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을 적습니다 이장욱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영원을 잃어버렸다. 자꾸 잃어버려서 믿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 그것이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이제 달리지 않고 누워 있다. 원인이 사라진 풀밭에 자전거를 버려두었다. 바퀴의 은빛 살들이 빛나는 강변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불가능해지는 일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였다. 풀밭에는 아주 작은 음악들의 우주가 펼쳐져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쉽다. 그것을 진실로 느끼는 것은 모로 누운 사람들 뿐이지만 누구의 왕도 누구의 하인도 아니어서 외롭고 강한 사람들뿐이지만 은륜이 떠도는 풍경을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것 햇빛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물의 일렁임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달려가다가 멈추어 서서 문득 잔인한 표정을 짓는 일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겠지만
오늘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매일 명확한 것들만을 생각하였다. 나의 풀밭에서 부활하려고 했다. 거대한 존재가 내 곁에 모로 누워 있기라도 한 듯이 사랑을 하려고
석양이 내리자 아무래도 나를 바라보는 이가 보이지 않아서 텅 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집 『음악집』 2024.3 ---------------------- 이장욱 /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음악집』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