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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예술기행 3 스페인, 들끓는 사랑》을 처음 장만한 2018년 12월 겨울을 떠올린다. 그무렵 작은딸은 필리핀 세부로 동무하고 나들이를 갔다. 작은딸은 필리핀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자마다 큰딸하고 대만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했다. 두 딸이 나누는 말을 들으면서, 두 딸이 함께 다닐 나들이를 헤아리면서, 나도 둘 사이에 섞여 같이 나들이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딸은 저희끼리 나들이를 떠났다. 나는 대구에 남아 가게일을 보았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책을 읽으면서 달랬다. 그런데 《세계문화예술기행 3》을 쓴 분은 딸하고 스페인 나들이를 했구나. 글쓴이는 “예술가는 폼잡는 엄숙주의가 말할 수 없이 싫었다” 하고 밝히면서, 세르반테스에 여러 스페인 글님 이야기와 삶을 곁들여서 줄거리를 풀어낸다.
글을 쓰는 사람은 왜 머나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가? 뭔가 남기고 싶은 하루를 글로 쓰는가? 어느 삶자락을 잃거나 잊지 않으려고, 어느 날 품은 꿈이 날아가지 않도록 글로 붙잡는가?
《세계문화예술기행 3》을 쓴 분은 바르셀로나를 누비고, 가우디에 미로에 피카소에 고야에 게르니카라는 여러 사람들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적는다. 바람새(집시)가 보여주는 춤을 보려고 거닐고, 알함브라궁전에, 시에라네 바다에, 알푸하라스에, 세비아 성당에, 이름만 들어도 어질어질할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그렇지만 나는 책을 쥔 채 대구에 있다. 집안일이 바쁘고, 가게일이 바쁘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을 하고, 여러모로 챙길 자잘한 일이 끝이 없다.
너무 쳇바퀴 같은 하루를 벗어나고 싶어서, 문학단체에서 간다는 대마도 나들이를 따라갔고, 울릉도에도 다녀왔고, 또 몽골도 간다고 해서 몽골에도 가려고 했다. 이러다가 문득 멈추었다.
나는 왜 나들이를 다니는가? 나는 나들이를 다니면서 무엇을 느끼고 보고 배우면서 글을 써 보려고 하는가? 나도 ‘문화예술기행’이나 ‘문학여행’을 하고 싶어서, 또 ‘문학여행기’ 같은 글을 남기고 싶어서 자꾸 어디론가 기웃거리면서 따라가는 셈은 아닐까?
책으로 만나는 스페인 여러 사람들과 살림집과 숲이 놀랍다. 그러나 대구에서 곧잘 오르내리는 작은 뒷동산도 푸르고 아기자기하다. 대구에 있는 작은 뒷동산에도 꾀꼬리가 찾아와서 노래하더라. 밤에는 멧길을 오르내리지 않아서 모르지만, 어쩌면 소쩍새도 있지 않을까. 내가 나고자란 경북 의성 멧자락에는 꾀꼬리도 소쩍새도, 숱한 멧새도 어우러졌다.
집이란 어떤 곳일까. 우리나라에서 내가 살아가는 곳도 집이고, 두 딸하고 막내아들이 살아가는 곳도 집이다. 대마도나 울릉도나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스치는 여러 마을도 숱한 이웃들이 살아가는 집이다.
역사나 문화나 예술에 이름이 남을 일이 없을는지 모르나, 시골마을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이 품은 살림집이 있다. 내가 살아가는 집도, 세 아이가 저마다 살아가는 집도, 또 이름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도, 다 다르게 삶이 흐른다.
내가 내 보금자리인 이 집을 스스럼없이 사랑한다면, 스페인까지 가지 않아도 될까. 몽골에 따로 안 가도 될까. 집하고 일터를 오가는 길도 나들이(여행)로 삼을 수 있을까. 집하고 일터를 오가면서 겪고 느끼고 만난 삶을 옮겨도 글이 될까.
어느새 여름이 지나간다. 아직 덥지만 여름이 끝나간다.
시집『꽃의 실험』
자연에세이『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2022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발간지원)수혜
2023년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2023년 서울시 지하철 공모전 당선
2023년 신진예술인 창작지원금(창작씨앗) 선정