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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의 시대에 신과 인간의 관계 / 김윤호 시인, 수필가, 백두산문인협회 회장 - 영화 '타이탄'을 보고
요사이 나는 신(神)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의 명문대학이나 국내의 명문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학생들을 ‘공부의 신(神)’이라는 칭호를 붙이며 인터뷰한 기사를 몇 차례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참, 신도 여러 가지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지나갔는데,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선방(禪房)에서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를 3개월 씩 참선만 하며 두문불출하는 스님들이 들고 있는 화두(話頭)처럼 ‘신(神)’을 화두처럼 잠시 생각해 본 것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어리석고 미혹(迷惑)된 신을 믿는 미신(迷信)과 무속(巫俗) 신앙(샤머니즘 shamanism)이 인간사회를 지배했다. 하늘에는 천신(天神), 땅에는 지신(地神), 산에는 산신(山神), 나무에는 목신(木神), 바다에는 용왕(龍王, 海神), 물에는 수신(水神)이 있었다. 황제나 왕들도 신이거나 신의 아들로 신격화되었다. 글자 그대로 신의 시대였다. 이성과 과학은 저 멀리 어둠 속에 잠자고 있고, 무속과 종교가 신의 시대 한 복판에 있었다. 유년 시절에는 ‘신 들렸다’는 무당(巫堂), 당골네들의 신들림, 푸닷거리를 보면서 자랐다. 청소년기에는 무서운 산신령, 도깨비귀신, 몽당귀신, 죽은 사람의 귀신, 처녀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바둑의 국수 조남철 9단을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사업의 신, 골프의 신, 피겨의 신까지 등장하고 있다. 자기 분야에서 오랜 세월 연구하고 갈고 닦아서 전문성과 독창성을 체득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장인(匠人), 달인(達人), 명인(名人)이라고만 불러서는 왠지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나, 노벨평화상 등 노벨상 수상자들은 세계가 공인한 명인이요, 신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신이란 보통 사람들의 한계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업의 신도 부도가 나서 죄인이 되기도 하고, 골프의 신도 불륜의 황제라는 불명예를 안고 추락하기도 하고, 피겨의 신도 엉덩방아를 찧어서 정상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 인간의 신도 모두가 변화무쌍하고 한 때다. 인간과 만물을 창조한 자만이 신이라고 종교적으로 규정하면 신의 개념과 본질에 혼선이 온다. 원시시대부터 우주과학시대인 오늘날까지 신의 존재와 신의 개념,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는 참으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인류의 숙제다. 며칠 전, 방송대 국문학과의 동아리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영사모)’의 회원들과 함께 영화 ‘타이탄(Clash of The Titans)’를 관람했다. 그리스․로마신화(神話)에 대한 독서와 이해가 있은 후에 보면 더욱 실감이 날 영화였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의 모습과 활동을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고 있다. 지금 개봉 영화관에서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벤허’ 보다 열배는 더 감동을 받았다. 신화(myth)는 그리스어의 mythos에서 유래하는데, 논리적인 사고 내지 그 결과의 언어적 표현인 로고스(logos)의 상대어로서, 사실 그 자체에 관계하면서 그 뒤에 숨은 깊은 뜻을 포함하는 ‘신성한 서술(敍述)’이다. 그래서 신화는 상징(象徵, symbol)이다. 신화에는 꿈과 은유와 암시, 인간의 적나나하고 원초적인 원형과 역사와 교훈이 있다. 신화에는 사랑과 미움으로 점철된 삶의 진지하고도 깊은 본질과 진실이 숨겨진 채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半神半人, demi-god)의 영웅 페르세우스(Perseus)의 모험담이 줄거리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삶이 팍팍하고 세상이 혼란한 난세(亂世)일수록 앞날마저 희망과 행복이 보여야 할 전망이 어두울 때, 민중들은 자기들을 대변하고 구원해 줄 메시아(messiah), 구세주(救世主)를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한다. 조직화되지 못한 대다수 일반 백성들은 억압과 불만의 체제(system)인 낡은 것들과 현상의 틀을 타파하고 자유와 해방의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열망의 정점에 영웅을 세우려고 한다. 인간과 천지를 창조한 신은 인간의 기도와 숭배를 먹고 살아간다. 만약 인간이 교만과 배신으로 기도와 숭배를 바치지 않으면 신은 가차없이 분노와 징벌을 내린다. 신 중의 신,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Zeus)의 아들로 태어나서 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평범한 인간’이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인간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막강한 신들과 목숨을 건 사생결단의 싸움을 하는 페르세우스는 ‘인간 영웅’이다. 인간을 지배하려는 신들과 맞서 영웅적으로 싸워 마침내 인간 사랑과 인간 승리를 가져오는 짜릿한 감동과 전율을 안겨주고 있다. 중세까지의 신 중심의 시대, 신화시대에서 인간 중심의 시대, 인본주의(Humanism)로 되기 까지 수천 년간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피를 흘려야 했던가. 인간 중심의 시대가 되어서도 왕과 귀족, 군벌과 가진 자들 중심의 세상에서 평범한 인간 중심의 시대, 국민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가 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투쟁과 피가 필요했던가. 참으로 길고도 힘든 질곡의 세월, 피로 물든 참혹한 역사의 강물을 건너고 또 건너야 했다. 민주주의의 모범 선진국 미국도 민주주의의 역사는 2백년이지만, 민주주의는 아직도 미완성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는 5천년 민족사에서 권위주의체제와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십년도 채 안 된다. 진정으로 국민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 되는 참 민주주의, 따뜻한 사회,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멀다. 불법과 불의가 없고 고통과 불행이 없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인 후천세계의 개벽은 언제나 미래의 꿈으로 남는지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은 모두가 반신반인의 존재다. 사람들은 누구나 신성(神性)과 인간성(人間性)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밀한 신, 정치(精緻)한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精神)을 모든 인간은 갖고 있다. 신성이란 완전성, 절대권능, 전지전능(全知全能), 영원성, 창조성, 고차원성, 완전한 사랑 등이 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 씩 변하는 희노애락을 느끼고, 만나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헤어지고 죽어가는 취약하고 무상한 인간성도 갖고 있다. 우리 인간은 신이 되기를 희망하고 신 가까이 갈 수는 있어도 완전한 신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신성을 안고 있기에 인간성 하나로만 살아갈 수도 없다. 절반은 신이고 절반은 인간인 ‘반신반인’이 우리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요, 참 실상(實相)이다. 딜렘마이고 역설 같지만, 죽는 날 까지 주저 앉고 싶도록 아무리 힘들고 험난한 삶일지라도 자기의 신성과 인간성이 동시에 최대한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하늘의 천명(天命)인지 모른다.
* 이 글은 광주광역시에서 발행되고 있는 ‘일간 광주신문’에 필자가 매주 연재하고 있 는 ‘금요광장’ 란에 2010년 4월 7일(금) 실린 글입니다. (필자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