켜야겠다.
때로는 솔직담백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감춰야 할 것조차도 조금씩 풀어내야겠다.
배설하는 쾌감과 절정에 오른 비음鼻音조차도 내고, 냄새 나고 보잘 것 없는 실체라도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려내고 싶다.
일전 서점에 갔더니만 어느 시골 역을 드나들고, 시꺼먼 연기를 내뿜는 완행기차를 타고 장사길에 나서는 어머니(노인)와 아주머니의 지친 얼굴을 담은 사진첩이 활인 판매되고 있었다.
사 온다는 풍신이 깜박 잊고 맨손으로 집에 와서야 책을 구입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이처럼 내 글은 잘난 이들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잊어도 좋을, 잊혀도 괜찮을 것들로도 쓰고 싶다. 그 중심에는 지지리도 못하고 엉뚱하고 발칙하고, 건방지고 싸가지 없는 유나니도 그려내고 싶다.
내가 그릴 수 있는 화폭을 마련해 준 양짱(대전 C고교 여자동창 카페)에게 늘 감사한다.
2010. 10. 1. 금요일. 바람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